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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 (23)진화 과정에서 첫 생명체의 출현에 관한 설명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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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 글까지 몇 편에 걸쳐 현재 진화론에 있어서 확실한 대진화 이론이 없다는 문제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진화론에 있어서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체의 모든 진화 과정의 출발점인 첫 번째 생명체의 출현/창발(the emergence of life)이 어떤 방식을 통해 이루어졌는가에 대해 우리가 아직까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일반인들은 원시 지구의 대기를 구성하던 무기 물질로부터 유기물 및 생명이 발생하는 과정을 화학적 진화(chemical evolution)로 설명하려 시도한 소위 ‘오파린 가설’(Oparine hypothesis)과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원시 지구의 대기라고 생각되는 기체 혼합물(물(H2O), 메탄(CH4), 암모니아(NH3) 및 수소(H2))에 전기 스파크를 가해서 화학적 진화가 일어나는지의 여부를 알아보려 시도한 1953년의 ‘밀러-유리 실험’(Miller-Urey experiment)을 생물학 교과서를 통해 배우면서 첫 생명 출현에 관해 이미 설명이 완결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진화론 지지자들은 밀러-유리 실험의 진실성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있으며, 이 실험 및 후속 실험의 결과들을 진화론의 중요한 증거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지론의 반대자들은 이 실험 및 후속 실험의 결과들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반대자들은 첫 번째 생명체의 출현/창발을 설명하는 어떠한 진화론적인 시도도 실패했다고 단언하고 있는 상황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객관적인 진실은 과연 어떠할까요?


밀러-유리 실험 당시 헤럴드 유리(Harold C. Urey·1893~1981·1934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의 대학원생이었던 스탠리 밀러(Stanley L. Miller·1930~2007)가 2007년 사망한 후 밀러의 제자이자 오랜 동료였던 제프리 바다(Jeffrey L. Bada·1942~)가 그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1950년대 실험에서 얻은 물질이 들어있는 유리병이 담긴 박스를 발견했습니다. 그 후 바다의 연구 그룹은 최신 분석 장비로 이 물질의 조성을 분석해 당시 밀러가 확인했던 것보다 더 많은 유기 분자들(22종의 아미노산과 5종의 아민)이 들어있음을 확인해 2008년에 공식 발표했습니다. 첫 생명의 출현/창발과 관련된 또 하나의 중요한 가설인 ‘RNA 세계 가설’(RNA world hypothesis)에 따르면 ‘유전 정보를 저장/복제하면서 동시에 화학 반응의 촉매 역할도 할 수 있는 RNA 분자가 지구상 원시 생명체의 출발점’으로 여겨지는 중입니다. 그래서 2008년도의 이 우연한 발견으로 인해 밀러-유리 실험은 좀 더 학문적으로 정밀하게 검증되었으며 이를 통해 원시 지구의 대기 상태에서 RNA가 합성될 수 있는 가능성이 좀 더 높아진 것으로 여겨졌었습니다.

그렇다면 1953년 밀러-유리 실험으로 생명의 기원에 대한 의문은 완전히 해소된 것일까요?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밀러-유리 실험은 지구상 생명체의 단일카이랄성(homochirality)을 전혀 설명해 주지 못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밀러 본인 역시 생전에 이 점을 인정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 단일카이랄성은 원칙적으로는 아미노산이 거울 대칭성(mirror symmetry)을 갖지만 실제로 지구상에서 발견되는 생명체들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은 거울 대칭성이 깨진 한 종류(‘left-handed symmetry’를 만족하는 것들)만 발견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리고 1990년대에 들어와서 원시 지구의 대기는 밀러-유리 실험에서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기체인 이산화탄소(CO2) 및 질소(N2)로 가득 차 있었다는 증거가 지속적으로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기체들을 고려해서 2000년대에 밀러-유리 실험을 반복적으로 다시 시도했으나 아미노산이 합성되는 증거를 발견하는 데에 사실상 실패하였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생명의 기원을 밝혀줄 물질은 어쩌면 원시 대기 그 자체가 아니라 다른 외부로부터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외계로부터 소행성, 운석 등을 통해 지구에 도달한 외계 생명체에 관한 주장 내지는 외계로부터 지구로 온 방사능 물질 등의 영향에 의해 지구상에 생명체가 합성되었다는 주장이 최근에 많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단적으로, 2015년 체코 과학자들의 고출력 레이저 실험을 통해 RNA를 구성하는 아데닌, 구아닌 등 4가지 아미노산이 외계로부터 오는 자극들에 의해 초기 대기 상태에서 합성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현재 많은 연구자들이 이와 유사한 주장을 이어가는 중입니다.

하지만 외계로부터 생명의 기원이 왔다는 주장은 여전히 학문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은 상태에 있습니다. 특히 이 주장은 원시 지구에서 대단히 낮은 확률의 우연적/예외적 사건인 외계 자극이 주어짐으로써 생명체가 발생했다는 주장이기 때문에 보편성과 재연성에 입각한 과학적 설득력이 현저히 떨어지며, 지구상의 생명의 출현/창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외계로 문제를 돌린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는 중입니다. ‘만일 지구상의 생명이 외계의 원인으로부터 왔다면 그 외계 생명의 씨앗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하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기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첫 번째 생명체의 출현/창발을 설명하려는 시도에 필요한 화학적 진화 개념을 포함한 대진화 전체 시나리오에 대해 학계의 반대 목소리도 높은 편입니다. 대표적으로, 미국 라이스 대학교의 저명한 합성 유기 화학자인 제임스 투어(James Tour·1959~)는 ‘합성 유기 화학자인 자신이 보기에 현재까지도 무생물로부터 첫 생명체로의 유기 합성 메커니즘에 관한 어떠한 학문적 근거나 검증이 없었으며, 소진화와 달리 종의 분화를 다루는 대진화는 현재까지도 적절한 설명이 주어진 적이 없다’는 점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현재 여러 다양한 주장들과 가설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기물/무생물로부터 어떠한 진화 방식으로 생명체가 등장하게 되었고 현재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를 여전히 잘 모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첫 생명체의 출현/창발이 (지구상의 혹은 지구 바깥으로부터 온) 자연적인 과정 안에서 우연적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초자연적?) 개입으로 주어진 것인지에 대해 우리는 여전히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황입니다.



김도현 바오로 신부(전 서강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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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2-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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