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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레스센터에서 내외신 기자들을 상대로 기자 회견하는 모습. |
내가 교구 홍보 일을 하면서 잊을 수 없는 분은 교황청 대변인 롬바르디 신부님(Fr. Federico Lombardi S.J.)이다. 2014년 교황님 방문이 전격적으로 결정된 후 가장 많이 교류했던 인물은 롬바르디 신부님일 것이다. 예민하고 중요한 문제는 물론 아주 사소한 일까지도 양측이 미리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며 수십 번 의견을 주고받았다. 어떤 경우는 아주 사소한 문제도 크로스체크하며 논의했다. 그때 나는 교황청에서 우리의 의견을 대부분 존중하고 수용해주는 느낌을 받았다. 롬바르디 신부님과의 만남은 내가 일하는 데도 큰 자극이 되었다. 당시 10여 년 넘게 홍보 분야에서 일한 나는 타성에 젖을 수도 있었는데 신부님과 며칠 함께 지내면서 많은 감동과 가르침을 받았다. 신부님은 멋스러운 노사제의 모습은 물론 세련된 매너와 겸손함과 솔직함, 유머까지 겸비한 매력 넘치는 분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2014년 8월 서울 공항에 도착한 후 4박 5일간의 한국 체류 일정은 조금도 쉴 틈이 없는 아주 빡빡한 일정이었다. 롬바르디 신부님은 교황님의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종일 보좌하셨다. 고된 일정이 끝나면 주 교황대사관에서 매일 프레스센터로 오셨다. 그리고 1시간 넘게 매일같이 미소를 잃지 않고 기자회견을 하며 강행군을 하셨다. 지금도 인상적인 것은 신부님은 적어도 30분 전에는 미리 오셔서 나에게 하루 일정을 자세히 설명해주셨고 의문 사항은 아주 작은 것도 확인하셨던 점이다. 당시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다. 교회 홍보는 성령의 이끄심에 의탁해야 하고 매번 처음처럼 초심으로 임해야 한다는 말씀이 기억난다. 또한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깨알같이 빽빽한 글과 함께 작은 그림도 그려 넣은 손바닥만 한 작은 취재 노트였다. 그래서 롬바르디 신부님이 기자들에게 설명할 때,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입체적으로 느껴졌다. 연세가 드신 신부님이 피곤할 만도 하신데 어떤 기자의 질문에도 귀 기울이며 성실한 답변을 하셨다. 본 편에서는 당시 신부님과 나누었던 대화와 편지 등을 인터뷰로 재구성했다.
▶신부님에 관해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1942년 8월 29일, 이탈리아 북쪽의 아름다운 도시 살루초에서 태어났고 독일에서 수학과 신학을 공부했어요. 1972년에 예수회 사제로 서품받았고 1991년부터 바티칸 라디오와 바티칸 텔레비전 방송국에서도 일했죠. 2006년부터 교황청 공보실장, 대변인으로 10년간 일했습니다. 현재는 요제프 라칭거-베네딕토 16세 재단 이사장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7년 9월에 로마 바티칸에서 열린 ‘한국 천주교회 230년 전시회’ 개막식에서 신부님을 뵈었을 때 건강이 조금 안 좋다고 하셨는데요?
나이가 들으면 자연히 기력도 약해지는 게 순리이죠, 그래도 정신과 영혼은 더욱 젊어지려고 노력합니다. (웃음)
▶어린 시절의 꿈은 무엇이었나요?사실 젊었을 때는 꿈이 많았어요. 물리학자도 되고 싶었고, 고향이 알프스산맥 근처라 훌륭한 산악인도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마음속에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깊은 신앙심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단 생각이 늘 있었어요. 17살 때 주님께 저의 삶을 봉헌하겠다고 결심하고 예수회에서 봉헌된 삶을 살기로 했고, 더 많이 봉사하도록 사제직에 추천되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세 분의 교황님 곁에서 함께 일할 수 있었다는 것이 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신부님은 한국 방문과 방문 이후가 어떻게 달라지셨나요?그 전까지 한국을 방문한 적은 없었지만, 학창 시절엔 한국 전쟁과 분단에 따른 한국인의 고통에 대해서도 배웠어요. 한국분들이 정이 많고 열심한 신심을 느낄 수 있었어요. 어떤 의미에서 한국은 전 세계에서 평화와 화해를 열망하는 ‘상징적’인 나라라고 생각해요. 교황님의 방문은 단지 하나의 형식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개인적으로나 교회 공동체가 세계 사회 안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봉사자로서 선교 사명을 새롭게 지향하는 출발점이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교황님께서 한국 방문을 전격적으로 결정했던 이유는?교황님은 아시아에 대한 특별한 복음 선포의 사명을 깊게 느끼고 계셨는데 한국은 가톨릭교회가 활성화된 지역이기에 당연히 유력한 후보지였어요. 2014년 한국에서 개최된 ‘아시아 청년대회’가 교황님이 한국을 방문하는 최적의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교황님께서는 아시아의 젊은이들과의 만남을 열정적이고, 믿음과 함께하는 소통의 순간이 된다고 믿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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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롬바르디 신부가 2019년 2월 바티칸 회의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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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네딕도 16세 교황과 롬바르디 신부. 바티칸 대변인 시절인 2010년 포르투갈행 비행기에서 찍은 사진이다. |
▶오랫동안 곁에서 보좌하셨던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개인적으로 어떤 분이십니까?한마디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철저한 봉사자이세요. 선교의 정신이 탁월한 목자라고 할까요. 특히 아이들,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에게먼저 다가가 포옹하는 단순한 행동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전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꾸밈없는 사랑과 솔직함을 갖고 계시죠. 일정에 지치기 쉬운데 기도에서 힘을 얻는 열성적인 분이고 개인적으로도 소박하고 가난한 삶을 사세요. 교황님 스스로 자신이 ‘평범한’ 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계신 것을 가끔 느껴요.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목은 무엇인가요?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용서하시고 구원을 원하시는 자비로운 분이라고 전합니다. 이러한 메시지를 사람들이 잘 이해하도록 간결하고 쉬운 표현을 쓰는 것이 그분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부정이나 금지가 아닌 긍정과 사랑의 메시지입니다. 무엇보다 말과 완전히 일치하는 행동을 통해 사람들에게 이를 보여주려고 노력하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014년 8월 18일 방한 마지막 날, 로마로 떠나시기 전 명동대성당에서 ‘평화와 화해 미사’를 집전하셨다. 나는 제의방이 있던 코스트홀에서 롬바르디 신부님을 마지막으로 만났다. 나는 “신부님을 더 존경하게 되었고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당신은 정말 사제로서도 아버지 같습니다”라는 말씀을 드렸다. 롬바르디 신부님은 나를 보며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나도 만나서 반가웠고, 정말 고마웠다”며 내 손을 꼭 잡아주셨다. 우리는 손을 놓지 않고 교황님을 따라서 코스트홀에서 명동 지하 성당 앞까지 함께 걸었다. 우리는 2분도 안 되는 시간을 말없이 손을 꼭 잡고 걸어갔다. 나의 인생에서 정말 마음이 따듯해졌던 잊지 못할 순간이 되었다. 어렸을 때 부모님 외에 나의 손을 이렇게 오랫동안 따듯하게 잡아주신 분이 있었을까. 지금도 주어진 일을 열심히 수행하며 로마 교황청 앞 화해의 거리를 걷고 있을 롬바르디 신부님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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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영엽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