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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6년 6월 30일 사제서품 뒤 첫미사를 봉헌하는 김 주교임명자. |
3월 19일, 청주교구의 새 목자로 김종강 신부가 임명됐다. 마침 이날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이어서 새 목자 탄생 소식을 접한 교구 공동체는 술렁임 속에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김종강 주교임명자의 출신 본당인 오창본당은 일제히 환호하면서 “코로나19의 고통 속에서 받은 ‘희망의 선물’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음은 김 주교임명자가 살아온 삶과 신앙, 그리고 그에게 거는 교구 하느님 백성의 기대와 바람, 축하 인사다.
4대째 신앙 이어온 구교우 집안 ‘지덕체(智德體)를 갖춘 목자’. 그러면서도 ‘내면의 가난함과 겸손함, 온화함을 잊지 않는 친교의 목자.’
신임 김종강 주교임명자에 대한 교구 안팎의 평가다. 26년간 사제로 살면서 그만큼 교구 공동체에서 그는 신망을 얻었다. 본당 신부로, 유학생으로, 교구 국장 신부로, 교수 신부로, 무엇보다 사목자로 살아온 삶은 하느님과의 깊은 친교 속에서 선교적 투신으로 솔선한 세월이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다재다능함은 교구에서 유명했다. 축구와 농구, 테니스, 탁구 등 못 하는 운동이 없었고, 기타 연주와 노래도 잘했다. 독서량이 많을 뿐 아니라 공부도 꾸준했다. 특히 성품이 온화한 데다 친화력이 뛰어나 선후배 사제들, 평신도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사제수품 동기인 교구 사회사목국장 최정묵 신부는 “다재다능한 만큼 선후배 사제들, 교구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으니까, 앞으로 많은 분과 소통하는 목자가 되시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그러면서도 “하루하루가 살얼음판과 같이 위태롭고 무거운 주교직을 받아들이고 순명해야 하는 삶이 안타깝다”며 기도로 동반하겠다고 약속했다.
김 주교임명자는 1965년생이다.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가곡리가 출생지. 이곳에 자리한 가곡공소는 100년을 넘긴 유서 깊은 공소로, 김 주교임명자는 물론 가족들 신앙의 요람이다. 그 공동체와 함께해온 그의 집안은 증조(김광식 야고보) 때부터 4대째 신앙을 잇는 구교우 집안이다. 김대건 신부 직계는 아니지만, 안경공파로 지파(支派)가 같다. 소신학교 출신으로 초등학교 교장을 지낸 아버지 김철배(야고보, 1919~1991)씨와 수도자를 꿈꾸고 수녀원에 입회했다가 나온 어머니 김수영(마리아, 1924~1986)씨 아래, 형제는 김은용(요한)·종란(율리안나)·종면(이냐시오)·종희(베르나뎃타)·종상(토마스)와 막내 김 주교임명자까지 4남 2녀다. 다른 건 몰라도 만과(저녁기도)는 빼먹지 않고 바치는 신앙적 분위기 속에서 자라났다.
맏형 김은용(요한, 74, 수원교구 안양 중앙본당)씨는 “동생 신부님의 주교 임명 소식을 접하고 자비하신 하느님 사랑을 넘치게 받았음에 감사를 드렸고, 앞으로도 주님의 일을 행복하게 하시기를 기도했다”면서 “성인 주교가 되시길 기도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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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0년대 초, 내덕동주교좌본당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던 시절의 김 주교임명자(오른쪽). 가운데가 장봉훈 주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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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0년대 말, 가곡리 고향집에서 부모 김철배·김수영씨와 기념 촬영을 하는 6남매. 김 주교임명자는 어머니 품에 안겨 있다. |
장봉훈 주교 보며 처음 사제 성소 키워성소가 빨랐던 건 아니다. 일반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던 그는 내덕동주교좌본당에서 봉사하다가 성소를 찾는다.
“대학 시절에 본당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했는데, 그때 주임 신부님이 장봉훈 주교님, 보좌가 총대리이신 성완해 신부님이셨어요. 주교님은 본당 신자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몸에 받으셨는데, 그 성소를 보면서 하느님의 부르심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그런 것이 제 안에 쌓이며 성소를 선택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 뒤 대구가톨릭대에 들어갔다가 입대, 통신병으로 복무한 뒤 신학교로 다시 돌아와 9년 만에 졸업하고 1996년 사제품을 받았다. 수품 성구는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1코린 13,2) ‘늦깎이 새신부’였다. 이어 청주 서운동·흥덕본당 보좌, 학산본당 주임으로 사목한 뒤 장 주교의 권고로 로마 유학을 떠나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에서 교회사를 전공했다. 석사학위 논문은 15세기에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장상을 지낸 바니가롤라 수녀의 삶과 그 시대를 주제로 썼다. 논문을 마치고 나서도 그는 로마에 5년 8개월 동안 머물러야 했다. 로마에 유학하는 사제들을 위한 베드로 기숙사와 바오로 기숙사 중 바오로 기숙사, 곧 성 바오로국제선교신학원 부원장직을 맡았기 때문이다.
“제가 바오로국제신학원에서 학생으로 3년, 부원장으로 6년을 살았는데, 부원장직은 제게 특별한 체험의 시간이었습니다. 한국사람으로는 최초였는데, 많은 분에게 축하를 받았어요. 200명쯤 사는 기숙사인데, 거기서 몇천 명은 만난 것 같습니다. 많은 신부님을 만나 세계 교회나 선교지역 이야기를 들으며 사제로서 제 삶에 안주하고 있는 건 아닌지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 그보다 1년 먼저 로마유학을 떠나 성서학을 공부하고 있던 신학교 입학 동기 정용진(청주교구 복음화연구소장) 신부는 “당시에 김종강 주교임명자께서 ‘교회 역사 안에서 교회가 걸어온 길을 묵상하고, 세상을 읽어나가는 방식을 교회사를 통해 보는 건 좋은 몫을 택한 것’이라고 말했던 걸 기억한다”고 회고했다. 이어 “요즘 기존 교회 모습에 실망하고 무력함을 느끼는 분들이 있는 상황에서 김 주교임명자께서 하느님의 온 백성과 함께 새로운 길을 여는 데, 주교님의 겸손과 신중함이 좋은 표양이 되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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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6월 교황청 시성성에 133위 시복예비심사문서를 제출하고 기념 촬영을 하는 시복시성주교특위 대표단. 왼쪽에서 두 번째가 김 주교임명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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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구 청년양업밴드와 함께하는 청소년사목국장 시절의 김 주교임명자. |
어버이 같은 주교님 되시길 소망합니다귀국 뒤 그는 교구 청소년국장으로 부임, 3년간 청소년들과 함께했고, 충주 계명본당 주임을 거쳐 대전가톨릭대 교수로 부임, 라틴어와 교회사를 가르치면서 교구 신학원장도 겸했다.
“제 이름이 종강이잖아요. 그래서 학생들이 좋아했지요.(웃음) 그렇게 신학생들에게 다가가 같이 운동하고, 같이 기도하고, 같이 공부했습니다. 신학교 갔을 때 신학생들에게 첫인사하며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저는 여러분을 가르치러 온 사람이 아닙니다. 그냥 제 성소를 살기 위해 왔습니다’ 하고 말했지요. 그때 신학생들은 저를 어떻게 기억할지 모르지만, 저는 그냥 같이 살고 같이 있으려고 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5년을 신학교에서 보낸 김 주교임명자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8월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관리국장으로 파견돼 일해왔고, 또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시복 청원인과 ‘한국-교황청 관계사 발굴 사업’ 실무책임자도 겸했다.
새 교구장 주교를 맞게 된 김경환(가브리엘, 60) 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장은 “모든 이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시는 어버이 같은 주교님이 되시길 소망한다”고 기대했다. 또한, 고명자(아빌라의 데레사, 56) 교구 여성연합회장은 “새 교구장 주교님 임명을 계기로 신자들이 언제든지 소통하고, 희망을 나누고, 활기차게 신앙을 나눌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희망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