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루카 1,78-79)
세례자 요한이 태어났을 때,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성령으로 가득 차 예언했다. 마구간의 별은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끈다. 평화를 전하며 마구간을 밝히는 성프란치스코 평화센터(센터장 김성환 콜베 신부, 이하 평화센터)를 찾았다.
생명과 평화의 불씨
“강정아 너는 이 땅에서 가장 작은 고을이지만, 너에게서 온 나라에 평화가 시작되리라.”
제주 강정천 해군기지 구 정문 앞 ‘생명평화 강정미사천막’. 제대 뒤로 전 제주교구장 강우일(베드로) 주교가 2011년 강론 중에 언급한 문구가 보였다. 미카 예언자가 남긴 예언, 그리고 동방박사들이 베들레헴의 마구간을 찾아가며 들었던 그 성경의 말씀을 곱씹게 되는 문구다.
생명과 평화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극구 반대했지만, 결국 ‘구럼비’ 바위가 산산이 폭파된 지 벌써 10년이 지났고 해군기지도 완공됐다. 그럼에도 평화센터는 강정공소 신자들과 함께 주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11시 이곳에서 미사를 드린다.
평화센터와 강정공소 신자들이 주관하는 이 미사에는 전국 곳곳에서 여러 사람들이 찾아온다. 12월 2일 오전 11시 김정환 신부가 주례한 천막미사에도 서울, 경기 등지에서 온 신자들이 함께 미사를 봉헌했다. 신자들은 미사를 마치고 함께 묵주기도 5단을 바쳤다. 묵주기도 소리 사이로 “고맙습니다!”, “힘내세요!”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올레길을 걷는 이들이 신자들을 향해 외치는 응원이었다.
이날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천막을 찾은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서울수녀원 소희숙(스텔라) 수녀는 “이 생명평화미사는 전쟁을 막고 평화를 기원하는 미사로 전국 각지에서 신자들이 찾아와 함께 미사하고 있다”면서 “끊임없이 매일 바치는 이 미사야말로 생명과 평화를 살리려는 불씨”라고 말했다.
생명평화미사는 ‘강정’만 바라보지 않았다. 천막 곳곳에는 전국 각지에 평화가 필요한 곳들을 기억하는 상징물들이 놓여있었다. 미사 중에는 경북 성주 소성리 사드 배치, 세월호 참사, 10·29 참사 등도 기억했다. 평화센터의 활동이 ‘강정’에만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평화센터는 정관 제3조를 통해 센터의 목적을 “복음과 교회의 가르침을 따라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내어주신 고귀한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평화센터는 매일 오전 7시에는 활동가들과 함께 해군기지 앞에서 100번의 절을 하는 ‘강정생명평화 백배’를, 12시에는 해군기지 앞에서 ‘인간 띠 잇기’에도 함께한다. ‘인간 띠 잇기’에는 20대 청년부터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노래, 춤, 시 낭송, 성경 낭독 등 다양한 모습으로 ‘평화’를 외치는 활동을 하고 있다.
평화를 교육하다
구럼비가 발파된 지 10년이 지났다. 이곳에서 생명과 평화를 부르짖은 지도 12월 2일 현재 5678일째다. 10년 전 경찰과 시민이 대치하던 모습도, 쾅쾅 터지던 화약소리도, 시위도 폭력도 보이지는 않는다. 나무가 바람에 나부끼는 소리와 천막에 내리쬐는 따사로운 햇살까지 더해지니 강정은 마냥 ‘평화’로워 보인다. 이런 모습에 다 끝나지 않았느냐고, 왜 아직도 이곳에서 기도하느냐고 궁금해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여기에 평화센터는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 14, 27)는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한다. 평화학에서 말하는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와도 어느 정도 맥이 통한다. 평화학에서는 분쟁이 없는 상태 즉 소극적 평화만으로는 진정으로 평화가 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평화는 무엇일까 궁금하다. 그래서 평화센터는 평화운동에만 머무르지 않고 평화교육을 전개하고 있다.
평화센터는 해마다 운영하는 ‘성프란치스코 평화학교’ 외에도 다양한 평화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평화학교는 성경이 말하는 평화에서부터 한반도평화, 일상에서의 평화 등 평화의 다양한 측면 중에서 오늘날 우리나라를 살아가는 신자들이 알아야 할 평화를 각계 전문가들을 통해 배울 수 있다.
특히 2011년부터 강정에서 생명평화활동을 펼치다 아일랜드 더블린의 트리니티칼리지에서 평화학 박사과정을 이수한 김성환 신부가 2017년부터 센터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평화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최근에는 온라인 평화강의뿐 아니라 외국인을 대상으로 영어 평화강의를 진행해 제주 이외 지역 사람들도 평화센터의 평화교육을 접하고 있다. 평화센터에서 최근 4년 동안 평화교육에 참여한 이만도 벌써 3000여 명이다.
평화센터는 교회의 가르침과 평화학을 기반으로 하는 ‘세상의 평화’를 말하는 교육 외에도 개인의 평화를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세상의 평화를 위해 활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평화를 외치는 각자의 내적평화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평화센터는 비폭력대화 등 다양한 심리상담·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신자들을 위해 이냐시오 영신수련 등 피정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또 평화센터 내 숙소를 마련해 제주에 피정을 위해, 혹은 평화활동을 위해 방문하는 이들이 묵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김성환 신부는 “힘이 있어야 평화가 온다고 말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예수님의 평화는 정반대”라면서 “예수님은 마구간에 가장 낮고 약한 모습으로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평화를 가져오신 분”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평화를 배우는 것은 기호식품처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면서 “특별히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이미 왔지만 완전히 오지 않은 그리스도의 평화를 이루는, 프란치스코 교종이 「모든 형제들」에서 말한 ‘평화의 장인’이 돼야 한다”고 전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