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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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박해와 위협에도 믿음의 열정으로 정결 지킨 신자들

[신 김대건·최양업 전] (68) 동정 생활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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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유중철 요한과 이순이 루갈다 부부, 최필제 베드로, 조숙 베드로, 권천례 데레사, 황석두 루카.



동정 생활을 하는 교우들


최양업 신부의 편지에는 당대 신자들의 생활상뿐 아니라 신심을 확인할 수 있는 여러 글이 있다. 최 신부는 편지에서 교우들을 소개할 때 순교자들은 이름과 세례명을 밝히지만, 살아있는 신자들은 신변 보호를 위해 성과 세례명만 쓴다. 예를 들어 회장 하 아우구스티노, 양반 출신 안나, 14살 된 바르바라, 동정녀 김 아가타 등이다.

최양업 신부와 선교사들의 편지를 살펴보면 당시 조선 교회에는 남녀를 불문하고 동정 생활을 하는 교우들이 적지 않았다. “이제 막 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 중 한 명은 36세이고 혼인을 했지만, 오래전부터 아내와 금욕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정결에 대한 단순서원을 발했습니다. 그에게 자녀는 없습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선교사로 임명해 달라고 저에게 청했습니다. 저는 서슴지 않고 그의 청을 승낙했습니다. 그가 충분히 교육을 받은 뒤에, 조선에 수도원이 전혀 없으므로 그의 아내는 정결에 대한 단순서원을 한 채 속세에 머물고, 남편을 사제로 서품하는 것을 허락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그는 생활과 신앙에 있어 입증되어 있으며, 만일 사제가 되면 매우 유익하리라고 생각합니다.”(페레올 주교가 1849년 12월 4일 교황청 포교성성 장관 자코모 필리포 프란소니 추기경에게 보낸 편지)

정결을 지키며 부부로 살고 있던 황석두(루카)를 신학생으로 선발해 교육하고 있던 페레올 주교가 교황청 포교성성 장관에게 사제품 허락을 청하는 내용이다. 부부가 서로 자발적 의사에 따라 정결 서원을 하여 혼인 관계를 무효화 하려 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당시 조선 교회에는 수녀원이 없었다. 그래서 교황청의 허락을 받지 못해 황석두는 신학 공부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제 마음을 극도로 아프게 하는 문제가 또 한 가지 있습니다. 신자 중에 더욱 치열하게 불타는 열성을 가진 많은 처녀가 하느님을 더욱 순수하고 더욱 열렬하게 섬기고 싶어서 평생토록 동정을 지킬 작정을 하는 사례가 흔히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의 법률과 풍속은 이 천사적인 정결의 덕행을 위하여 변호나 보호를 해주는 피난처가 전혀 되지 못합니다. 조선 백성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결혼하여 자식을 낳지 아니하는) 동정 생활을 불효로 매도합니다. 모든 이가 정결을 지키는 삶을 순전히 기만하는 위선에 불과한 것으로 야유합니다. 신자들을 반역도당으로 여겨 누구든지 마음대로 핍박할 수 있고, 가장 천한 백성까지도 천주교 신자를 마구 박해합니다. 신심 깊은 열심한 여인이라도 결혼하지 아니하고 남편이 없으면 외교인들에게 납치되어 갈 위험이 있고, 따라서 그들의 영원한 구원을 위태롭게 할 염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동정 생활을 찬양하는 설교자인 우리 사제들이 오히려 어쩔 수 없이 결혼을 권유하거나 강제로 명령하는 자가 되어야 할 지경입니다.”(최양업 신부가 1850년 10월 1일 도앙골에서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편지)



가정과 사회의 박해를 견딘 동정녀

최양업 신부는 많은 동정녀가 가정과 사회의 박해를 이겨내며 눈물겹게 정결을 지켜나가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또 온전한 동정 생활을 할 수 없어 결혼을 권유하게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기도 한다. 그 사례가 최 신부의 편지에 나온다.

“바르바라는 열네 살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고해성사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고해 사제를 만날 기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고해 사제께 동정을 지키려는 결심을 말씀드렸습니다. 고해 사제는 그러한 신분에 따르는 위험을 설명해 주면서 그러한 계획을 만류하며, 결심을 바꾸어 결혼하라고 명령까지 했습니다. 그다음 해에 바르바라는 다시 같은 고해 사제에게 고해성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자기 생각에 변함이 없고 자기 뜻을 계속 지키겠다고 그 신부님에게 말했습니다. 신부님은 동정의 위태로움을 다시 설명하고, 동정을 지킬 결심을 바꾸어야 할 필요성의 이유를 설명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성사를 받고 싶으면 동정을 지킬 결심을 바꾸고, 그러하지 아니하면 성사를 받지 마라. 이 두 가지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하였습니다.…주교님께서 바라바라를 여러 차례나 부르셨습니다. 타이르기도 하고 권고도 하며 위협도 하셨으나 바르바라가 듣지 아니하므로, 마침내 바르바라와 그의 부모들에게 성사를 받지 못하도록 성사 금지의 처벌을 내렸습니다.”(같은 편지에서)

안타깝게도 바르바라는 18세 나이로 병사했다. 그녀는 죽을 때까지 동정을 지켰다. 최양업 신부는 주교의 성사 금지 처벌에도 불구하고 임종 전 간절히 성사를 원하는 그녀에게 고해성사와 병자성사를 집전했다. 최 신부는 바르바라를 이렇게 추모했다. “바라바라는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이에게 귀염을 받았고 가는 곳마다 모든 이에게 신심과 천주교 교리의 물을 들였습니다. 이처럼 순결한 영혼들의 그토록 거룩한 원의와 숭고한 결심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성사를 금지하면서까지 동정 생활을 막아야 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심정은 얼마나 안타까운 것이겠습니까!”(같은 편지에서)

조선 왕조 치하 박해 시기 순교자들 가운데 동정 부부는 4쌍이나 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유중철(요한)ㆍ이순이(루갈다) 부부와 최필제(베드로) 부부, 그리고 1819년 기묘박해 때 순교한 조숙(베드로)ㆍ권천례(데레사) 부부,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배문호(베드로) 부부이다. 사제가 될 뻔한 황석두도 부인과 정결을 지켰다.

이처럼 세계 교회사 안에 보기 드물 정도로 조선 교회에 동정 부부가 많이 생겨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과 성모님의 모범을 따르기 위해 정결의 덕을 지키겠다는 젊은이들 특히 여교우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동정녀들의 행적을 적어놓은 성인전 「성년광익」과 정결을 예찬한 「칠극」은 동정을 지키려는 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줬다. 이러한 선한 영향은 가족과 집안으로 전파됐다. 이순이와 권천례가 이종사촌 간인 것이 그 증거이다.



정결을 택한 이들과 사목자의 고민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신자들은 ‘정결(동정)’이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의 선물로 혼인보다 훨씬 더 우월한 삶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많은 교우가 사제와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릴 때부터 동정 생활을 동경하고, 정결을 실천하려 했다.

또 성모님의 모성과 동정성을 본받으려는 동정녀들은 천상 생활에 대한 열망을 순교로 증거하려 했다. “24세쯤 된 동정녀가 있었는데, 교리에 밝고 열심이 특출하여 모든 교우 중에서 뛰어나므로 일반의 존경과 흠모를 받아 왔습니다. 항상 마음으로 하느님을 위하여 순교하기를 원하고 감옥에 끌려가기를 간절히 자청하였습니다. 자기 아버지와 다른 교우들이 체포될 때 그녀는 포졸들 주변을 맴돌면서 그곳을 떠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부친과 다른 교우들의 강요에 따라 마지못해서 이웃집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그녀는 두 처녀와 함께 포졸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이 두 처녀는 하나는 17세이고, 하나는 18세였는데 이 동정녀가 선생처럼 교리를 가르치고 신앙생활을 지도하던 처녀들이었습니다. 포졸들이 오자 그녀는 자기도 자기 아버지와 오빠와 같은 종교를 믿고 있으니 함께 감옥으로 잡아가 달라고 자원했습니다. 이때 두 처녀도 이 동정녀를 본받아 같이 잡혀가기를 자청하였습니다. 포졸들이 세 처녀의 엄지손가락을 묶어서 끌고 갔습니다. 그러나 여인들을 체포하라는 명령이 없었으므로 포졸들은 그 처녀들을 관가로 데려가지 않고 농락하거나 다른 데 팔아먹으려 하였습니다. 포졸들의 속셈을 알아차린 세 처녀는 포졸들에게 자기들을 놓아 달라고 애걸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포졸들의 짐승 같은 욕정을 진정시키셔서 처녀들은 무사히 풀려났습니다. 그들 중에 큰 동정녀의 이름은 아가타였습니다.”(최양업 신부가 1860년 9월 3일 죽림에서 리브와 신부와 르그레즈와 신부,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들에게 보낸 편지)

조선 왕조 치하 박해 시기 많은 젊은이는 ‘정결’을 하느님의 은총으로 받아들이고 주님을 따르는 복음적 삶으로 기쁘게 실천했다. 최양업 신부는 이를 자랑스러워하는 한편 사목자로서 그 삶을 보장해 주지 못한 것을 늘 스스로 부끄러워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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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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