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영적 스승이라 불리는 안셀름 그륀(독일 성 베네딕도회) 신부님을 2009년에 처음 만났다. 그륀 신부님이 한국을 방문했던 당시, 정진석 추기경께서 교구청으로 식사 초대를 하셔서 자리를 같이했다. 그륀 신부님의 첫인상은 평범하고 소박한 독일 수도자의 모습이었다. 신부님은 식사 중 대화에서도 겸손하면서도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같이 식사하는 분들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셨다. 정 추기경님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시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 무척 궁금해하셨는데, 소설가나 시인을 만나실 때도 늘 같은 질문을 하시곤 했다. 당시 정 추기경께서는 그륀 신부님에게 글의 소재나 주제를 어떻게 찾으시는지, 글은 한 번에 내리 쓰시는지 고치며 쓰시는지 자세하고 꼼꼼하게 질문하셨고, 그륀 신부님은 파안대소하셨다. 그륀 신부님은 자신은 기도나 묵상 중에 혹은 일하거나 길을 걷다가도 문득 무언가 떠오르면 짧게 노트에 기록했다가 깊은 묵상을 하신다고 하셨다. 자신은 수도자이지만 세상을 위해 기도하기 위해서 신문이나 뉴스에도 관심이 많다고 하셨다. 그때 정 추기경님은 자신도 같은 방법을 사용하는데 신부님만큼 글을 쓰는 유명한 사람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자 그륀 신부님은 자신은 글 쓰는 것이 여전히 초보이고 항상 어렵다고 하셔서 모두가 웃었다. 내가 그륀 신부님의 책을 한 권 가져와 사인을 부탁하자, 신부님은 대단한 책이 아니니까 너무 열심히 보지 말라며 농담을 건네며 웃으셨다.
Q. 그륀 신부님, 그동안 안녕하셨는지요?
A. 마티아 신부님, 연락을 주셔서 감사드리고 반가워요. 오래되었지만 2009년 명동에서의 만남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종하신 정진석 추기경님과의 격식 없는 대화와 환대를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정 추기경님의 이름으로 탄생한 선교후원회가 우크라이나 교회와 벨기에 겐트 전 교구장 루카스 반 루이(윤 루카) 주교님을 통해 겐트교구 내 노숙자와 난민 등 어려운 이들에게 도움을 준 것에 감사드립니다. 한국 교회가 앞으로도 다른 교회들을 돕기를 바랍니다.
Q. 이번 휴가는 어디서, 어떻게 보내셨나요?
A. 수도원에서 고맙게도 3주간의 휴가를 허락해주었어요. 첫 일주일 동안은 알프스의 오스트리아 질러탈(Zillertal)에서 수도회 형제들과 하이킹을 갔습니다. 질러탈은 365일 눈 덮인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며 하이킹을 할 수 있는 곳이죠. 독일 바이에른 주의 아이하흐(Aichach)에서 동생과 일주일 시간을 보냈어요. 거기에서도 하이킹을 많이 했고 편안하게 책을 뒤적이며 독서했습니다. 마지막 일주일은 여동생과 함께 아름답고 알프스의 향기가 가득한 무르나우(Murnau)에서 즐겁게 지냈습니다. 또한, 무르나우에서 신자들과 함께 행복한 주일 미사를 드렸습니다. 9월 중순에 3주간의 휴가를 잘 끝내고 수도원으로 돌아와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Q. 자전거 하이킹을 무척 좋아하시나 봐요. 연세도 적지 않으신데 힘들지 않으신가요?
A. 아직까지는 다행히도 하이킹을 즐길 수 있는 건강을 갖고 있습니다.(웃음) 대부분의 독일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자전거를 타다 보니 하이킹을 좋아하죠. 많은 독일인들이 산이 있는 지역에서는 산행을 좋아하고, 숲이나 강변 지역에서 산책을 즐기는 게 보통이죠. 아마도 자연을 더 가까이 느끼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자연 속에서 많은 영감을 받고 하느님을 만날 수 있죠.
Q. 신부님의 책은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사람이 좋아한다고 생각해요. 요즘 특별히 쓰고 있는 주제가 있나요?
A. 저는 요즘에 ‘화해’를 주제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나 묵상도 자연히 화해에 관해서 하게 됩니다. 사회의 화해, 민족 간의 화해뿐 아니라 가족·회사·교회의 화해, 그리고 자연과의 화해도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자신과의 화해도 아주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코로나 팬데믹으로 2년 넘게 세계인들이 고통을 받았고 현재도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도 예전으로 똑같이 복귀는 어렵고 여러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 합니다. 교회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우리 한국 교회도 실제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해요. 교회는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요?
A. 교회는 코로나 위기에 더욱더 창의적이고 새로운 방법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교회의 공식 전례나 전통적인 활동 이외에도, 신자들의 신앙이 일상생활로 잘 옮겨갈 수 있도록 신자 개개인의 삶과 생각에도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계획과 시도가 필요할 것입니다. 교회는 더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신자들과 가난하고 소외받은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야 하고, 영적 체험의 장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여러 가지 면에서 점점 더 고립되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는데 개개인을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새로운 연대를 지닐 수 있도록 교회가 앞장서야 합니다. 예를 들면 교회가 늘어나는 노숙자들에게 먹을 것과 편안히 쉴 곳을 더 많이 제공해야 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개개인도 세상의 아주 소중한 존재임을 인식하게 해야 하는 역할을 교회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신부님과 대화할 수 있어서 행복했고 바쁘신 중에도 시간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A. 네, 저를 기억하고 연락해 주셔서 반가웠고 고맙습니다. 허영엽 마티아 신부님이 하시는 일이 다른 많은 사람에게 축복이 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안셀름 그륀 신부님은 오늘날 바른길을 찾는 많은 이들에게 큰 영감을 일으키고 위로와 깨달음을 주신다. 그륀 신부님은 우리들이 전통적인 신앙을 지키면서도 그 표현과 실천은 시대와 상황에 맞게 계속 변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노동과 일상의 삶에서 신자와 비신자가 차이가 없지만 신자는 일상의 삶 안에서도 신앙이 작용해야 하고, 주변 사람들을 예수님의 영으로서 받아들이고 모든 사람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주님 안에서 온전해지고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의 삶과 화해하고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느님에 눈을 떠 살아가는 사람이라 했다.
그륀 신부님의 말씀에서 초대 교회의 공동체가 보여준 선교의 개념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 더욱더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해본다. 2009년 당시 그륀 신부님은 교구청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가다 멈추어서 식탁 쪽을 보셨다. 그때 교구장님 자리 앞에는 새 신부님들의 얼굴과 이름이 있는 서품 초대장을 한 해 동안 식탁보로 쓰던 비닐 밑에 두었다. 신부님은 수십 명의 젊은 신부님들의 사진을 보며 저 사진들은 무엇이냐고 궁금해하셨다. 내가 우리 교구에서 최근에 사제품을 받은 새 신부님들이라고 하자 무척 놀라시며 한 교구에서 저렇게 많은 신부님이 수품하는 것은 큰 은총이며 한국 교회가 젊은 교회라는 징표라고 하셨다. 그런데 왜 식탁보 밑에 두느냐며 질문을 하셨다. 교구장님이 일 년 동안 새 신부님들의 얼굴과 이름을 외우기 위해서라고 하자 그륀 신부님은 궁금증이 풀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때의 그륀 신부님의 환하고 인자한 미소가 신부님의 책을 읽을 때마다 떠올라 마음이 편안해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륀 신부님이 기도하고 성경 말씀을 묵상하며 쓰고 계신 화해에 관한 책이 무척 기다려진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영성심리상담교육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