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2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농민 주일] 배나무밭에서 뛰놀고 흙목욕… “행복한 닭은 맛도 행복해요~”

가톨릭농민회 광주대교구연합회 김경호 농부의‘행복한농사꾼 농장’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 “저희 부부도, 여기서 일하시는 분들도, 우리 배꽃유정란을 드시는 분들도, 또 저희가 키우는 닭들까지 모두 다 행복하고 건강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하는 김경호 예로니모·이향선 세레나씨 부부.

▲ 행복한농사꾼 농장에서 방사하며 키우는 닭들이 흙 목욕을 하며 진드기를 떼어내고 있다.



17일로 제27회 농민 주일을 맞는다. 올해 농민 주일 주제는 ‘적은 것이 많은 것입니다’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태 회칙 「찬미받으소서」 제222항에 나오는 가르침이다. 이미 65세 이상 고령자가 총인구 대비 20가 넘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우리 농촌은 농사지을 사람이 태부족인 데다 소농과 가족농이 대다수다. 그래서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 박현동 아빠스는 이번 농민 주일 담화를 통해 “설자리를 잃어가는 소농들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자”고 당부한다. 이에 가톨릭농민회 광주대교구연합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는 김경호(예로니모, 50) 농민의 ‘행복한농사꾼 농장’을 찾아 소농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공장 아닌 농장을 선택 농사꾼


1만 579㎡, 3200평쯤 되는 너른 배나무밭에 닭이 빼곡히 깔렸다. 4000여 마리나 되는 닭들이 옹기종기 모여 풀과 벌레를 먹고, 때론 흙 목욕을 한다. 흰 깃털을 자랑하는 수탉 1마리에 잿빛 털 암탉이 15마리쯤 어울려 무리를 지어 살아간다. 전남 나주시 노안면에 자리한 행복한농사꾼 농장의 일상 풍경이다.

오전 8시쯤이면, 김경호씨의 바쁜 하루가 시작된다. 유정란 달걀을 거두려고 그가 축사 문을 열면, 기다렸다는 듯이 닭들은 배밭으로 뛰쳐나간다. 그는 축사별로 배밭을 세 구역으로 나눠 방사(放飼)하며 닭을 키운다. 그의 축사는 동물복지 인증 기준보다 두 배가량 넓은 공간을 확보한 데다 닭들이 먹이를 구하고 마음껏 뛰어노는 유기농 배밭을 확보했기에 동물복지는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닭이 다 크면 팔고 세대교체를 하기 위해 병아리도 2000여 마리를 더 키운다. 그래서 그가 키우는 닭은 6000마리나 된다. 축사에서 가까운 배밭은 잡풀을 보기가 힘들 정도로 황토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흙 목욕을 하는 닭들 때문에 곳곳에는 구덩이가 파헤쳐져 있다. 이렇게 키우니 닭이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고, 흙 목욕 덕에 진드기도 다 떨어져 나간다. 그래서 2017년 살충제 달걀 파동을 몰고 왔던 닭 진드기 사태도 그는 쉽게 피해 나갔다.

“방사해 키운 산란계는 육계와는 달라요. 쫄깃쫄깃한 게 정말 맛있어요.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은 그 맛이 생소하다고 하는데, 우리 동네 분들은 우리 농장 닭만 먹어요.”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자란 닭이 낳은 유정란은 난각(달걀 껍데기) 표시 사육환경번호 ‘1번’을 얻었다. 거기에 유기농에 무항생제, 동물복지ㆍ자유방목, 학교급식을 위한 해썹(HACCP), 전라남도 녹색 축산까지 인증이란 인증은 다 받았다. 그러고 나서 이 유기농 달걀에 붙인 상표 이름이 ‘배꽃유정란’이다. 배나무밭에서 방사해 키운 닭이 낳은 유정란이어서 그렇게 정했다고 한다.

방사로 닭을 키우는 게 쉬운 건 결코 아니다. 산란율도 일반 닭 75에 비하면 훨씬 떨어지고, non-GMO 사료만 먹이기에 사료비도 매달 2000만 원씩 들어간다. 또 닭을 방사하면 야생동물이나 날짐승들의 습격도 피할 수 없다. 병아리 때 1000마리였던 닭이 일정 기간 지나고 나면, 800마리로 줄어들기가 일쑤다.

하지만 그는 “좁은 케이지(cage, 닭장)에 가둬 키우는 일반 케이지 양계는 농업이 아니라 기계화된 공장일 뿐”이라며 “그런 건 관심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축사에서 유정란을 거두고 닭을 방사하고 나면, 그는 배달을 나간다. 급식을 위해 학교에, 우리농 물류센터에 차로 배달을 하고, 다시 축사로 돌아와 다시 달걀을 거두고 택배 포장을 하는 일이 종일 반복된다. 그 사이사이에 배밭 풀을 베고, 닭장을 고치고, 고장 난 기계도 고쳐야 한다. 눈코 뜰 새가 없다. 1년 365일, 하루도 쉬지 못하는 게 양계다.





모두가 행복한 삶을 위해

이뿐만이 아니다. 그 유명한 유기농 나주 배도 1년이면 3㎏들이 300상자, 5㎏들이 100상자를 수확하니, 일손이 많이 간다. 먹고 살아야 하니 논농사도 조금은 해야 한다. 동네 품앗이도 다녀야 하고, 젊은이가 떠나간 동네 일도 도맡아 해야 한다. 짬을 내기가 힘겹다. 20년째 해오던 성당 사목회 총무 일은 최근에 2년간의 안식년을 얻어 쉬고 있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귀농 20년 차다. 농사를 짓기 전에는 대학(전남대 회계학과)을 졸업한 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고향으로 내려와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했다. 그러던 중 그가 귀농을 결심하게 된 건 2002년 6월 미군 장갑차에 여중생 2명이 깔려 죽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 계기가 됐다.

“그날도 시민단체들과 함께 추모 미사와 기도회, 집회를 하고 나서 삼보일배를 했는데, 시간이 늦어져 집회를 끝내야 하는 상황이 됐어요. 야간집회를 하려면 신고를 해야 했으니까요. 다른 참가자들은 그때도 마음을 다해 삼보일배하는데, 우린 실무자로서 ‘일을 하고 있었던’ 거죠. 그때 마음에 회의가 생겼어요. 마침 그때 도법 스님이 생명평화 탁발 순례를 하면서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는 모토를 내세웠는데, 그 모토가 마음에 쏙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평화가 되자’는 마음으로 귀농을 결심했다. 그래서 혼인한 지 1년도 안 된 부인(이향선 세레나씨)의 반대를 무릅쓰고 6개월간 귀농 교육을 받았다. 주말이면 귀농한 농가를 찾아다녔다. 귀농학교 동료들과 함께였다. ‘행복해 보였던’ 귀농 선배들 덕에 전남 나주시 노안면 양천리 이슬촌으로 귀농할 수 있었다.

“처음엔 겉멋이 들어 지리산으로 가려고 했지요. 그러다가 아내의 권유로 처가가 있는 동네로 오게 됐어요. 처음엔 논밭 농사로는 못 먹고 살겠다 싶어 축사를 빌려 양계를 시작했다가 축사 땅을 빌려주신 분이 귀농하신다고 해서 땅이 없어져 문평면으로 가려고 했지요. 그런데, ‘경호가 문평면으로 간다’는 소문이 나니,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나서서 동네 땅 5950㎡(1800평)을 살 수 있게 해주셨어요. 고마울 뿐이지요. 땅의 소중함을 그때 알았어요. 나머지는 임대로 빌린 땅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양계 일로 어려움도 없지 않았다. 2005년에는 폭설이 쏟아지기에 이러다가 축사가 무너지겠다 싶어 지붕에 올라가 눈을 치우는 데, 그만 축사가 무너져 내렸다. 경험이 없어 무게중심을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사건 말고는 특별히 힘든 일이 없었다”며 그는 환하게 웃었다.

그런데 요즘 그가 천군만마를 얻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간간이 농사일을 돕던 부인이 양계 일을 돕겠다며 지난 6월 말로 사직했기 때문이다. 일을 저지르고 보는 추진력 있는 스타일인 자신에 비해 부인은 내실을 다진 뒤 사업을 확장하는 성격이어서 서로 보완해가며 농사와 양계를 병행할 수 있을 듯해 그는 무척 기쁘다.

“사실은 보람이 크다기보다는 그냥 밥 먹고 사는 정돕니다. 빚도 많고요. 그렇지만 농사하러 들어와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바람은 저희 부부도, 여기서 일하시는 분들도, 우리 배꽃유정란을 드시는 분들도, 또 저희가 키우는 닭들까지 모두 다 행복하고 건강했으면 합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방사한 닭들 사이에 선 부부의 미소가 싱그럽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2-07-13

관련뉴스

말씀사탕2026. 4. 12

욥 21장 2절
내 말을 귀담아듣게나. 그것이 바로 자네들이 나를 위로하는 것이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