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최근 동해상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서서 경색국면이던 남북한 관계는 더욱 차갑게 얼어붙었다. 더욱이 2020년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북한에 의해 폭파되고 북한 당국이 한국정부를 향해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는 모습이 방송되면서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북한은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가 됐다. 전 통일부 차관이었던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천해성 객원연구원은 “30년 전만 해도 통일문제는 민족의 염원이자 이념적 차이를 넘어 공감의 여지가 존재했으나 이제는 이견을 좁힐 수 없을 만큼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벌어졌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반도 화해’라는 말이 사람들의 인식에서 요원해진 2022년.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부위원장 정수용 이냐시오 신부)는 11월 26일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진리관에서 2022년 한반도평화나눔포럼을 열고 ‘화해’로 향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북한의 위협적인 도발 때문에 보지 못했던 고통받는 북한주민들을 기억하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 종교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 가톨릭신자, 통일의 필요성과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 높아
올해 한반도평화나눔포럼의 주제는 ‘한반도 화해를 위한 가톨릭의 평화인식과 역할’이다. 행사를 주관한 평화나눔연구소(소장 홍용표 프란치스코)는 포럼에 앞서 지난 10월 가톨릭신자 1000명, 비신자 11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포럼의 첫 번째 세션은 이 조사결과를 토대로 세 명의 전문가 발표에 나서 가톨릭교회가 한반도 평화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 사목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인의 평화인식’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통일연구원 박주화 연구위원은 “갈등을 오랜 기간 경험한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평화를 추상적이고 유토피아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박 연구위원이 ‘한국인이 평화라는 단어를 보면 떠오르는 것’을 조사(2018-2020년)한 결과 상위권을 차지한 단어는 ‘비둘기’와 ‘통일’이었다. 미국인과 덴마크인이 ‘자유’, ‘행복’, ‘조화’를 꼽은 것과 차이를 보인다.
박 연구위원은 “한국인들은 평화를 어떻게 달성해야 하는지, 평화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에 대한 고민하는 경험이 적다”며 “가톨릭신자들은 평화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적 요인으로 ‘성당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논의 경험’을 꼽은 것으로 보아 성당에서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는 경험이 많을수록 평화에 대한 태도가 강해짐을 유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조영호(요아킴) 교수는 ‘천주교인들의 통일과 북한에 대한 태도’를 정리했다. 가톨릭신자와 비신자 간에 차이가 큰 항목은 통일의 필요성, 남북 간 반성과 화해/용서 항목이다. ‘남한과 북한이 통일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49의 가톨릭신자가 동의한다고 답했으며, 무교(39), 불교(42)와 차이를 보였다. ‘북한이 우리에게 어떤 대상인가’라는 질문에는 가톨릭신자의 53가 협력대상이라고 답한 반면 개신교인은 38가 이같이 답했다. 우리나라는 북한의 행동을 용서해야 한다는 답변에 가톨릭신자는 27, 개신교와 무교는 각각 17, 14가 동의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북한 방문에 대한 생각은 가톨릭신자가 87로 전체 평균(76)을 크게 웃돌았다.
조 교수는 “가톨릭신자들은 비신자들에 비해 통일의 필요성과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과 태도를 보이는 반면 대북 적대적 태도는 낮았다”라며 “또한 가톨릭신자들은 남북의 화해와 용서, 그리고 반성에 관해 보다 적극적인 입장을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 경색된 남북 관계 풀어나갈 열쇠, ‘사회문화교류’
새 정부 출범 이후 남북한 교류 활성화 방안은 두 번째 세션에서 논의됐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비핵화 협상에 나서는 것을 전제로 북한에 대한 대규모 식량 공급, 발전과 송배전 인프라 지원 등 6가지 지원을 보장했다. 북한대학원대학교 이우영 교수는 “이 담대한 구상은 대표적 남북협력 사업인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철도·도로 연결 등 3개 경협사업을 불인정한 것으로 기존 대북정책과 단절되는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2022년 7월 NBS 여론조사에서 향후 남북 체제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 52가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한 2국가’라고 답한 결과를 토대로 이 교수는 “새 정부 출범 이후 남한의 한미연합훈련 실시, 북한의 군사적 행동으로 인해 남북관계가 점점 더 악화되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적대적 정서가 확대되고 있는 것도 큰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상대 체제나 주민들에 대한 이해 증진, 통일문제를 재인식하는 계기를 제공하고자 ‘사회문화교류’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새로운 차원의 사회문화교류 유형으로 온라인 기반의 사회문화교류(E-KOREA)를 고려할 수 있으며 북한이 남북한 주민의 인적 교류에 거부감이 있다는 점에서 데이터나 콘텐츠 교류에 집중하고 이를 확충할 필요가 있다”며 “또한 유네스코 자연유산, 문화유산 등에 남북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등 국제적 차원의 사회문화 교류를 시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 한반도 평화를 위한 가톨릭의 역할
마지막 종합토론 시간에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가톨릭의 역할을 모색할 수 있는 유의미한 이야기들이 논의됐다.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이자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인 하영선 교수는 미국주교회의에서 1983년 발표한 사목교서 ‘평화의 도전: 하느님의 약속과 우리의 응답’(The Challenge of Peace: God’s Promise and Our Response)의 내용 뿐 아니라 교서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한국교회에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미국과 소련 간 핵 대결이 벌어지는 냉전 시대에 핵무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가에 대한 신자들의 질문에 답을 주는 문서라고 생각한다”라며 “당시 미국 주교들은 평화를 위한 중요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핵무기를 연구하는 전문가와의 토론 자리를 마련하고 교회 신자들을 위한 지침을 마련할 수 있는 내용들을 사목교서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통일평화연구원 천해성 객원연구원은 “남북관계에 대해 우리 사회의 공생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사회와 학계, 민간단체, 정부가 힘을 모아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앞서 미국주교회의의 사목교서가 언급되기도 했지만 교회는 공식적인 문서, 포럼, 민족화해위원회의 활동 등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공감대 형성에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강주석(베드로) 신부는 “지난 1월 뉴멕시코주의 산타페대교구에서도 ‘그리스도의 평화의 빛 안에서 살아가기’ 사목서한을 발표하며 핵군축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노력을 촉구하는 등 전 세계 교회의 평화를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며 “갈등이 커지고 평화가 무너지는 상황에 직면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그리스도가 말씀하신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온순한 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