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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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신앙체험수기] 가작 / 야곱의 사다리

김순희 실비아 (청주교구 부강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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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져 누운 노란 단풍이 내 그림자에 밟힌다. 11월 중순 풀린 날씨의 정오 볕은, 욕심낼 만큼 정겹다. 잎을 다 떨궈낸 성당 마당의 느티나무가 하늘을 배경으로 전나(全裸)를 드러내었다. 엘리사벳의 민머리가 떠오른다. 바짝 야위었던 어깨는 한겨울 마른 나무처럼 사람이 아주 왜소하게 보였었다.
 

시간은 쉼 없이 흘렀다. 16년이 지나간 10월의 마지막 주를 향하던 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얼굴 모습도 가물한 엘리사벳의 작은 딸이다. “이번 12월에 서원식이 있어요. 기도 부탁드려요.” 떨림의 한 마디는 깊은 고요 속에 잠들어 있던 의식을, 송두리째 끌어올리기에 충분했다.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가. 어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여리여리한 어린 소녀였었다. 엘리사벳이 임종 전에 꼭 한번 보고 싶다던 딸. 결국, 그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떠났다. 죽은 자의 삼우제 날에 연신내성당에서 연미사를 드렸다. 어린 소녀는 언니의 손을 잡고 그곳으로 엄마를 찾아왔다. 막 젖 떨어진 딸을 몇 살 위인 큰딸에게 부탁하고, 엘리사벳은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고 집을 나왔다고 했다. 그리곤 생전에 다시 보지 못한 얼굴이었다.
 

내가 처음 그녀를 만난 날은 가을 햇살도 오래전에 시들고 오늘처럼 볕이 어깨에 은총처럼 쏟아지던 날이었던 것 같다. 가정 간호를 담당하셨던 수녀님의 전화를 받았다. 성모병원에서 퇴원하여 집에서 치료하는 자매를 같이 방문하자는 내용이었다. 그녀의 상태는 이미 임종이 예견되었던 것. 그는 성모병원에서 교리를 받던 중 퇴원을 하였다. 그렇게 우리의 만남은 이루어졌고 그날부터 나는 남은 교리와 호스피스를 담당하였다. 내가 무엇을 얼마나 알고, 믿음이 있다면 얼마나 굳건한 믿음이 있었겠는가. 그저 성서를 함께 나누며 봉사자라는 호칭으로 본당과 교구에서 활동하며 지낼 뿐이었다. 신앙의 신비도 깊은 체험도 영혼의 울림이나 깨달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바쁘게 쫓아만 다녔던 것 같다.
 

그리고 닥쳐온 시련과 고통과 혼란 속에서 나는 신앙이 삶 안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나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절망 속에서 방황하는 내가 마땅히 찾을 곳이 없었다. 누군가에게 어떠한 해명이나 설명이나 이해를 받고 싶었다. 갈 곳이 없어 나는 성체 앞에 나가 무릎을 꿇고 엎디어 있었다. 막막하고 두려우리만큼 응답 없는 침묵의 시간이었다. 예수님의 겟세마니 동산에서의 기도 시간이 이러했을까. 예수도 십자가의 길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침묵이 두려우셨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땀이 나도록 절실한 기도를 드려야 하는데, 나라는 존재는 그렇게 애간장이 녹는 기도도 할 줄 몰랐다. 회오의 부끄러움이 자신을 할퀴고 상처를 내었다. 당신은 자비하신 분이라 들었으니 ‘그 자비를 베푸사 응답하소서’ 하였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고 이제는 무조건 믿는 길 외에는 길이 없었다. 나는 하느님은 꼭 계셔야 한다고, 다음에 마주 보고 만나, 따지고 덤빌 때 당신은 내게 대답을 해야 할 의무를 가진 신이어야 했다. 왜 나에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는지, 이런 일이 왜 나에게 일어나야 했는지, 따지고 화내고 물어야 할 곳이 하느님 당신밖에는 아무도 대답해 줄 곳이 없었다. 그랬다. 죽음이 끝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라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억울하고 분노가 일었다. 따지고 물었다. 그리고 겨우 당신에게서 들은 대답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변모하는 것이다’라는 말이었다.

 

변모, 물이 끓으면 기체가 되어 하늘로 오르듯, 그가 비가 되어 내리고, 흐르는 강물이 되고, 바다에 이르면, 강을 버리고 바다가 되듯, 그렇게 삶의 모양이, 과정이 변하는 것이라 하였다. 죽음은 새로운 모습의 삶을 의미하며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하였다. 돌아갔다는 의미는 ‘그곳으로부터 온 곳이 있다는 것을 모르겠느냐’고 한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억울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는지, 얼마나 따뜻하고 다정한 아들이었는데, 유머 있고 성실하였다. 친구들에게는 의리가 있었으며, 매사에 열정적이던 아들이었지 않나. 복사를 서던 몇 년. 항상 먼저 일어나 기다려 주던, 어미 마음에 쏙 들던 아들인 것을 당신은 전지전능하시니 아셨을 것이다.
 

어설프게 신앙인이었던 어미는 말했다.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줄도 모르면서….
 


 

세 명의 또래들을 바다에서 건져내고, 기운이 떨어진 안드레아는 그렇게 돌아갔다. 대학 한 학기를 남기고 군대를 전역한 지 4개월 여름. 겁먹지 말고 밀려오는 파도를 함께 발로 차라며 용기를 주더란다. 어미는 그 말소리, 그 차분함을 안다. 작은 튜브 하나에 세 명을 겨우 붙들어 매어 놓고 자신은 조금씩 밀리면서도 그 튜브를 붙잡지 않았다고. 본인이 매달리면 다 같이 나갈 수 없다고 아들은 느낀 것이다. 그들이 안전지대로 들어오고, 24세의 안드레아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웃을 위하여 자신의 전 생애를 내어 놓았던 것이다. 그것은 제 한 몸의 생애만을 내어놓은 것이 아니라 우리 전 가족의 삶 반 이상을 내어 놓은 것이다. 아비도, 어미도, 그리고 그렇게 좋아하던 형 베드로의 가치관과 인생의 목적과 목표를 흔들어 놓았다. 분노하고 어구 차고 풀 수 없는 미적분 같은 난해함에 마구 흔들렸다. 그럴수록 나는 갈 곳이 없었다. 주님 앞에 나가 울고 화내고 따지며 그저 엎디어 있을 수밖에….
 

변모라 하시니, 믿을 수밖에 다른 길이 없었다. 그쯤 그녀를 만나던 것 같다. 나의 절절한 갈망 하나 가지고 같이 믿어보자는 마음 하나를 나누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기로 했다. 그래서 엘리사벳도 죽음이 끝이 아니라 변모,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에 위로를 받았다. 죽음이 결코 두렵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러한 그녀를 보면서 나도 새로운 삶에 대해 연민을 가질 수 있었다. 그녀가 임종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마음이 불편했던 사람과 통화를 하고 화해를 청하였다. 두고 온 딸들에게 연락하여 큰딸을 만났다. 그에게 떠난 뒤에 남겨지는 것들을 설명하고 정리하였다. 마음을 써준 여형제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열심히 살다 예쁜 모습으로 떠나는 자기 때문에 슬퍼하지 말아 달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대모가 되어주기를 청하였다. 나는 기꺼이 허락하였다. 오래도록 기억하고 함께하기로 하였다. 나는 이 땅에서 그녀는 새로운 주님의 땅에서. 서로 기도해 주기로 약속하였다. 성인의 통공을 믿기로 한 것이다.
 

그 겨울을 벗고, 따스한 기운이 먼 곳에서 소식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녀가 세례를 준비하였다. 스물넷의 나이에 선종하여 프란치스코 재속회의 수호성인이 된 헝가리의 공주였던 엘리사벳 성녀를 따르고 싶다 하였다. 그래서 그녀는 성녀 엘리사벳의 이름을 받았다. 대모가 된 나는 그에게 가장 좋은 옷을 입혔다. 흰 드레스를 입고 미사보를 쓰고 영정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는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임종 준비실로 들어갔다. 엘리사벳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내가 같이 갈 수 있는 곳까지 함께 하겠다고, 안드레아 내 아들처럼 나도 엘리사벳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  

 

죽음의 세계로 발을 떼어놓는 그녀 옆이다. 그때 나는 하느님을 시험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정말 하느님은 계시는 것인가. 예수님은 우리 하나하나를 다 관장하고 계시는가. 애가 타게 찾은 요셉 성인은 정말 임종자의 수호자이신가. 믿는다는 함정으로 내 눈과 귀로 듣고 보고 싶다는 은근한 내 방식의 하느님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통증을 느끼지 않도록 가수면 상태의 엘리사벳에게 물었다. 무엇이 보이느냐고, 성모님이 오셨는지 알고 싶었다. 요셉 성인이 지켜주시러 오셨는지 물었다. 엘리사벳이 말한다.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는다고. 모든 것이 환해요. 연한 보라색이어요. 안개처럼 보이지 않고 환하고 다 반짝인다고 했다.
 

왜 요셉 성인은 오시지 않은 것일까. 그러면 우리 안드레아 때도 안 오신 것 아닐까. 도대체 그분은 뭘 하고 계시는 것일까. 정말 오기는 하는 걸까. 확인하고 싶었다. 그것이 기적이 아니라 당신은 그렇게 우리에게, 나에게 보여주시고 확인해 주셔야 할 의무가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기적이라면 그것도 보여주시라고 은근 엄포와 떼를 썼던 것 같다. 그래야 가슴 저미게 아까운 내 아들의 순명이 헛됨이 아니라, 당신의 계획 안에 있음을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렇게 위로받고 싶었다. 확인하고 싶었다. 성서의 한 구절처럼 울며 가던 사람이 웃으며 돌아오듯, 그렇게 살 것 같았다. 엘리사벳은 점점 완전한 혼수상태로 빠져들었다.
 

미사보를 쓰고 활짝 웃는 영정사진 속의 엘리사벳을 보고, 연도를 하는 모든 신자들은 본인들도 영정사진은 미사보를 쓰고 찍어야겠다고 부러워했다. 그 사진은 엘리사벳의 작은딸에게 엄마의 모습이라고 쥐어주었다. 많이 보고 싶어 했다고, 얼마나 예쁘게 자랐는지, 함께하지 못해 미안해했다고. 엄마가 그렇게 말했다는 것에 작은 소녀는 물이 오르듯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하늘에 올라 딸들을 위해 기도할 거라고, 특히 작은딸을 위해 하느님께 아주 많이 기도한다고 마지막까지 그렇게 꼭 전해달라고 했다는 마음을 전했다.
 

여릿한 어린 소녀가 말한다. 우리 엄마가 이렇게 생겼었구나. 아줌마! 우리 엄마가 또 뭐라고 했어요. 많이 아파했나요. 저에 대해서 무슨 말을 했나요. 우리 엄마 목소리가 어땠어요. 조용조용 내 입을 통해 엄마를 느끼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이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와 같았다. 얼마나 많은 날을 그리워했을까. 작고 여린 삶의 사이사이로, 한겨울 혹한의 얼음조각이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켜켜이 박혔구나 싶었다.    
 

조금만 일찍 오지 그랬어. 하는 안타까움이 자글자글 가슴 속에서 뜨거웠다. 아빠가 가지 않는 게 좋겠다고 하더란다. 하지만 생각을 많이 하였는지 삼우제 날이라도 보내 줘서 다행이었다. 엘리사벳의 유품을 정리하여 큰딸에게 주며 말했다. 살아가면서 의지할 수 있는 신앙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엄마를 보면서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작은딸에게 두 손을 잡고 잊지 말라고, 언제나 기도해 주고 있는 엄마가 있다는 것을 절대 잊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그리고 17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움이 사무칠 때면 내 안의 울림은 말한다. 맘껏 사랑했다고. 더 할 수 없이 온 생을 통해 받을 사랑을 다 받았었다는 것을 깨우쳐 주었다. 온전히 사랑하고 사랑을 받았다. 안드레아는 주님이 주신 선물이었었다는 것을 알았다. 은총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모두가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그러나 안드레아 같은 죽음이, 순교자의 죽음이 얼마나 고귀하고 선택된 십자가의 죽음인가. 가슴 바닥에서 위로의 감도를 느낀다. 이제 어미도 고희를 넘긴 서릿발을 머리에 이고 가는 중노가 되어간다오.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 기도한다.   
 

여리여리한 어린 소녀를 잊고 살았는데, 전화 한 통에 기적처럼 모든 기억이 되돌아왔다. 그리고 맑은 공기가 단전까지 이르며 훅하니 영혼이 깨어나는 듯 선명하게 지혜가 이른다. 아버지 하느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고 있구나. 그분의 시간은 천 년도 하루와 같다고 하신다. 그러므로 당신의 약속을 잊지도 않으시며 잠들지도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다시금 놀라워 무릎을 꿇는다. 오십 배, 백 배로 거두시는 분. 생각지 못한 시간에.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당신을 드러내시는 아버지 하느님. 그때와 시간은 아버지밖에 모른다고 하신 말씀을. 당신이 드러내고자 하는 방법으로 구원의 약속을 지키시는 분.
 

아버지의 계획이 마리아에게서 이루어지듯이. 그 여리여리한 어린 소녀가 성년이 되어 붉은 열매를 맺으려 한다. 보아라 나의 길은 너의 길과 같지 않고, 나의 방법은 너희의 방법과 같지 않다고 하신 말씀을 다시 한 번 깊이 깨달으며 살아계신 하느님이심을 고백한다.
 

성당 마당의 붉은 단풍나무는 잎이 바짝 말라 별이 되었다. 무수히 많은 별을 매달아 은하수처럼 반짝이며 빛을 쏟아낸다. 신자들이 받치는 묵주의 기도가 전부 별이 되어 나무에서 찬양을 쏟아내고 있는 것 같다. 서원자를 위해 이 찬미를 봉헌한다. 하느님 길이 찬미 받으시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안드레아의 삶과 바꾼 젊은 친구들에게도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내일은 국립묘지 현충원 의사자의 묘원을 방문해야 하겠다. 많이 사랑해 줘서 고맙다고. 어미도 무지하게 사랑했노라고 ….
 

미사가 끝나고 신부님께서 말씀하신다. 오늘은 헝가리 성녀 엘리사벳의 기념일입니다. 엘리사벳 축일이신 분 계신가요. 속으로 대답한다. 신부님 제 대녀 중에 있어요. 너무나 그 성녀를 좋아했던 대녀, 그녀의 딸이 서원을 한다네요, 축복해 주세요.
 

묵주를 들고 올려다본 성당 마당의 붉은 단풍나무가 역광을 받아 살랑이는 잎들이 모두 연보라빛 물비늘처럼 눈부시다. 내 깊은 곳에서 시메온의 노래가 울려온다.

 

주여 말씀하신 대로

이제는 주의 종을 평안히 떠나가게 하소서.

 

만민 앞에 마련하신 주의 구원을

이미 내 눈으로 보았나이다.

 

이교 백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시오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 되시는 구원을 보았나이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2-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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