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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 주일]전교는, 생명 가득한 주님 말씀 나누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

전교 주일 - 전교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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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문채현





교회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주님께서 맡기신 선교 사명을 열린 자세로 받아들여 땅끝까지 복음을 선포하고 신앙을 증거할 것을 요청한다. 이에 교회는 1926년부터 해마다 10월 셋째 주일을 ‘전교 주일’로 지내면서 그리스도인의 선교 사명을 일깨우고, 전교 지역을 돕는 행사를 열고 있다.

올해 제96차 전교 주일을 맞아 2013년 사도좌 착좌 후부터 2022년까지 발표한 10편의 전교 주일 담화를 통해 밝힌 프란치스코 교황의 전교에 대한 가르침을 종합 정리했다.







첫 선교사이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선교사’로서 가장 먼저 파견되신 분으로(요한 20,21 참조), 하느님 아버지의 ‘성실한 증인’(묵시 1,5 참조)이시다.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달으며 구원의 보편 성사인 ‘교회’를 통해 당신 자비를 체험하게 되기를 바라신다.(1티모 2,4; 「교회헌장」 48 참조)

선교의 역사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는 주님의 간절한 바람으로 시작됐다.(요한 15,10-17 참조)



모든 그리스도인은 선교사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 아버지의 선교사이셨듯이 모든 그리스도인은 선교사가 되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라고 부름 받았다. 선교의 본질은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이다. 참하느님이시며 참인간이신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느님과 인류에 대한 사랑 때문에 강생하셨고 수난하셨으며,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증언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성령에 힘입어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의 복음을 선포하도록 우리를 끊임없이 파견하신다. 선교는 각자가 아니라 함께, 개인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와 이루는 친교 안에서 수행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제자 공동체인 교회는 그리스도를 증언하여 온 세상에 복음을 알려야 하는 사명 외에는 다른 어떤 사명도 없다. 복음 선포는 그리스도 제자의 본분 가운데 하나이고 교회의 삶 전체에 활력을 주는 지속적인 투신이다. 선교가 바로 교회의 정체성이다. 따라서 교회는 본성상 선교하는 교회이다. 곧 교회는 태생적으로 ‘밖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더는 그리스도의 교회일 수 없다.



교회의 선교 사명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늘로 오르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신 선교 명령은 세례성사에 내재돼 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

가톨릭교회의 선교는 종교 이념을 퍼뜨리거나 개종을 권유하는 것이 아니다. 아울러 고결한 윤리 가르침을 제시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가 선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하고, 우리 자신은 예수님을 위한 여러분의 종으로 선포합니다.”(2코린 4,5)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열정이며 또한 그분 백성을 향한 열정이다.

교회의 선교 사명은 선의의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며 복음의 변화시키는 힘에 토대를 두고 있다. 복음은 새 생명, 곧 생명을 주시는 당신의 영을 선사하심으로써 우리에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을 담고 있고 또 전달하기 때문이다.(요한 14,6 참조) 이것이 바로 세상에 생명을 주는 복음 선포이다.(요한 3,16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선교를 통해 몸소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시고 활동하신다. 그러므로 교회의 선교는 은혜로운 구원의 “때”를 역사 안에 현존하게 한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복음 선포로 우리와 동시대 사람이 되시어, 그분을 믿음과 사랑으로 영접하는 사람들이 성령의 변화시키는 능력을 체험할 수 있게 하신다. 따라서 선교는 그리스도인 생활의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이다.



선교의 우선 대상은 누구인가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다. 이러한 까닭에 모든 민족을 대상으로 한 선교는 여전히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모든 사람이 하느님께 사랑받는 기쁨, 구원의 기쁨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신앙은 혼자만 간직할 수 없고 나누어야 하는 선물이다.

“누가 복음 선포의 우선적 대상이 되어야 하나?” 그 답은 명료하며 복음에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은 바로 가난한 이들, 작은 이들, 병든 이들, 무시당하거나 잊힌 이들, 우리에게 보답할 수 없는 이들이다.(루카 14,13-14 참조) 이들을 우선 대상으로 삼는 복음화는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루시는 하느님 나라의 표징이다.

이 세상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반드시 필요하다. 교회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상처 입고 피 흘리는 인간들을 돌보아 주시는 ‘착한 사마리아인’으로서, 목표 없이 방황하는 사람들을 찾아 나서시는 ‘착한 목자’로서 당신의 사명을 계속하신다.

오늘날 ‘땅끝’은 예수님의 복음과 교회의 성사적 현존과는 여전히 이질적인 인간 문화와 사회 및 종교 상황을 나타낸다. 그중 가장 황폐한 변방은, 신앙에 무관심한 곳, 하느님 안에서 사는 충만한 삶을 증오하는 곳이다.

오늘날 땅끝은 매우 상대적이며 언제든 쉽게 ‘항해 가능’하다. 디지털 세상, 곧 너무나 만연하고 언제든 이용 가능한 소셜 네트워크는 경계를 허물고 거리감을 없애며 차이를 줄인다. 땅끝까지 이르는 선교에 동참하려면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하느님께서 주신 그 소명에 헌신해야 한다.(루카 9,23-25 참조)



어떻게 선교하나

선교 활동은 신앙을 강화해 준다. 아울러 성숙한 신앙은 선교 활동을 활성화 시킨다. 성숙한 교회 공동체는 신앙을 고백하고 이를 전례 안에서 기쁘게 거행하며, 사랑을 실천하고, 또한 자신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외딴곳”에, 특히 아직 그리스도를 알 기회를 얻지 못한 이들에게 끊임없이 하느님 말씀을 선포한다.

교회의 모든 구성원은 저마다의 삶의 증언을 통해 복음을 선포하라는 부르심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 교회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과 인격적인 사랑의 관계를 맺고 있을 때만, 이러한 부르심을 식별할 수 있다.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우리는 언제든지 어느 곳이나 기꺼이 파견되어 자비로운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우리의 신앙을 증거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며 교회를 건설함으로써 성령의 거룩한 생명을 나누고자 해야 한다.

우리가 하느님 사랑의 힘을 체험하고, 우리 개인의 삶과 공동체 삶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현존을 깨달으면,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선포하고 나누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참된 그리스도인 삶의 증언은 신앙 전수의 근간이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말씀을 선포하는 것도 그 못지않게 필요하다. 그러므로 복음화에서 그리스도인 삶의 모범과 그리스도에 대한 선포는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

기도가 선교의 바탕이다. 다른 이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는 기쁨과 새로운 힘의 마르지 않는 거룩한 샘이신 성령께서 생기와 힘을 주시도록 우리를 내어 맡기는 것이 기도이기 때문이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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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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