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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 (24·끝) 갈매못순교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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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마지막 달을 맞아 충남 보령에 있는 갈매못순교성지를 순례하였다. 올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 기상 예보를 듣고 출발했지만, 실제 체감 온도는 그보다 훨씬 더 추웠다. 고속도로에서 나와 고불고불한 길을 지나니 충남의 여러 내포(內浦) 지방 가운데 오천항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서해 바닷물이 내륙으로 들어와 생긴 자연 포구로 많은 배들이 정박 중이었다.

오천항에서 조금 더 가면 바닷가의 갈매못순교성지에 다다른다. 성지 지역이 갈매못이지만 실제로 못은 볼 수 없다. 이곳 앞바다는 섬과 육지로 둘러싸여 마치 연못처럼 보여서 갈매못이라 한다. 갈매못순교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 때 파리 외방 전교회 다블뤼 주교(Marie Nicolas Antonie Daveluy, 안토니오, 1818~1866), 오매트르 신부(Pierre Aumaitre, 베드로, 1837~1866), 위앵 신부(Martin Luc Huin, 루카, 1836~1866), 다블뤼 주교의 복사 황석두 회장(루카, 1813~1866), 베론 신학당의 집주인 장주기 회장(요셉, 1803~1866) 등 다섯 성인과 많은 무명 교우들이 순교한 곳이다.

신리(新里, 충남 당진시 합덕읍)에서 체포된 다블뤼 주교는 박해시기에 많은 교우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숨어있던 오매트르 신부와 위앵 신부에게 자수를 권했다. 두 신부는 주교의 뜻에 순명하며 신리로 와서 자수해 황석두 루카와 함께 서울로 압송되었다. 1866년 3월 23일 군문효수형을 받은 후 서해안 수군 사령부, 충청 수영(水營)으로 끌려갔다.

순교자들이 체포되었을 때는 조선 왕실이 고종과 혼인할 왕비의 간택을 앞둔 시기였다. 이처럼 중요한 시기에 서울 인근에서 그들을 처형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여 수영으로 보냈다. 갈매못은 수영에서 약 십리 떨어진 곳에 있는 백사장이었다. 수영성의 군율 집행터인 서문 밖 갈마진두(渴馬津頭)가 현재 갈매못순교성지다. 갈매못 지명은 갈마연(渴馬淵)에서 온 말이다. ‘갈증을 느낀 말이 목을 축이는 연못’이란 뜻이다. 이제 순교자들의 굳은 신앙을 이어가려는 순례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물을 주는 샘터가 되었다.

세 선교사와 황석두 회장이 충청 수영으로 이송될 때 서울에 갇혀 있던 장주기 회장도 동행하였다. 이들은 서울에서 갈매못까지 약 250리 길을 며칠 동안 끌려가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1866년 3월 30일에 처형당했다. 그날은 마침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주님 수난 성금요일이었다.

다섯 성인이 순교한 지 59년 후인 1925년에 갈매못 인근의 금사리본당 정규량 신부(레오, 1883~1953)는 순교 당시의 상황을 목격한 증인들의 생생한 증언을 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순교터와 효시터, 임시 매장터를 확인하였고 1927년부터 본격적으로 성지를 가꾸기 시작했다. 이후로도 꾸준히 성지를 보존하고 가꾸어 오늘의 모습을 이루었다.

갈매못순교성지에는 야외 제단, 기념관을 겸한 소성당, 십자가의 길, 승리의 성모성당이 있다. 순교터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소성당은 기도의 공간이면서 갈매못 순교자들을 가까이 만날 수 있는 기념관으로 만들어졌다. 소성당 벽면에는 성인 유해와 순교화, 유물과 유품을 전시해 갈매못이 담고 있는 순교의 역사를 말없이 속삭여준다. 돌로 제작한 성당의 제대와 감실(한진섭 요셉 조각가 제작)도 순교자들의 신앙이 얼마나 굳건했는지를 말한다. 성당 출입구 벽에는 ‘예수님을 가진 자가 모든 것을 가진 자다’(Qui a J?sus a tout)라는 성 다블뤼 주교의 좌우명이 적혀있다.




갈매못순교성지의 가장 높은 곳에는 승리의 성모성당이 있는데, 그곳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14처 조각상(김종필 라파엘 조각가 제작)이 있다. 일찍이 예수님께서 걸으셨던 십자가의 길을 갈매못 순교자들도 같은 날에 함께 걸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14처는 작은 조각상이지만 성지와 바다를 배경으로 하여서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승리의 성모성당 입구 성체조배실에서 성인들의 고귀한 삶과 신앙을 묵상하며 자신과 가정, 세상의 평화와 구원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 성당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의 다섯 성인 동상은 세상에서 자신의 생명보다도 더 소중하고 값진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듯하다.

성당 안에는 성인 유해 공경실이 있으며 제단 유리화(허명자 데레사 화가 제작)에도 순교한 다섯 성인이 촛불처럼 추상으로 표현되어 있다. 제단 유리화는 양편으로 열리게 되어서 다 개방하면 순교의 현장인 갈매못과 서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은 이곳이 순교자의 거룩한 땅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구원의 기쁜 소식인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선교사들과 그들을 도우며 함께 순교한 두 회장을 생각하면 애통하면서 가슴이 미어진다. 다섯 명의 순교자는 1984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집전한 한국 103위 성인 시성식(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성인품에 올랐다.

겨울의 갈매못에서는 살을 에는 추위로 옷깃을 여미면서 자신의 나약한 신앙도 추스르게 된다. 갈매못 성지를 순례하고 나올 때 서쪽 하늘은 이미 붉은 노을로 타오르고 있었다. 마치 고귀한 순교자들의 꺼지지 않은 신앙의 불길 같았다.


한 해를 보내면서 가톨릭신문에 연재했던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도 끝을 맺는다. 지난 1년간 전국의 성당과 성지, 교구와 기관에 있는 교회의 기념관이나 박물관을 소개하였다. 작고 소박한 교회의 기념관과 박물관의 전시품을 보면 교회가 걸어온 지난 날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교회의 문화기관 수는 그리 많지 않고 전시품에 대한 체계적이며 전문적인 관리도 여전히 부족하다.

신앙선조와 순교자, 선교사들과 평신도들의 굳은 신앙과 헌신 위에 세워진 우리 교회는 성당이나 성지, 기관이나 교구에서 역사를 담은 작은 기념관이나 박물관을 적극적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현재 교회가 사용하는 공간을 조금 줄이면 기억의 공간을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다. 교회의 귀한 자료라도 잘 꾸며진 공간에서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관리하지 않으면 쉽게 사라지고 만다. 교회 박물관은 단순히 옛 자료를 보관하는 곳이 아니라 지난 세월 속에서 현재를 살펴보며 다가올 미래로 나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다. 먼 곳을 내다보려면 먼저 지나온 길을 돌아보아야 한다.

2022년에 교회의 기념관과 박물관에서 천상과 지상의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우리의 신앙선조와 무수한 순교자들, 이 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생명까지 바친 외국 선교사제들과 수도자들, 헌신과 봉사로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된 많은 교우들을 만났다. 앞서 살았던 많은 분의 큰 사랑과 희생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가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특히 이 세상에서 순교자들의 삶은 고난과 희생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누리고 계실 것이다. 천상 가족인 신앙선조와 순교자들 그리고 성인 성녀들이 지상의 순례자인 우리와 교회를 위해 전구해 주시기를 간청한다. 끝으로 지난 1년간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에 글을 연재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가톨릭신문사 임직원과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 갈매못순교성지
주소: 충남 보령시 오천면 오천해안로 610
전화: 041-932-1311
성지 개방: 11~2월 9시~17시30분, 3~10월 9시~18시
미사 시간: 평일(화~토) 11시30분(순례미사)
주일 8시, 11시 30분(순례미사)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
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2-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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