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장마철, 창밖으로 장대비가 쏟아지든 보슬비가 내리든 그저 그 빗줄기를 바라보며 향긋한 차를 마실 수 있는 곳이 직장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게다가 앙증맞은 화분들이 놓인 작은 마당이 있는 한옥이라면 자연스레 짙은 부러움이 우러나온다. 다양한 삶의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는 ‘타인의 삶’. 호전다실 박재형(프란치스코) 대표를 만나기 위해 서울 종로구 서촌을 찾았다.
부드럽고 향기로운 백차부터호전다실에 들어서자 박 대표는 ‘침향’을 피우고 ‘백차’를 내준다. 부드럽고 향기로운 차란다. “차 문화가 아기자기하고 재밌어요(웃음).”
서울 서촌의 좁은 골목길 자그마한 한옥에 자리한 호전다실은 박 대표가 지난 2012년 창업한 차(茶) 회사다. 서촌을 찾는 이들에게는 꽤나 입소문이 난 곳으로,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 일본, 대만, 인도, 스리랑카 등 전 세계 유명 산지에서 차를 수입해 유통하고 있다. 차 회사답게 실내에는 다양한 차와 다기가 가득하다. 그런데 그 사이로 ‘성 프란치스코 상’이 보인다.
“20대 초반에 어른들과 함께 법정 스님을 만난 적이 있어요. 제 세례명이 프란치스코라고 하니까 ‘나의 무소유는 프란치스코에게서 왔다’고 하시더라고요. 유아세례를 받아서 본명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죠. 이후 아내와 성가정을 이루고 싶은 마음에 재속프란치스코회에 입회했어요.”
재속프란치스코회는 세속에 살면서 프란치스코 성인의 정신을 실천하는 평신도를 위한 단체다. 박 대표가 유아세례를 받았고 프란치스칸이라고 하면 어려서부터 내내 신실한 신앙생활을 해왔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에게 종교는 ‘불화’와 ‘방황’의 단초였다. “부모님이 결혼 후 각자 개신교와 천주교에 깊게 빠져드셨어요. 아버지가 직장까지 그만두고 목사가 되실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인류가 해결하지 못한 종교전쟁이 우리 집안에서 치열하게 벌어졌죠.”
덕분에 성당과 교회를 오가야 했던 그는 급기야 사춘기 때 신을 뒤로하기로 결심한다. “‘왜 우리 집은 당신 때문에 괴로운가’라는 생각에 14년을 냉담했어요. 극도의 분노로 20대를 허비했죠. 수능을 6번 보고, 공무원 시험, 고시 등을 준비하며 10년을 살았는데, 원하는 바를 아무것도 얻지 못했어요. 친구들은 취업하고 결혼하는데, 나한테는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밑바닥에서 다시 찾은 신앙아무것도 없을 때 평소 좋아하던 차(茶)에 더 빠져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차나 클래식, 오디오 등 취미생활에 목숨을 걸었다. 떨어진 자존감을 감출 특별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하지만 외연이 화려해질수록 마음의 병은 깊어졌고, 급기야 우울감과 대인기피, 공황증세까지 보였다.
그러다 어느 일요일 명동성당에 갔다. 그냥 발길이 닿았다. 랩처럼 수많은 기도문이 뱉어져 나왔고, ‘주여 저를 용서해 주소서’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왈칵 눈물이 났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았고, 내가 피해자라고만 생각했는데, 나 역시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신앙 회복을 하게 됐죠.”
혼자 신앙생활을 하면 성당에 오가기만 할 것 같아서 서강대 예수회에서 이냐시오 영성을 배웠다. 그때가 30대 초반. 그토록 바라던 학벌도, 제대로 된 직업도 없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자신이 꿈꾸던 인생을 살아온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1년 만에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아내는 한의원을 개원하고 박 대표는 호전다실도 창업했다. “제가 생각하는 하느님은 ‘욕심부리면 그 어떤 것도 주지 않아요. 모든 것을 버리면 다 주시죠. 20대 내내 혼자 해보려고 욕심부렸던 것들이 모두 내려놓은 순간 다 이뤄졌어요.”
프란치스코의 청빈과 박 대표의 욕망박 대표와 연락이 닿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차의 수입·유통은 물론 티클래스, 티소믈리에, 창업 등 다양한 교육 사업에도 매진하느라 요즘 정신이 없다. “스스로 차계의 백종원이 되겠다고 합니다.(웃음) 그렇게 되고 있는 것 같고요.”
그런데 프란치스코 성인 하면 바로 떠오르는 단어는 ‘청빈(淸貧)’이 아니던가. 수시로 잔에 채워주는 백차를 마시며 들은 그의 20대를 봐도 세속적인 욕망이 있는 데다 이렇게 사업까지 하는데 종신 서약한 ‘프란치스칸’이라니, 내심 이것도 하나의 겉치레인가 싶다. “솔직히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입회했죠. 제대로 활동도 못 했고요. ‘다 버리고 내주라’는데, 어느 정도여야 따라가죠. 그런데 자꾸 성소가 생각나서 3년 만인 2016년에 다시 받아달라고 부탁했어요.”
5년 정도 교육을 받으며 그제야 프란치스코회가 말하는 ‘가난’을 새롭게 이해하게 됐다. “프란치스코회는 하강, 육화된 예수님, 우리 곁에 오셔서 작아진 예수님의 말씀을 되새겨요. 즉 ‘영적 가난’으로 얘기할 수 있는 거죠. 물질적인 가난을 추구한다면 사업하는 사람은 프란치스칸이 될 수 없어요. 또 수도회의 입장은 ‘기도하러 오지 마라. 천국 가려고 오지 마라’예요. 대신 ‘머무르지 말고 나가서 성인처럼 활동하라. 너의 모습을 보고 주위 사람들이 감흥을 느껴 하느님의 복음을 알게 하라’고 해요. 그래서 이제는 명확해졌어요. ‘정직하게 돈을 벌자. 거기에 복음 말씀을 담고 번 돈은 나누자. 조직 안팎에서 역할을 하고 가정생활에 충실하자.’”
신앙심은 낮지만 노력하는 프란치스칸여러 번 찻잔을 비우다 보니 박 대표는 좀 더 편안하게 속내를 꺼냈다. 가톨릭평화신문 인터뷰가 있다는 말에 가족들의 놀림도 받았단다. ‘네가 그럴 자격이 되느냐’고. “저도 자격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신앙심도 부족하고…. 그런데 우리는 일요일에만 신자가 되잖아요. 평일에는 일상인이 되고. 그걸 극복한 것 같아요. 신앙이 일상과 합쳐지고 신앙적인 관점에서 행동하고 일도 하는 거죠.”
호전다실에서 진행하는 ‘무료 시음’도 그 일환이다. 재속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면서부터 이곳을 찾는 모든 이에게 돈을 받지 않고 차 한 잔을 제공한다. “찻자리는 모두에게 평등해요. 누구나, 누가 와도 똑같이 차 한 잔을 대접하죠. 그리고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운치 있는 한옥 찻집이 아니다. 차를 마실 수는 있지만, 그 찻잔에 돈이 오가지는 않는다. “힘든 상황도 많았고, 굶어 죽는다고 테이블을 놓고 찻집으로 운영하라는 제안도 많이 받았는데,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지금 여유가 생긴 건 아니지만, 원하는 대로는 가고 있어요. 점점 대중성을 갖게 되고, 제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게 가장 큰 가치라고 생각해요.”
60~70대가 주 소비층이던 차 업계는 몇 년 사이 연령이 많이 낮아졌다. 무료 시음은 물론 다양한 방식으로 차를 찾는 MZ세대에게 박 대표는 차를 통해 복음을 전하고 있다. “제게 주어진 달란트는 대중을 대상으로 한다고 생각해요. 회개하고 신앙 회복하면서 정말 좋았기 때문에 일을 통해 가톨릭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알리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다치 않는 이유도 이렇게 얘기하고 나면 약속이 되고 더 열심히 살게 되잖아요.”
향이 좋은 청차까지박 대표가 마지막으로 건넨 차는 비 오는 날 향이 더 돋보인다는 청차였다. 커피나 와인은 열매로 만들지만 차는 이파리로 만들어서 좀 밍밍하단다. 하지만 그 단점 때문에 아이들을 비롯해 온 가족이 함께 마실 수 있다. 또 기다림의 미학이 있는 다도(茶道)는 수도(修道)와도 닮은 모습이다. “불교에서 수행 방식으로 ‘좌선(坐禪)’을 얘기하잖아요. 차를 마시는 행위 자체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해서 ‘다선(茶禪)’이라고 하죠. 또 함께 차를 마시다 보면 깊이 있는 대화를 하게 되는데, 이렇게 친해지면 ‘다우(茶友)’라고 해요. 다우가 되면 가족만큼 친하죠.”
그는 지난 10년 동안 호전다실을 다녀간 수많은 낯선 이와 차 한 잔을 나누며 그들과 값진 시간과 마음도 나누었다. 문득 이것 또한 프란치스코 성인이 말한 진정한 ‘나눔’이 아닐까. “앞으로 프란치스코라는 제 세례명을 더 드러내며 살 것 같아요. 예전에는 이것도 신앙적인 과시욕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이렇게 한 명이라도 신앙을 회복하면 좋은 거 아닐까요. 저야 그분처럼 다 버릴 수는 없겠지만, 그 끄트머리라도 따라가고 싶습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