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변함없이 사는 사람들을 보고 칭찬을 합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스케줄을 따라 사는 사람들을 두고 시계같다 혹은 한결같다고 칭찬을 합니다. 심지어 자식들에게 저런 사람을 본받으라고 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변덕스럽다는 둥 끈기가 없다는 둥 핀잔을 줍니다. 그러나 사람은 기계가 아니어서, 이런 삶은 위험성을 갖습니다. 심리적으로 무기력해질 뿐만 아니라 폭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가끔 집필하러 수도원을 찾습니다. 멀리서 보면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내부의 삶은 단조롭기 이를 데 없습니다. 매일 같은 생활을 하다보면 어제가 오늘같고 오늘이 어제같은 착각마저 듭니다. 이렇게 시간이 정지한 느낌이 들 때 심리적으로 어떤 현상이 생기는가? 처음에는 안정감이 생깁니다. 마음이 평안하고 느긋해집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짜증이 올라옵니다. 나중에는 기도문도 생활도 지겨운 기분마저 듭니다. 그리고 더 문제는 본인을 자책하기 시작합니다. 네가 배불러서 하는 생각이냐부터 시작해 마귀의 유혹에 빠져 그렇다고까지 합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변화입니다. 작더라도 변화라는 자극을 주면 짜증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망상도 사라집니다. 같은 책을 보는 게 지겨우면 다른 책을 보고, 사는 곳이 지겨우면 바람 쐬러 나가면 됩니다.
그런데 강박적인 성향의 사람들은 변화를 세속적인 것이라 정죄하며 스스로를 더 가두는 자기학대를 자행합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스스로 영신수련이라고 합리화합니다. 참으로 미련하고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신앙생활은 마음으로 하는 삶입니다. 따라서 마음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꼰대유머 입니다. 본당 수녀가 마음에 안 들어 늘 타박하는 본당 신부가 있었습니다. “수녀님은 도대체 할 줄 아는 게 뭡니까?” 수녀는 화가 났지만 수도자가 화를 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앞으로 더 잘 할게요~”하곤 했습니다. 그러면 신부는 한 술 더 떠 “그 이야기는 벌써 스무 번 넘게 들었어요! 뭐 달라지는 게 있어야지!”하며 속을 뒤집어 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가정방문을 가게 됐습니다. 그런데 신부가 성질이 급해서 무단횡단을 하려다 차에 치일 뻔 했습니다. 운전자가 창을 열더니 “야! 이 멍청한 놈아! 죽으려고 환장했냐?”라고 빽 소리치고는 그냥 내뺐습니다. 멍하니 서있는 신부에게 뜬금없이 수녀가 혹시 아는 사람이냐고 물었습니다. 신부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자, 수녀는 “근데 신부님에 대해 어떻게 저렇게 잘 알까요?”하곤 휑하니 앞서갔습니다. 그 신부는 제자리에서 두 번이나 똥물을 뒤집어썼습니다.
홍성남 마태오 신부(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