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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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소연에 담긴 인권… “타인의 억울함에 관심 갖는 세상 되길”

[타인의 삶] (8)인권위 최은숙(엘리사벳) 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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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호소의 말들」을 출간한 인권위 최은숙 조사관




‘인권’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이다. 하지만 ‘인권’이라는 표현은 주로 그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할 때, 그래서 ‘인권탄압’, ‘인권침해’ 등 부정적인 단어와 결합되며, 대개는 힘없고 억울하고 소외된 이들의 울부짖음과 함께 호소될 때가 많다. 이 같은 타인의 호소를 듣고 그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일하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 다양한 삶의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는 ‘타인의 삶’. 최근 「어떤 호소의 말들」을 출간한 국가인권위원회 최은숙(엘리사벳) 조사관을 만났다.



인권위 조사관은 호소의 대상

“인권위 조사관은 누군가의 호소와 하소연을 듣는 사람이죠.”

서울YMCA 시민중계실을 거쳐 국가인권위원회에서만 20년. 최은숙 조사관은 줄곧 불합리하고 억울한 일을 겪은 누군가의 호소를 들어왔다. “YMCA 시민중계실에 있을 때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문의 전화가 빗발쳤어요. 당시에는 민원을 제기할 곳이 많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다양한 호소를 듣고, 사회적으로 억울한 일이 어디에서 발생하는지 알게 됐죠.”

20여 년의 시간과 함께 어딘가에 호소할 곳은 많아졌다. 민원을 제기할 창구도, 방법도 다양하다. 인권위에도 2021년에만 1만 건이 넘는 진정이 접수됐다. 하지만 그 하소연이 ‘인권침해 여부’를 가릴 수 있는 법률적 문장과 근거를 갖추기까지, 호소를 귀담아듣고 현장을 두루 조사하고 자료를 찾고 서식화하는 것이 조사관의 일이다. “민원이 제기되면 서류를 보고 ‘이건 인권침해다 아니다’ 바로 얘기할 수 있으면 좋지만, 그런 사안은 10도 안 돼요. 조사관은 육하원칙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가 할 일이 있는지 찾아야 해요. 있으면 좋은데, 없을 때 오히려 힘들죠. 하지만 귀담아들어야 해요. 처음에는 이상한 진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까 개선이 필요해서 권고한 사안도 많거든요.”

최은숙 조사관이 누군가의 호소에 귀 기울일 수 있었던 기제는 ‘호기심’이다. “제가 다루는 미제 사건이 예전에는 200건 정도 됐어요. 숨이 막히면서도 너무 궁금한 거예요. ‘왜 이런 사건이 벌어졌을까?’ 탐정처럼 계속 들여다보는 거죠.” 하지만 누군가의 억울한 하소연을 지속적으로 듣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러나 그들의 호소가 그가 지금껏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하다.

“매일 민원을 제기하는 분이 있었어요. 만나게 됐는데, ‘제가 조사관님 만나려고 일당을 포기하고 좋은 옷을 입고 왔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좋은 옷이라는 게 낡고 오래돼 보이는 데다 일당을 포기할 만큼 제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1시간 정도 이야기를 들었는데, 자신이 뭔가 체계적으로 다툴 수 있는 상황이라면 이렇게 매일 민원을 넣지는 않았을 거라고, 할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단지 듣기만 했을 뿐인데 고맙다며 모든 진정을 취하하셨어요. 진정인들은 억울한데 그 억울함은 해소되지 않을 때 사회적으로 내가 하는 일이 무슨 가치가 있나 무력감에 빠질 때가 있어요. 그런데 이 분이 돌아가시던 모습을 떠올리면 ‘이렇게라도 내 일을 해야 하나 보다’ 생각하곤 해요.”

억울한 마음을 외면하지 않는 따스한 마음

최근 출간한 「어떤 호소의 말들」에는 지난 20년간 품고 있던 이야기를 담았다. 글을 읽고 쓸 줄 몰라 간단한 민원도 제출하지 못하는 노인, 말이 통하지 않아 어처구니없게도 정신병원에 감금된 이주 노동자, 관행이라는 이유로 폭력을 참아내는 운동선수 등 ‘인권침해 여부’를 가르는 보고서에는 차마 다 쓰지 못한 이들의 억울한 마음과 그 호소를 마주한 따스한 마음을 함께 엮었다. “제가 만난 분들은 ‘억울하다’ 외에는 디테일을 말하기 힘들어요. 그 상세한 사연을 글로 담고 싶었어요.”

책을 읽다 보면 ‘세상에 왜 이렇게 억울한 일이 많나’ 싶다. 20년간 곡절 많은 사연을 헤집고 살았으니 최은숙 조사관의 마음 밭인들 평온할까. 경험이 쌓이면 어느 정도 거리두기가 된다지만, 인터뷰 도중 불현듯 눈시울을 붉히는 걸 보면 그도 작은 위로가 필요해 보인다. “책이 출간되는 과정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이런 얘기를 펼쳐 보이며 꽤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제가 그동안 눌러뒀는지 한꺼번에 확 올라오더라고요. 평소에는 다행히 오랫동안 함께 한 동료들이 있어서 서로 터놓고 얘기하고 응원하곤 해요. 객관적으로 보면 정말 보람된 일이잖아요. 누구에게나 ‘정말 좋은 일 하십니다’라는 말을 듣는 직업이 얼마나 되겠어요. 다른 힘든 부분은 모든 직업인의 애환이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출간은 그의 호소였는지도 모른다. 인권에 대한 의식, 그 감수성은 높아졌지만 여전히 넘쳐나는 억울한 일들, 달라지지 않는 세상에 관심과 공감을 호소하는 것이다. “얼마 전 군인권보호관도 출범했잖아요. 심각한 인권 침해를 받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걸 딛고 그 분야의 상황이 개선되는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 인권에 대한 감수성은 무척 높아졌어요. 그런데 나와 내 아이뿐만 아니라 내가 모르는 아이,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관심을 가질 때 비로소 사회는 바뀌는 것 같아요.”



나와 타인의 인권은 연결되어 있다

최은숙 조사관의 가치관과 그것이 녹아든 일상을 글로 쓰는 습관은 고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한국순교복자수녀회에서 설립한 충남 천안에 위치한 복자여고 출신이다. “당시 복자여고 교지가 굉장히 유명했어요. 저는 교지편집위원이었는데, 지도해 주시는 카타리나 수녀님을 정말 좋아했죠.(웃음) 이탈리아에서 공부하셨고 글도 쓰셨는데, 세상을 알려주셨어요. 제가 꿈을 꾸게 된 계기가 됐고요. 멋지게 살고 싶고, 다른 사람을 돕고 싶다고.”

엘리사벳이라는 세례명도 그때 얻었다. 지금은 따로 신앙생활을 하지는 않지만 20년간 인권과 함께 걸어온 만큼 그가 추구하는 삶은 종교적인 계명과도 닮아 있다. “모두 연결돼 있다는 생각을 해요. 나의 인권과 타인의 인권이 연결되어 있고, 나의 행복이 타인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 수 있거든요. 다른 사람이 없다면 내 권리도 주장할 수 없잖아요.” 동료들과는 은퇴해서 정의구현행정단을 만들자고 얘기한다. “정의구현사제단에서 따온 이름인데, 월급 받으며 이렇게 좋은 일을 할 수 있었으니, 연금 받으면 조금씩 모아서 행정적인 부조리로 피해 입은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그 사이 억울한 이들의 호소가 잘 받아들여지는 사회를 꿈꿔 본다. “권리 구제 기관은 많아졌어요. 그런데 결과에 있어 아무도 만족하지 않을 때 역시 많죠. 인권이 다루는 영역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그래서 점점 다각적으로 들여다봐야 하는데, 일의 방식은 20년 전과 달라지지 않았고요. 이 부분에 있어서는 사회적으로 논의할 때가 됐고, 혁신이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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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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