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맞이해, 오랜만에 보고 싶은 형제들과 연락해 보고 싶어집니다. 가까이 지내던 형제들 모두가 올해 갑작스레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 탓에, 언제 다시 함께 만나 수다를 떨게 될지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현대 기술의 발전 덕에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어 참 다행입니다.
그래도 이곳저곳에서 고생하고 있을 형제들을 생각하면 참 애틋합니다. 밀려나듯 갑작스럽게 쿠바로 오게 된 탓에, 많은 부담을 떠안게 되었을 수도원 성가대 형제들과 새 수련장에 적응하느라 고생할 수련원 형제들이 떠오릅니다. 또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에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는 나이일 텐데도 큰 결심으로 로마에서 공부하고 있을, 우리 수도원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선배와 독일ㆍ스페인으로 흩어져 새로운 언어와 씨름하고 있을 후배 수사님들도 함께 떠오릅니다.
마침 이제 곧 두 번째 대림 시기가 다가옵니다. 지금 우리가 지내고 있는 대림 첫 번째 시기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세상 끝날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잘하며 살아가자는 말씀을 선포합니다.
하지만 거리에 화려하게 장식된 성탄 트리와 연말 분위기들은 왠지 멀리 떨어져 있는 것만 같은 미래에 대한 희망보다는, 당장의 이벤트와 성탄을 지금부터 즐기고만 싶게 만듭니다. 그래서 사실 전례 때 차분하게 과거와 현재의 나를 돌아보고 미래를 살아가려고 준비하는 마음이 쉽게 진정이 되질 않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 전례도 12월 17일부터 12월 23일까지의 7일은 이 세상에 아기로 태어나신 예수님을 본격적으로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됩니다. 이 시기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 우리가 7일 동안 매일 예수님의 다양한 호칭을 전례 때 부르면서 그분 탄생을 준비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전례를 바치는 분들은 하루하루 달라지는 예수님 호칭을 바로 체감할 수 있을 겁니다.
저녁기도 때 성모의 노래라고도 하는 ‘마니피캇’(Magnificat)을 부르면서 우리는 매일 예수님의 다른 호칭을 부릅니다. 시간전례에서는 시편같이 어떤 시 형식으로 된 노래를 낭송할 때, 노래의 앞과 뒤에 후렴구를 노래하게 되는데, 그것을 라틴어로 ‘안티포나’(Antiphona)라고 합니다. 이 두 번째 대림 시기의 마니피캇 안티포나는 모두 예수님 호칭으로 시작하는데, 그 호칭에 앞서 “오”(O) 하는 감탄사가 붙습니다. 그래서 대림 두 번째 시기를 ‘오-후렴 시기’ 혹은 ‘오-안티포나(O-Antiphona) 시기’라고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안티포나’는 전례 안에서 참 다양하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방금 말씀드렸듯이, 시간전례에서 시편처럼 시 형식으로 된 노래 낭송을 하면서 앞뒤로 붙는 후렴구를 안티포나라고 하는데, 시작할 때와 끝날 때 한 번씩만 부를 수도 있고, 절마다 반복해서 부를 수도 있습니다.
라틴어 그레고리오 미사곡에서는 입당송(Introitus)과 영성체송(Communio)의 정식 이름이 ‘입당 후렴구’(Antiphona ad Introitum)와 ‘영성체 후렴구’(Antiphona ad Communionem)입니다. 사실 우리 미사경본이나 「매일미사」에는 입당송과 영성체
송이라고 해서 그냥 한 번 읽어버리기에는 너무나 짧다고 생각되는 구절만 나옵니다.
이게 바로 라틴어 입당 후렴구와 영성체 후렴구를 번역한 건데, 공동체가 이 후렴구를 다 함께 노래로 바치고 후렴구 다음에 선창자나 성가대가 시편까지 노래한 다음 다시 공동체가 이 후렴구를 반복하게 되면 신부님 입당 때나 신자 전체의 영성체 시간까지도 모두 충분히 아우를 수 있는 긴 노래가 될 수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그냥 후렴구만 바칠 수도 있고, 시편을 부르면서 절마다 후렴구를 반복해서 길이를 늘릴 수도 있는 겁니다.
그래서 후렴구, 즉 안티포나를 사용한 작곡 방식을 처음과 끝에 후렴구로 시편이나 찬가를 가두었다고 해서 액자 형식의 곡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안티포나는 ‘소리’를 의미하는 ‘φων?’에 반대, 혹은 대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안티포나 형식은 본래 합창단 대 합창단이나 혹은 선창자 대 공동체 등 두 개의 그룹이 서로 번갈아 가면서 부르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암브로시오 성인이 이 방식을 도입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안티포나 형식’과 ‘안티포나’는 조금 구분됩니다. 그렇지만 시간전례에서 노래하는 시편 기도는 안티포나라는 후렴구를 앞뒤로 배치해 안티포나 형식(antiphonal)으로 시편을 낭독하는 액자 형식의 기도입니다.
아무튼 ‘오-안티포나’는 성모의 노래를 시작하고 마치는 7개의 독특한 후렴입니다. 모두 제2선법이고 그레고리오 성가학에서는 변격의 도리안 혹은 히포도리안 선법이라고도 하는데, 그냥 화성학적으로는 넓게 도리안으로 봅니다. 이 도리안의 특징은 도리안 6도라고 해서 단조와 아주 비슷하지만, 라단조라면 ‘시 플랫’이 있어야 함에도 레-도리안의 경우 그냥 ‘시’가 오게 됩니다.
그래서 단조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전해줍니다. 이 아름다운 2선법의 절정은 그래서 ‘시’에 옵니다. 참고로 프랑스 솔렘수도원에서 2000년대에 새로 낸 수도승 시간전례서(Antiphonale Monasticum)는 그레고리오 성가나 전통적인 옛 이론이 아니라 근대 이후 음악 이론에 의해 노래를 복구해서 ‘시 플랫’으로 만들었고, 이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 7개의 후렴은 17일부터 ‘O Sapientia’(오 지혜), ‘O Adonai’(오 주님), ‘O Radix Jesse’(오 이사이의 뿌리), ‘O Clavis David’(오 다윗의 열쇠), ‘O Oriens’(오 샛별), ‘O Rex Gentium’(오 민족들의 임금님), ‘O Emmanuel’(오 임마누엘)입니다. 미사 때 복음 환호송으로도 이 예수님 호칭을 언급하기는 하는데, 21일부터는 시간전례에서 부르는 호칭과 순서가 달라질 뿐더러 우리말로 번역한 복음 환호송이 예수님 호칭의 묘미를 살려주지 못해 아쉽습니다.
‘오’ 하면서 부르는 예수님의 호칭에 해당하는 멜로디는 후렴 중반부에 다시 ‘오소서’(Veni) 하는 멜로디와 비슷하게 겹치면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어서 오시라고 초대합니다. 그 초대에 대한 응답은 바로 저 7개의 후렴을 ‘오’ 하는 감탄사를 제외하고 마지막 23일부터 첫 글자만 거꾸로 읽어나가면 나오게 됩니다. “ERO CRAS” - “나 내일 있으리”.
‘오-안티포나’를 부르는 마지막 날이 되면 “오소서”에 대한 대답으로 “그래. 나 이제 간다. 내일은 너와 함께 있으리라”하는 예수님 마음이 느껴져 큰 위안을 받게 됩니다. 많은 작곡가가 이 주제로 작곡하지는 않았지만, 프랑스의 샤르팡티에(Charpentier)가 작품번호 36에서 43까지 8개의 오 후렴을 작곡했고, 에스토니아 출신의 아르보 패르트(Arvo P?rt)가 독일어로 7개의 오-안티포나를 작곡했습니다. 이 곡을 들으면서 주님의 오심을 함께 기다렸으면 합니다. 또, 저 역시 개인적으로 ‘나 내일 너와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에서 모두 다시 만날 날도 그려 봅니다.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