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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렌즈로 세상보기] ‘교회신문의 대사회적 역할’-좌담 / 전 주교회의 매스컴위 총무 김민수 신부·전 경향신문 편집인 김지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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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독자들 가운데 “교회의 대사회적 활동들이 지나치게 정치적이고 특정 정파에 치우치는 것 같다”는 의견을 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급변하는 사회 정세 속에 때로는 정부와 다른 의견을 피력했던 한국교회 모습들, 특히 국정농단 사태와 그에 대응한 교회의 활동들이 일부 신자들에게는 불편하게 다가왔다는 방증이다. 그렇다 해서 과연 교회신문이 대사회적인 교회 활동에 대해 침묵해야만 하는가?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 총무를 지냈으며 제1기에 이어 현재 제2기 본지 편집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김민수 신부(서울 청담동본당 주임), 전 경향신문 편집인이자 본지 제1기 편집자문위원을 역임한 바 있는 김지영(이냐시오) 동양대 교수에게 대사회적 교회신문의 역할에 대해 의견을 들었다.


사회: 장병일 편집국장
일시: 2월 13일 오후 2시
장소: 서울 중곡동 가톨릭신문사

■ 교회언론의 정체성

-장병일 편집국장(이하 장 국장): 교회의 대사회적 역할을 보도하는 가톨릭신문에 대해 “정치색이 짙다”는 등 부정적 의견을 주시는 독자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에게 교회신문의 정체성과 대사회적인 교회신문 역할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민수 신부(이하 김 신부): 교회신문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정체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우선 교회기관지로서 복음화 사명을 지닌 선교매체이죠. 또 하나는 언론으로서 본연의 기능이 있겠습니다. 여기에서 언론 본연의 기능이라고 한다면 객관적 사실을 토대로 진실 보도를 하는 것입니다. 교회신문이 선교에만 치우쳐 일반언론의 기본적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면 안 될 것이고, 대사회적 기능에만 치우쳐서도 안 되겠지요. 두 가지 사명을 잘 보완해 나아가야 합니다.

▲김지영 교수(이하 김 교수): 저도 비슷한 의견입니다. 교회신문은 첫 번째로 그리스도께서 주신 가르침과 그에 따른 교회 가르침을 잘 전파해 세상에 복음의 희망과 기쁨을 전해야 합니다. 그와 함께 두 번째로 꼽고 싶은 중요한 사명은, 대사회적 소통 도구로서 미디어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사명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도 강조됐으며, 급변하는 복잡다단한 사회에서 더더욱 그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교회신문이 대사회적 소통 도구가 되는 것은 곧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 하는 언론이 돼야 함을 상징합니다. 여기에서 ‘빛’은 희망과 기쁨, 복음과 평화이겠고, ‘소금’은 이 사회가 불의에 빠지지 않도록 교회가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중 사회 매체에 관한 교령 「놀라운 기술」에는 “뉴스의 취재와 보도에서 인간의 정당한 권리와 존엄성 그리고 도덕률을 충실하게 지켜야 한다”(5항)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는 곧 교회매체가 국민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면서 권력남용과 물질주의, 소비주의, 쾌락주의 등을 고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사람에게 인간존엄과 권리,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 재화의 고른 분배, 인간생명에 대한 사랑, 환경보호 등 도덕적 진리의 총체를 수행하는데 앞장서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이러한 예언자적 역할을 하는 대사회적 교회신문의 역할이 예전에 비해 점차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 시대 변화에 따른 요청

-장 국장: 그동안 가톨릭신문은 교회매체 본연의 기능이라 할 수 있는 ‘복음화’ 사명에 입각해 꾸준하게 독자들에게 사회교리 이해를 돕기 위한 연재를 해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독자들은 대사회적 교회 활동을 보도하면 여전히 ‘정치적’이라고 반응합니다.

▲김 신부: 시대 변화에 따른 요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두 가지 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사회의 변화, 또 교회 내 변화이지요. 이 두 가지 관점에서 교회신문의 수용자, 즉 구독자의 변화를 읽어내야만 합니다. 예전에는 언론이 정보를 만들어서 전달하는 역할만 해왔다면, 이제는 수용자가 그것을 받아 읽고 해석하면서 나름의 호불호를 결정합니다. 언론 생산자 측면에서 이제는 수용자가 누구인지, 그들이 생산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한 변화추이도 연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장 국장: 물론 수용자들의 의식 변화를 파악하고 그 흐름에 따라 편집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신부님 말씀에는 동의합니다만, 명백한 교회 가르침마저 문제 삼는 일부 독자들 모습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김 신부: 일부 독자들 모습만 하나의 돌출된 사안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보다 총체적으로 독자들의 변화를 연구해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교회신문 수용자들의 변화에 대해서도 이 두 가지를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사회에서의 모습이 그러하듯, 교회 안에서도 이미 오래 전부터 진보와 보수의 입장이 나누어져 있습니다. 이념적 갈등이 교회 안에서도 심화되고 있음을 전제로 인식하고 신문을 제작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종교적인 면에서 신자들의 의식 자체가 많이 변화돼 왔습니다. 교회가 교리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도 신자들이 무조건 “예”라고 대답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교황님이 아무리 낙태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도 신자들은 자기 가치관에 따라 낙태여부를 결정해요. 물론 신자들은 교황님을 좋아하고 따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황님 말씀을 모두 수용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죠.
-장 국장: 이념이라는 잣대는 교회신문 제작의 전제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왔습니다만, 이제는 다양한 생각을 품어 안는 신문제작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 또한 교회 가르침도 취사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교리를 이해하도록 하는 방법도 필요하겠습니다.

▲김 교수: 세상 흐름에 따라 시대의 징표를 읽고 교회신문을 제작하는 모범을 우리는 김수환 추기경님으로부터 찾을 수 있겠습니다. 김 추기경님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개최된 시점에 가톨릭시보사(가톨릭신문의 전신) 사장으로 재임(1964~1966)하시면서 공의회 정신을 가장 먼저 접하시고, 한국교회에 전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열심히 공의회 정신에 맞게끔 언론매체를 가꾸려 하신 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로 보면 김 추기경님의 이런 활동은 상당히 진보적으로 볼 수 있었겠지만, 추기경님의 언론 제작방향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방향이고, 오히려 지금이 더 퇴보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결국 진리는 하나이지만, 콘텐츠는 변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새로운 시대의 감각과 지적 흐름에 맞춰서 새로운 디자인이나 포맷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특히 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회 매체에 대한 교령의 정신대로 만들어야 합니다. 세상을 껴안는 교회가 돼야 하지, 외면하는 교회가 되어선 안 됩니다.
눈앞에 전개되는 세상의 고통을 보면서 나만의 영성만 키우려고 해서는 교회 가르침에 맞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그런 분은 아니었습니다. 산 속에서 혼자 명상하시면서 자신만의 영성을 키운 것이 아니라, 세상 한가운데로 가시어 고통 받고 소외된 사람들과 가까이 하시고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다가 죄인들을 대신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세상을 껴안고 나아가야 한다는 교회 가르침은 바로 그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주님의 삶과 죽음, 부활을 바탕으로 교회가 전하는 가르침과 진리를 굳건히 전해야 합니다. 즉, 교회가 사회문제에 개입한다고 해서 그것을 정치적으로 말한다면 곤란하겠지요.


■ 보도방식은

-장 국장: 사회문제에 관한 구체적인 교회 가르침은 1891년 레오 13세 교황님이 발표한 회칙 「새로운 사태」가 그 시작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새로운 사태」가 제시한 원리와 구체적 가르침은 시간과 장소의 한계를 벗어난 보편적 진리로 볼 수 있겠죠. 오늘 두 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시대 변화에 따라 전달방식에는 변화가 필요하겠지만, 보편적 진리에 근거한 교회 가르침을 흔들림 없이 전하는 것이야말로 교회언론의 사명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 교수: 다양한 생각을 가진 분들 사이에 갈등구조를 만들지 않는 선에서, 사회교리 가르침을 더 잘 알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부분에서 교회신문이 앞장서야 합니다. 가령 ‘저 질문 있습니다’라는 식의 코너를 통해 다양한 독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것이 교회신문의 임무입니다.

▲김 신부: 방법론적인 부분도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보수층 독자들 중에는 아마도 ‘사회’라는 말만 들어가도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물론 사회교리는 그분들이 생각하는 부분과 상당히 거리가 있지만 말입니다. 그 분들에게 아무리 사회교리의 용어 의미를 설명한다고 해서 설득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다가가는 방법을 좀 더 문화적으로 바꿔보면 어떨까요? 교회 가르침을 전한다는 방침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스토리텔링’(이야기 전달) 방식을 좀 더 강화하면 좋겠습니다. 연역법보다는 귀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죠. 즉 어렵고 추상적인 교리 내용을 나열해서 결론을 내는 방식보다는, 독자들도 이해할만한 구체적 사례를 들어 사회교리의 메시지를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4대강, 인간생명과 낙태, 살인과 사형제 등의 제목으로 시작한다면 자극적이고, 큰 도움이 안 될 것입니다. 사회교리를 이야기하는 것은 좋은데, 효과적으로 전하려면 결국 문화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 예언자적 역할

-장 국장: 지난 2017년 가톨릭신문 창간 90주년을 맞아 서울대교구 사회사목담당 교구장 대리 유경촌 주교님을 모시고 좌담을 진행했습니다. 좌담에서 유 주교님은 “신자들이 교회 울타리를 넘어서 사회에서 모든 국민의 일치, 사회적 발전, 공동선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언론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사회 공동선 실현에 가톨릭신문이 앞장서야 한다면서 대사회적인 메시지를 지면에 나타내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는 조언이셨죠.

▲김 신부: 교회신문은 대사회적으로 예언자적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이 사회에 대안언론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사회를 깨어있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죠. 이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 고통 받는 사람들, 바로 이러한 사회적 약자를 대변해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다 보면 그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분명 나올 것입니다.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 해서 우리가 그 기능을 축소할 수는 없습니다. 엄연히 사회교리를 바탕으로 교회가 해야 할 역할, 또 교회신문이 해야 할 역할이 있기 때문입니다.

▲김 교수: 교회 가르침에 따르면 고통 받고 내몰리고 힘없는 사람들, 불행을 당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손 한 번 잡아주는 모습이 교회 활동의 원칙입니다. 세월호 참사 직후를 생각해보세요. 세월호 유가족의 의견에 동조하고 위로하는 사람들을 빨갱이 취급했죠. 그런데 2014년 한국을 방문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과연 정치적 중립을 강조한 이들은 중요한 일이 눈앞에 생겼는데도 교회가 아무 가치판단을 하지 않고 외면해야 한다는 뜻이었을까요? 그것은 정치적 중립에 대한 오해입니다.

▲김 신부: 가톨릭신문이 노력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개신교와 같은 타종교 언론에는 상당히 농도 짙은 칼럼들을 종종 볼 수 있는데, 그에 비하면 교회신문의 칼럼들은 평이하고 느슨한 편이에요. 행사보도에 치중하기보다는 필요하고 깊이 있는 내용을 칼럼으로 발굴하는 신문이 되면 참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김 교수: 교회신문이 보다 명료한 지성을 바탕으로 지적해야 할 부분은 명명백백한 사실에 근거해 지적하고, 교회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특별한 관점으로 쓴소리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대상이 교회 내부가 된다고 하더라도 소극적이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또한 행사기사보다는 기획기사를 쓸 수 있도록 기자들의 역량을 강화하면 좋겠습니다. 물론 의미 있는 행사는 취재해야겠지만, 나열식 행사기사는 가독성이 없어요. 우리가 현안에 대해 복음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기획기사에 치중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정리 우세민 기자 semin@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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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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