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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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소자들 돌본 30년...내 영혼 일깨운 시간

사순에 만난 사람 (3) 재소자들 위해 30년 봉사한 박영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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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희씨.



한 사람의 30년 인생을 만났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크고 작은 파도를 넘어야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기쁨과 행복을 동력으로 삼아 거친 바다를 헤쳐나갔다. 재소자들을 위해 30년을 살아온 박영희(젬마, 72, 전주교구 송천동본당)씨 이야기다. 30년의 인생을 만나기에 3시간이라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그는 30년을 3시간 안에 차곡차곡 담아냈다. 사순 제5주일, 30년간 ‘선한 일’을 해 온 박영희씨를 소개한다.




부드러움 속에 공존하는 강인함


박영희씨를 만나러 전북 전주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아갔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현관 문앞에 나와 반갑게 기자를 맞아주는 박씨. 그의 얼굴에서 보이는 미소는 부드러우면서도 왠지 모를 강인함이 느껴졌다.

박씨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 곳곳에 놓인 성물, 거실 한 편에 마련된 작은 책상 위에 올려놓은 성경, 묵주, 초는 그의 일상이 어떤지, 또 그의 신앙생활은 어떤지 말해주고 있었다. “오신다고 해서 자료들을 좀 찾아놨어요.” 박씨가 종교위원 위촉장, 재소자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두 손 가득 들고 왔다. “육체적으로 운동하지 않으면 육체가 무너지듯이 영혼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영혼도 운동하지 않으면 잠들어버리거든요. 저는 교도소가 저를 영적인 운동을 시켰다고 생각해요.” 자료들을 식탁 위에 올려놓은 박씨가 재소자들을 위해 살아온 그의 30년 인생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교정사목에 발을 들이다


박씨가 재소자들을 위해 봉사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다. 송천동본당의 한 신자가 돌보던 무기수의 자녀들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렇게 들어가게 된 전주교도소에서 박씨는 한 무기수를 만났다. 무기수는 자신이 수용된 곳 주변에서 거처를 옮겨가며 옥바라지를 하던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를 박씨에게 털어놨다. “무기수가 이야기를 하는데 제가 엄청 울었어요. 그 사람이 울면서 어머니 이야기를 했는데 ‘불효자는 웁니다’ 노래를 부르더라고요. 제가 3개월을 그 사람을 만나며 울었어요. 너무 가슴 아파서요. 그렇게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이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박씨는 그 후 전주교도소 교화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던 유양자(78, 율리안나)씨의 도움을 받아 본격적으로 봉사에 뛰어들었다. “신나서 일하는 사람이 있고 억지로 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저는 신나서 했어요. 기쁘고 힘이 났어요.” 그가 재소자들에게 온 마음을 다할 수 있었던 이유다.


▲ 박영희씨가 한 재소자에게 받은 편지와 현금 7000원.



재소자들의 마음에 귀 기울이다


박씨는 전주교도소 교화위원들의 모임인 ‘정심회’에서 활동했다. 무기수와 무연고자가 대상이었다. 박씨는 재소자들을 만나러 갈 때 그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해갔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저는 항상 사람이 좋았어요. 재소자들이 전혀 무섭지 않았어요.” 사람을 좋아했기에 박씨는 마음을 열고 재소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하면 그 자리에 안 가죠. 이해할 준비가 돼 있으니까 저에게 털어놓으라고 하죠. 털어내고 살라고 하는 마음으로 가죠.” 그렇게 박씨가 관계를 맺은 재소자만 수십 명. 그러다 보니 많은 재소자가 박씨에게 감사 편지를 보내왔다. “교도소 안에서 일해서 번 돈 7000원을 보내온 사람도 있어요.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 사람들에게 7000원은 70만 원과 같아요. 안에서 휴지도 눈치 보고 빌려 쓰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 돈을 간직하고 있어요. 귀한 돈을 받았다는 생각에서요.”

박씨는 재소자들의 이야기에만 귀 기울인 것이 아니라 물질적으로도 그들을 도왔다. 영치금을 넣어주기도 했고 출소한 사람들을 자신의 집에서 지내도록 하기도 했다. 그들이 정부로부터 생계비를 받아 살아갈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박씨는 30년간 그들을 위해 산 것이나 다름없다.


▲ 삼례 나라수퍼 사건 재심 무죄 판결 직후 (왼쪽부터) 박영희씨의 딸 백선경 변호사, 박영희씨, 삼례 3인. 사진=박영희씨 제공



삼례 나라슈퍼 사건의 진실을 밝히다


1999년 2월 6일 오전 4시. 전북 완주군 삼례읍의 나라슈퍼에 3인조 강도가 침입해 잠을 자고 있던 할머니를 살해하고 현금과 패물을 들고 달아난 사건이 발생한다. 이후 같은 동네에 살던 스무 살 안팎의 청년이었던 임명선, 최대열, 강인구씨가 체포돼 강도치사 혐의로 징역 3~6년을 선고받는다. 당시 교화위원으로 활동하던 박씨는 교도소 안에서 임명선씨를 만났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앞뒤가 맞지 않았어요. 그래서 들은 이야기를 집에 와서 적은 후 범죄 현장을 찾아가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6개월을 다니다 보니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박씨는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임명선, 최대열, 강인구씨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그들의 가족과 피해자 가족을 만나고 경찰서와 검찰, 법원을 오간 끝에 경찰의 강압적이고 부실한 수사였음을 밝혀내고 그들의 무죄를 입증해냈다. 이후 진범이 따로 있다는 제보가 있었고 마침내 2016년 10월 재심에서 임명선, 최대열, 강인구씨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덮으려고 애를 쓸수록 밑에서 올라오려는 힘은 세지는 거 같아요.” 삼례 나라슈퍼 사건은 박씨가 재소자들에게 온 마음을 다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민영교도소 설립의 꿈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교도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참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박씨는 개신교에서 운영하는 민간교도소인 ‘소망교도소(경기도 여주시 소재)’를 보면 부러운 생각이 든다. 동시에 천주교도 민간교도소를 운영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 “천주교는 민간교도소를 내실 있게 운영할 수 있어요. 일치된 종교이고 통합된 교회, 세계 교회이기 때문에 우리가 갖고 있는 장점을 잘 살리면 될 것 같아요.” 박씨는 “민간교도소의 부작용도 적지 않다고 하지만 시행착오 없이는 성공도 없다고 생각한다”며 “변화하는 것 자체가 성공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천주교도 언젠가는 복음화의 최전방 현장에서 그들을 도와야 한다”며 “천주교에서 민영교도소를 만든다면 얼마든지 가서 봉사하겠다”고 했다. 그는 “저는 재소자들에게 도움이 되라고 하느님께 임무를 받은 사람”이라며 “재소자들을 도와줄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범을 막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의 마음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박씨는 현재 재소자들이나 출소한 사람들과 연락을 하지 않는다. “헤어질 때는 헤어지는 것이 좋더라고요. 먼저 연락하는 경우도 없어요. 그런데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보기는 해요.” 박씨에게는 소원이 하나 있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삼례 아이들이 가장 보고 싶어요. 재심 무죄 판결 후 사진 한 장 찍고 이런저런 이유로 지금까지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죽기 전에는 꼭 한번 보고 싶어요.”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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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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