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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주이주민센터 한국어 교실 강사를 맡은 최영녀(아기 예수의 데레사)씨가 한글 자음을 가리키며 미소 짓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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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일 밤 8시, 한국어 교실이 열린 상주이주민센터 홀로 불이 환히 켜져 있다. |
미사가 없는 월요일인데도 안동교구 상주 계림동성당에는 저녁 8시를 전후로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이들이 저마다 가방 하나씩 메고 향한 곳은 성당 뒤편 홀로 불 켜진 작은 건물. 안동교구 이주사목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상주이주민센터(센터장 손성문 신부)’다. 이곳에선 4월 5일부터 매주 월ㆍ금요일 저녁 8~9시,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을 위한 ‘한국어 교실’이 열린다. 개학 한 달을 맞는 ‘아주 특별한 야학’을 3일 다녀왔다.
한국어 배워 좋은 엄마, 좋은 동료 되고 싶어“자, 기역! 니은! 디귿!”
선생님이 화이트보드에 적힌 한글 자음을 소리 내 읽자 학생들도 힘차게 따라 읽는다. 월요일은 ‘한글 배우기’, 금요일은 ‘말하기’ 수업이다. 이날 자음과 모음을 배운 학생들은 ‘울음소리로 동물 이름 맞히기 퀴즈’도 했다. “꿀꿀” 소리를 듣자마자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든다. ‘돼지’라고 해야 할 것을 당당하게 ‘까지!’라고 외치자 교실이 웃음바다가 됐다.
한국어 교실에는 현재 16명 학생이 등록돼 있다. 베트남인이 14명, 필리핀인과 중국인이 각각 1명이다. 나이는 20~40대로, 남녀가 각각 절반이다. 여학생은 모두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한국에 오래 산 이들은 이주노동자인 남학생에 비해 한국어가 능숙하다. 그래서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서 통역사 역할을 하며 수업 진행을 돕는다.
상주이주민센터 한국어 교실이 가진 특징은 바로 저녁 늦게 수업을 한다는 점이다. 상주 시내에 있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하는 한국어 수업은 늦은 시간까지 생업에 종사하는 이주민들이 이용하기 어렵다. 센터가 저녁 6시에 문을 닫기 때문이다. 13년째 한국에 사는 베트남 출신 레티아우(한국명 김희정, 36)씨는 “닭 가공공장에서 퇴근하면, 한국어 교실 갈 생각에 피곤함도 잊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어를 열심히 배워 우리 아들ㆍ딸과 막힘없이 재밌게 대화하고 싶다”고 바랐다. 역시 베트남 출신인 호티뚜엣프엉(한국명 이진주, 26)씨도 “직장동료와 나중에 태어날 우리 아기랑 한국어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기대했다. 홀로 일하며 두 딸을 기르는 필리핀 출신 트레이시(한국명 서지안, 28)씨는 “딸들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다”고 의욕을 보였다.
대부분 미등록ㆍ단기 체류인 남성 이주노동자들도 마음 편히 배울 수 있는 점도 한국어 교실의 강점이다. 언어 교육을 비롯한 정부 다문화정책이 결혼이주여성을 주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남성 이주노동자들은 좀처럼 언어와 문화를 배울 길이 없다. 안타깝게도 이들이 제일 처음, 그리고 가장 많이 배우는 말이 바로 일터에서 듣는 욕설이라고 한다. 처자식을 베트남에 두고 혼자 한국에 와 철근공장에 다니는 부홍남(36)씨는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랑 말이 안 통해서 힘들었다”며 “열심히 공부해 한국인들과 어울리고 싶다”고 바랐다. 동향 출신 부이특(31)씨도 “한국어 잘 배워서 일도 잘하고, 동료들에게 인사도 잘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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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어 교실 학생들이 공책에 한글을 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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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주이주민센터 한국어 교실 학생들과 강사 최영녀씨, 센터장 손성문 신부와 허선회 수녀, 문해협동조합 민경삼 이사장 등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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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리핀 출신 학생 트레이시씨가 한국어 교실 수업을 마친 뒤 사진을 찍고 있다. |
이주민, 한국 정착 위한 교육 필요해한국어 교실이 시작된 계기는 중국 출신 결혼이주여성 이옥란씨의 간곡한 요청이었다. 이씨는 상주에서 24년 동안이나 배 농사를 지었지만, 일에 치여 한글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남들처럼 문자나 카카오톡 메시지 한 번 보내보는 게 소원이었다. 그래서 상주이주민센터 실무자인 허선회(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수녀를 만나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에 허 수녀는 ‘학생이 단 한 명만 있더라도 한국어 교실을 시작하자’고 마음먹었다. 이후 교사를 찾던 중 개운동본당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봉사하러 무료급식소 ‘나눔의 집’을 찾았다. 계림동성당 안에 있는 나눔의 집에는 상주 시내 4개 본당 신자들이 번갈아 봉사를 온다. 이날 봉사자 가운데 한 명이 문해교육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고, 허 수녀는 곧장 도움을 요청했다. 그가 바로 한국어 교실의 유일한 선생님, 최영녀(아기 예수의 데레사, 58)씨다.
최씨는 5년 전, 퇴직을 앞두고 ‘사회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문해교육사 자격증을 땄다. 농협에서 일할 때 노인 고객들이 본인 이름을 못 적고 쩔쩔매던 모습을 본 기억이 떠오른 까닭이다. 자격증을 딴 이후 그는 4년째 주로 노인 대상으로 한글교육 봉사를 해오고 있다. 이주민을 가르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다행히 1990년대에 다문화가정을 상대로 금융교육을 한 적이 있어 큰 어려움은 없었다. 최씨는 “배움을 갈구하는 학생들의 열망과 간절한 눈빛을 보면 저도 더욱 힘이 난다”며 “매 수업이 정말 재밌고 즐겁다”고 웃었다.
‘상주 문해교육 사회적 협동조합’도 교재와 공책ㆍ필기구를 제공하는 등 한국어 교실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민경삼 문해교육조합 이사장은 “북한 이탈 주민이 하나원을 거치듯, 이주민들도 한국 사회에 정착하기 위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이는 사회적 비용도 줄이고, 이주민의 권익도 신장하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와 관련한 국가정책이 전혀 없는 게 문제”라며 “성당을 비롯한 종교시설이 그 역할을 대신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어 교실도, 상주이주민센터도 이제 첫 발걸음을 뗐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지만, 그만큼 희망과 기대도 크다. 센터장 겸 안동교구 이주사목위원장 손성문 신부는 “상주이주민센터는 교구 설정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이라며 “의지할 사람이 없는 이주민들이 센터를 통해 안정감을 갖고,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허선회 수녀는 “센터 리모델링 공사 때부터 신자들이 많은 도움을 줬다”며 “앞으로 이주민에게 교육뿐 아니라 경제적ㆍ의료적 도움도 제공하겠다. 많이 도와달라”고 청했다. 현재 상주이주민센터는 어려운 이주민을 돕는 사랑 나눔 모금 캠페인 ‘월 5000원의 기적’을 펼치고 있다. 후원 계좌: 농협, 301-0285-1165-81(천주교안동교구유지재단)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