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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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8일, 가정마다 구유와 성탄 나무 꾸미며 주님 기다려

[고영심의 부온 프란조!] 26. 로마(Roma), 사랑(Amor), 그리고 시뇨라 데레사(Signora Teresa)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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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세기부터 16세기 사이에 중세식으로 건축된 로마 동쪽의 룬게차 성(Castello di Lunghezza). 시뇨라 데레사는 이 성 근처 동네에 산다.

▲ 시뇨라 데레사(사진 왼쪽)와 함께한 필자.





“시뇨라 데레사(Signora Teresa), 안녕하세요? 모니카예요. 2년 전, 유럽이 코로나로 심한 몸살을 앓기 시작할 때, 로마에 있는 제 둘째 아이의 안위도 걱정이었지만, 이탈리아의 고령 노인들이 하루에 1000명 이상 유명을 달리한다는 그 참담한 소식에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모릅니다. 시뇨라 데레사의 안위를 걱정하던 중, 전화벨이 울리고 익숙한 로마의 전화번호에 저는 시뇨라 데레사인 줄 금방 알았죠. 이심전심이랄까요? 그래도 제가 먼저 전화를 드렸어야 했는데 말입니다.고령의 당신이 딸 같은 저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걱정되신 나머지 먼저 전화하신 것이었겠지요.청력도 약해지셔서 ‘모니카니? 모니카?’라고 크게 부르시는 낯익은 목소리에 얼마나 반갑고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저도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큰소리로 ‘네, 모니카예요! 시뇨라 데레사, 안녕하세요? 어떻게 지내시나요?’라고 인사를 드렸어야 했던 건 아닙니까? 혹 그날의 제 안부의 첫 마디에 섭섭함은 안 남으셨는지, 내심 죄송스럽습니다. 당시 이탈리아 뉴스에서 보도되는 노인 사망자 숫자의 여파였어도 그렇지, 어찌 제가 그런 실수를!안 들리실까 봐, 그것도 큰소리로 외치다시피 했던 첫 인사는 ‘시뇨라 데레사, 아직 살아계시는군요!’ 였으니요. 잠시 침묵이 흘렀죠. 그러다 위트와 유머의 달인이신 당신은 ‘오, 아직 하느님께서 원하시지 않아 살아남았다. 원하시면 언제라도! 호호호’라고 답변을 주셨던 게 기억납니다.



시뇨라 데레사와 추억 깃든 로마의 겨울날

저의 주방 창과 마주 보이는 당신 거실 창에서 우리의 하루가 시작되고 하루가 저물었습니다. 그때가 그립습니다. 거실 창에서 ‘모니카, 뭐하니?’라는 당신 목소리가 들리면 저는, 척 하면 삼천리였지요. ‘까페요? 갑니다!’ 하며 미리 열어두신 대문을 통해 쏜살같이 뛰어들어갔지요. 시뇨르 피르미노(시뇨라 데레사의 남편)께서 돌아가신 후, 저는 당신의 적적함을 달래 드리려 어떤 때는 잠옷 차림으로도 달려가 까페 에스프레소를 같이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지요. 뵙고 싶은 시뇨라 데레사, 2022년 마지막 달인 12월입니다. 당신 주방의 난로에서 노란 속살을 드러내며 맛나게 구워지던 군밤이 생각납니다. 저의 환호성에 은근 행복해하시며, ‘까페? 아니면 비노(Vino, 포도주)?’ 하고 물으셨지요. 아들 알베르토가 매년 가을에 받아다 주는 카스텔리 로마니(Castelli Romani)의 벨레트리(Veletri) 와인을 어찌 제가 마다하겠습니까? 포도원에서 직접 받아 온 포도주 한 잔의 진한 맛과 향기에 취하고, 남편 시뇨르 피르미노 생전에 티격태격하셨던 그 추억도 그리움으로 남아 취하던 로마의 겨울날이 생각납니다.

성탄 장식 시작으로 성탄 과자도 만들어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인 12월 8일이면, 이탈리아에서는 가정마다 구유를 꾸미고 성탄 나무(Albero di Natale)를 세우지요.그 전통이 있다는 것을 저는 그때 알았어요. 웬만한 본당 수준의 크기로 거실 한쪽에 몇 날 며칠 구유를 꾸미시던 시뇨르 피르미노가 생각납니다. 수십 년 동안 보관하고 사용하던 두 분의 소품들이다 보니, 지난 시대의 역사가 보이는 듯하여 신기했습니다. 우리는 ‘구유’ 문화가 없으니까요. 12월 대림 시기의 첫 여정을 휴일(이탈리아는 12월 8일이 국가 공휴일)로 정한 상징적인 의미가 있더군요. 원죄 없이 태어나신 성모님의 출생의 깨끗함은 나무의 희망과 탄생, 다시 태어남이란 의미와 같아서일까요? 시뇨라 데레사의 집뿐 아니라 온 동네 이웃들의 집 안팎은 화려한 성탄 장식을 시작으로 성탄 시기 내내 먹고 선물할 과자들을 만들기 시작하지요. 이러한 이탈리아 전통을 답습한 저도 로마를 떠나온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해마다 제 고향에서 친구들과 성탄을 함께 보냅니다. 시뇨라 데레사, 지금쯤 당신 정원 구석에 있는 오래된 화덕을 청소하고 계시지는 않으신지요?머릿수건 쓰시고 앞치마 입으신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르는군요. 여러 종류의 성탄 비스코티(Biscotti, ‘두 번 굽다’는 뜻의 이탈리아어) 중에 제겐 단연코 시뇨라 데레사의 ‘레드와인 비스코티(Biscotti al vino rosso)’가 최고입니다. 살짝 나무 향내가 나는 당신의 비스코티가 먹고 싶군요. 그 향수를 달래려고, 오늘은 저도 구워봤습니다. 화덕에 굽지는 못하지만, 오븐에 구운 맛도 그리 나쁘지는 않습니다.



“시뇨라 데레사, 페투치네 먹고 싶어요”

제게 전화 주셨던 그 날, ‘모니카, 언제 오니?’ 하고 물으셨는데 아직 로마를 못 가고 있습니다. 마음이야 당장 달려가고 싶습니다. 3년 전에 뵙고 온 날이 생각납니다. 갑작스러운 저의 출현에 놀라시기도 했지만, 뭐라도 빨리 먹여야겠다고 생각하시곤 종종걸음으로 점심을 준비하셨지요. 저는 내심 시뇨라 데레사의 토마토 살사(Salsa)로 버무린 페투치네(fettuccine) 파스타를 먹고 싶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파스타는 물론 비스테카(Bistecca)와 치커리아 파싸토(Cicoria passato) 등 접시를 싹 비웠더니 어찌나 행복해하시던지요.요리 경연대회나 생면 페투치네 썰기 대회에서 거머쥔 거실의 트로피 수만 봐도 당신 음식 솜씨가 얼마나 좋고 대단한지 온 동네 사람들은 다 알 정도이니까요. 바로 당신 옆에서 근 6년을 살았던 저에게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던 것도 기억하고요. 점심 후, 거실에서 까페를 마시며 벽에 걸린 당신의 베네치아 신혼여행 사진을 보며 젊은 시뇨르 피르미노와 미니스커트의 시뇨라 데레사의 모습에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지요. 작은 체구로 성실하게 가족을 지켜 온 당신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실 샹들리에의 크리스털이나 은그릇들이 항상 반짝반짝 빛이 났었는데 뿌옇게 변한 것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지요. 시뇨라 데레사, 은그릇이 뿌옇게 변해도 좋고 걸음걸이가 종종걸음이어도 괜찮습니다. 잘 안 들리셔서 화난 듯 소리치셔도 좋습니다. 부디 제가 뵈러 갈 때까지 건강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넉살 좋게 ‘시뇨라 데레사, 페투치네 먹고 싶어요’ 하며 당신 대문의 그 요란한 벨을 꾹 눌으러 달려가겠습니다.참, 하느님이 부르셔도 대답하지 마세요. 그럼 돌아오는 봄날에 뵙기를 약속하며 인사드립니다. 안녕히 계세요.”



레시피 : 레드와인 비스코티(Biscotti al vino rosso)

▲준비물 : 박력분 250g, 해바라기 유 65㎖, 설탕 75g, 적포도주(Red wine) 70㎖, 소다 4g, 소금 한 꼬집, 아니체(아니스 허브) 2분의 1 찻숟가락, 황설탕.

→밀가루, 설탕, 소다, 그리고 소금을 체로 친다.

→곱게 체를 친 가루에 해바라기 유를 넣고 살살 버무린 다음에 적포도주(레드 와인)도 함께 넣어 반죽을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아니체를 넣어 반죽하고 랩에 씌워 30분간 실온에 둔다.

→지름 2㎝ 정도로 길게 밀어, 10㎝ 길이로 자른 다음 둥글게 잇는다.

→한쪽 면만 황설탕을 묻힌 다음, 종이 호일 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놓는다. 180도에서 35~40분간 굽는다. 설탕을 묻힌 면이 옅은 갈색으로 구워지면 꺼내 식힌다.



▲모니카의 팁 : 구워진 비스코티는 밀봉 통에 보관하면 근 한 달은 먹을 수 있다. 아니체를 구하기 어려우면 ‘미스트라(Mistr, 아니체를 넣은 LIQUORI)’를 적당량(10㎖) 넣으면, 특유의 향으로 비스코티의 풍미를 더해 준다. 대형 마트에서 살 수 있다. 비스코티에 빨간 리본으로 장식하여 성탄 선물을 대신할 수 있고, 성탄 나무에 걸어 놓아도 예쁘다.

고영심(모니카) 디 모니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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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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