바오로 사도 서간 가운데 가장 짧은 글이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이하 필레몬서)입니다. 이 서간은 이름 그대로 필레몬 개인에게 보낸 서간이지만, 콜로새에 있는 그의 집에서 신앙생활을 했던 가정 교회 신자들에게 보내는 서간이기도 합니다.(2절 참조)
아울러 이 서간은 바오로 사도가 직접 쓴 글로 인정받고 있는 일곱 서간 가운데 가장 뒤에 배치된 경전입니다. 그리고 필레몬서는 바오로 사도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썼기에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과 함께 ‘옥중 서간’으로 불립니다.
하지만 필레몬서가 정확히 언제 어디에서 쓰였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성경학자들은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 감옥에 있을 때 썼다면 55년께, 카이사리아에 갇혀 있었을 때면 58~60년께, 로마에서 옥중 생활을 했을 때라면 61~63년께 쓰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헬라어 신약성경은 ‘Προs Φιλημονα’(프로스 필레모나), 라틴어 대중성경 「불가타」는 ‘Ad Philemonem’,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으로 표기합니다.
헬라어 필레몬(Φιλημων)은 사랑하다란 의미의 동사 ‘필레오’(φιλεω)에서 나온 말로 우리말로 ‘사랑하는 이’라고 옮길 수 있습니다. 당시 프리기아(오늘날 튀르키예)에서 흔히 불린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는 아내 ‘아피아’와 아들로 짐작되는 ‘아르키포스’ 함께 살았습니다. 아르키포스는 콜로새 교회에서 특정 직무를 수행했습니다.(콜로 4,17 참조)
필레몬은 바오로 사도의 복음 설교를 듣고 회심해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됐습니다. 성경학자들은 바오로 사도가 콜로새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에페소에서 활발히 복음을 선포할 때 필레몬이 세례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후 그는 바오로 사도의 ‘사랑하는 협력자’(1절)이자 ‘동지’(17절)가 됩니다. 필레몬은 콜로새 교회의 주요 인사였습니다. 그는 바오로 사도가 자신을 위해 손님방을 하나 마련해달라(22절)고 부탁하고, ‘오네시모스’라는 종을 거느릴 만큼(16절) 부유했고 사회적으로도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오네시모스는 우리말로 ‘유익한’ ‘이로운’ ‘쓸모있는’이란 뜻입니다. 그는 필레몬의 집에서 물질적인 손실을 입힐 만큼 부정한 행위를 저지른 후 바오로 사도가 갇혀 있는 곳으로 도망쳤습니다.(18절) 하지만 필레몬은 바오로 사도의 권유로 그리스도인이 된 오네시모스를 복음을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줍니다.(21절 참조)
필레몬은 자기 집을 교회로 사용할 수 있도록 내어줘(2절) 신생 콜로새 교회의 성장을 적극 도와 신자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5-7절)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형제여, 나는 그대의 사랑으로 큰 기쁨과 격려를 받았습니다. 그대 덕분에 성도들이 마음에 생기를 얻었기 때문입니다”라고 칭찬했습니다.(7절) 16세기에 저술된 「로마 순교록」에 따르면 필레몬은 아내 아피아와 함께 네로 황제 시대(54~68년) 때 콜로새에서 순교했다고 합니다. 필레몬 축일은 11월 22일입니다.
필레몬서는 총 23절로 구성돼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필레몬서를 쓴 배경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서간 내용 정황상 필레몬의 종 오네시모스와 관련한 일 처리 때문에 쓴 것으로 추정됩니다. 필레몬 집에서 도망친 오네시모스는 바오로 사도를 만나 세례를 받고 협력자가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충실하고 사랑받는 형제”(콜로 4,9)라 인정할 만큼 오네시모스를 곁에 둡니다.
하지만 오네시모스는 자유인이 아니라 도망친 종의 신분이었기에 체포돼 감옥에 갇힐까 봐 늘 불안에 떨었습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당시 로마법에 따라 도망자를 은닉해 개인 재산권을 침해한 중범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오네시모스를 주인인 필레몬에게 돌려보내기로 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러나 오네시모스를 그냥 보내지 않고 그의 손에 필레몬에게 보내는 서간을 쥐여줍니다. 바오로 사도는 오네시모스를 자신을 맞아들이듯이 형제로 맞아 달라고 부탁합니다.(16-17절) 그러면서 “내가 말하는 것 이상으로 그대가 해주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라며 오네시모스를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줄 것을 은근히 요청합니다.(21절)
필레몬서는 초대 교회의 노예 제도에 관한 ‘복음의 관점’, 곧 그리스도교 가르침의 일면을 볼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여러 서간에서 주인과 종에 관한 관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1코린 7,20-24; 에페 6,5-9; 콜로 3,22─4,1) 바오로 사도는 근본적으로 노예제도를 반대하지 않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분리의 벽이 허물어져 더 이상 “종도 자유인도 없다”고 단언합니다.(갈라 3,28) 또 “형제애로 서로 깊이 아끼고, 서로 존경하는 일에 먼저 나서십시오”라고 권고합니다.(로마 12,10) 이렇게 바오로 사도는 노예제도를 직접적으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교회 공동체 안에서 특히 전례 모임에서는 모든 이가 동등하며 서로 형제임을 확언합니다.
“당시 노예제도는 누구도 문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복음은 그렇게 모든 사람이 당연시하는 비인간적 제도의 희생자인 노예들을 다른 눈으로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그러면서 강요하지는 않는다.(8-9절, 14절) 다만 믿음과 사랑으로(5절) 내 자신부터 변화하고, 또 그러한 변화가 불의한 사회 제도와 그 희생자와 관련하여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결론을 이끌어 내도록 인도한다.”(「주석 성경」 8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