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택 대주교 신년 인터뷰
▲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가 가톨릭평화신문과의 신년 인터뷰에서 2023년 새해 한국 교회와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백영민 기자 |
2023년 계묘년(癸卯年)이다. 계묘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서울대교구장이며 평양교구장 서리인 정순택 대주교를 통해 한국 교회와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들었다. 정순택 대주교와의 신년 인터뷰는 대담으로 진행했다.
-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로서 교구민과 한국 교회 신자들, 그리고 북녘 교회 형제들에게 새해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2023년 계묘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또 한 해를 선물로 주셨음을 감사드리면서 여러분과 모든 가정과 온 누리에 하느님의 은총과 평화가 가득하기를 빕니다. 지난 한 해 동안 하느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드리고 우리의 부족함에 용서를 청하며 아울러 새해에도 우리 자신과 우리나라와 온 세계에 하느님의 축복을 청합니다.
우리 사회는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 서로의 존중과 참된 대화가 필요합니다.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분쟁과 전쟁, 사회의 모든 갈등과 불안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가운데 이뤄지는 진정한 대화를 통해서 해결의 실마리가 마련될 수 있을 것입니다. 대화는 평화의 필수조건이요, 상호 존중은 대화의 필수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와 다른 상대방을 배척하고 적대하기보다는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대화를 통해 함께 더 나은 삶을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우리 한반도 정세도 상호 존중과 대화를 통해 다시 평화의 빛으로 밝아지기를 기도합니다. 대화는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존중하고 받아들일 때 서로의 마음의 문을 열고 시작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겨레도 서로 존중하며 마주 보고 마음을 열어 참된 평화를 건설하기 위해 형제적 대화를 나누어야 하겠습니다.
- 서울대교구장으로 재임하신 지 만 1년이 되셨습니다. 지난 1년 동안 특별히 더 교회를 위해 막중한 사목을 해 오시는 동안 보람된 일과 슬프고 안타까웠던 기억이 있으시다면 듣고 싶습니다.
우선 지난 1년 동안 교구 신부님들께서 코로나를 극복하고자 사목적으로 애써주시고 그러면서도 새롭게 교구장 일을 시작한 저를 위해 많이 기도해주시고 함께 마음을 모아 협력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난해 8월 교구는 조금 더 기도하는 분위기를 만들자는 의미에서 주교좌 기도 사제를 처음 시행했습니다. 신부님들과 교우들, 또 많은 분이 관심과 지지를 보내주셔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안타까운 일은 지난해 10월 이태원에서 많은 젊은이가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일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 대주교님께서는 서울대교구 시노드 단계에서 특별히 사제들에게 몇 차례 직접 편지를 띄우시고 답장을 받으시며 경청과 소통을 하셨습니다. 사제들의 의견을 살펴보시고 어떤 마음이 드셨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사제들에게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교구장으로 착좌한 이후에 신부님들과 함께하고 소통하는 노력을 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시간과 일정에 구애받지 않아도 되는 편지와 이메일을 통한 소통을 했습니다. 교구장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신부님들의 반응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또한, 많은 의견을 주셔서 저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신부님들께 당부하고 싶은 것은 서로 존중하자는 것입니다. 각자 맡고 있는 직책은 다르지만, 신부님 한분 한분은 그리스도의 대리자이십니다. 직책을 떠나 사제로서 보람 있게 투신하고 사목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서로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되면 좋겠습니다.
- 2023년 사목교서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믿는 이들에게 출발하도록 촉구하십니다 일어나 가자’라는 주제로 새롭게 출발하는 교회상을 제시해주셨습니다. 미사 전례에 모두가 동참하고 하느님을 만나야 하는 가치와 다양한 신심에 새롭게 불을 지펴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새롭게 출발하는 교회를 위해 사제, 수도자, 신자들이 각자 실천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요.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이 선교라는 것에 대한 새로운 각성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새롭게 출발하자는 것은 선교의 사명을 재각성하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을 만나는 기쁨을 맛보며 하느님을 만난 기쁨을 살고 그 기쁨으로 우리가 변화돼 기쁨의 삶, 복음의 삶을 증언하고 증거하자는 것입니다.
- 코로나 상황을 겪으며 교회는 전례와 말씀, 기도의 중요성을 다시금 신자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교구장님께서도 사목교서를 통해 신자들의 신심 활동을 강조하셨습니다. 신자들이 신심 활동 참여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말씀 부탁드립니다.
교회 안에는 성모 신심, 성체 신심, 성령 신심, 순교자 신심 등 다양한 신심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21세기에 접어들면서 특히 코로나 3년을 거치면서 신심 활동이 많이 좀 위축된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의 세 가지 심적 요소인 지성(知性), 감정(感情), 의지(意志), 지정의라는 세 측면이 우리에게 있듯이 신앙과 관련해서도 신학과 신심, 신앙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신학은 지성적인 활동, 신앙은 의지적인 실천, 신심은 우리의 감성적인 부분과 관련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신앙생활인데 신학은 지성적으로 신앙생활을 돕고 신심은 감성적인 면에서 우리에게 감동을 일으키고 우리에게 감성적인 에너지를 주어서 신앙생활을 돕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성모 신심, 성체 신심, 성령 신심, 순교자 신심 등 자신이 끌리는 신심을 통해 감성적으로 풍요로워지고 에너지를 얻는다면 신앙생활을 더 열심히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 젊은이들은 학업, 취업, 결혼, 내 집 마련 등 일상 활동에 매여 지내면서 성당에 가지 않더라도 종교에 속하지 않더라도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가벼운 깨달음을 추구하는 양상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현대사회 청년들의 성향에 비추어 교회의 청년 사목이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까요.
오늘날 젊은이들이 갖는 고충을 기성세대들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의 고충과 번민, 좌절은 기성세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젊은이들이 마음의 평화와 치유가 필요한 부분이 있는데 종교적인 것을 통하기보다는 다른 방법을 통해 안식처를 구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종교생활이라는 것은 단지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더욱 더 근원적으로 우리 존재의 의미가 무엇인지,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새롭게 보게 해주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느님을 보게 하고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에 눈을 뜨면 참된 의미와 가치에 대한 눈이 뜨이기 때문에 삶의 의미와 존재의 의미를 믿음의 눈을 통해 새롭게 볼 수 있습니다. 사목자들은 젊은이들과 함께하며 그들이 믿음의 눈을 뜰 수 있게 안내해야 할 것입니다. 단지 마음을 치유하는 정도가 아니라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는 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울 때일수록 참된 신앙생활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올해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세계청년대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교구와 각 본당이 대회에 참가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지원을 하게 될 첫해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읍니다. 젊은이들을 위해 이번에 어떤 지원을 해주시며, 그들에게 조언해주시고자 하는 바가 있으시면요.
우리나라에서는 세계청년대회에 주로 청년층을 중심으로만 참가했는데 실제로는 고등학생 나이 정도부터 참가할 수 있고 또 유럽에서는 청소년들도 굉장히 많이 참가하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는 청소년들을 좀 더 많이 초대하기 위해, 청소년들은 아무래도 참가비의 부담이 있을 수 있는 나이이기 때문에 본당과 교구 차원에서 참가비를 지원하는 방안을 통해 참가를 독려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의 경우에는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참가비를 마련해 나가는 시간이 신앙을 단단히 하기 위한 준비가 될 수 있도록 재정적인 지원은 하지 않지만 대신 청년들과 함께할 신부님들에 대한 지원을 통해 세계청년대회에 참가하는 청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저는 2016년 폴란드 세계청년대회와 2019년 파나마 세계청년대회에 직접 참가를 했는데요. 전 세계 젊은이들이 가톨릭 신앙 하나로 일치된다는 것, 젊은이들에게는 하느님을 만나고 새롭게 신앙에 불을 붙이는 시간이 된다는 걸 직접 목격하고 참가한 젊은이들에게 생생한 증언을 들었습니다. 세계청년대회에 참가해보면 변화를 느끼고 새로운 성령의 불을 느끼거든요. 많은 젊은이가 세계청년대회에 참가해 하느님을 만나고 성령의 불을 만나길 바랍니다.
- 2027년 세계청년대회 서울 유치와 관련해서는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시는지요.
우리나라에서 세계청년대회가 개최될 경우 많은 젊은이가 시간과 비용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참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또한, 우리나라에는 큰 축복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데 청소년 사목과 청년 사목의 획기적인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대회를 준비하는 시간부터 젊은이들이 주인공으로 참여하고 대회 기간에는 하느님을 체험하는 시간이 되며 대회가 끝나고 나서는 하느님을 체험한 것을 주변과 나누는 시간을 통해 청소년 사목과 청년 사목의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 사회 양극화가 심화하고 가난의 대물림이 강화되면서 사회 약자들, 그리고 미래의 희망인 젊은이들이 큰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청년들이 노동 현장에서 사회적 참사로 목숨을 잃는 등 안타까운 죽음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사회를 보다 인간다운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요.
우리 사회가 정치적인 양극화뿐만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으로도 양극화와 대립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각자가 정치적인 견해의 차이나 경제적인 능력의 차이를 떠나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교육 측면에서도 혁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입시 위주, 취업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사람 됨됨이를 키워나가고 올바른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이 혁신돼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여야가 정당의 색깔을 넘어 백년대계로써의 국민적인 합의를 만들면서 공감대를 찾아 교육을 지속해서 개혁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본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존중하는 인간이 중심이 되는 시대사조를 만들고 가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 앞에 인간 중심의 시대사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평화’는 교회가 항상 추구해야 할 가치이자 지켜야 할 사명입니다. 지난해 북한은 어느 때보다 많은 미사일 도발 등으로 국제사회를 위협하기도 했는데요. 이런 위기를 촉발하는 상황에서 어떠한 시각과 마음가짐으로 북한을 인식하고 바라봐야 할지요. 또한, 현재 남북관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고 화해와 협력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요.
북한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가짐은 공생과 공동 번영의 파트너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북한을 상생하고 공동 번영하는 파트너로 바라보고 평화 통일이라는 꿈을 잃지 않으면서 공생하고 공동 번영하는 길을 모색하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10월 미국 워싱턴 D.C. 미국가톨릭대학교에서 2022 가톨릭한반도평화포럼이 열렸습니다. 한국 교회 주교님들이 참석해 미국 국무부 고위 관련자를 만나고 미국 의회도 방문하며 짧은 일정 안에 의미 있는 행보를 하고 왔는데요. 그때 느낀 것은 북한이 무력 도발을 하지만 대화로 풀어가고자 한다는 것이 북한의 기본 입장인 게 확인됐고요.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도 대화를 통해 풀어가는 것을 1순위로 두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신 때문에 대화의 물꼬를 트지 못하는 상황인 걸 보면서 주교님들과 서로가 신뢰할 수 있는 제3의 세력이 중재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또한, 한국 주교단과 미국 주교단이 합심해 교황청의 중재까지 빌려서 가톨릭 교회가 정치적 이권을 떠나 북미 관계를 중재할 수 있는 역할을 하는 창구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가 방안을 모색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고민을 해보게 됐습니다.
- 주교회의 가을 정기총회를 통해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님의 시복을 위한 작업에 서울대교구가 주도적으로 키를 잡고 착수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앞으로 교구는 브뤼기에르 주교님 시복을 위해 어떤 작업을 이행해 나갈 계획이신지요. 또 신자들이 브뤼기에르 주교님을 제대로 현양하기 위해서는 어떤 기도와 실천, 현양 운동에 임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조선대목구 초대 교구장이신 브뤼기에르 주교님에 대해서는 어떤 교구가 조사를 하고 운동을 하기보다 한국 교회 전체가 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조선대목구의 맏아들 격인 서울대교구가 시복을 추진하는 것도 의미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서울대교구가 시복 운동을 시작하는 것에 대해 양해를 구했고 각 교구의 주교님들께서 만장일치로 지지해 주셨습니다.
시복을 추진하는 권한이 있는 교구는 시복 대상자가 선종하신 곳의 교구가 주도권을 쥐게 되어 있는데요. 브뤼기에르 주교님이 중국 마가자에서 선종하셨기 때문에 말하자면 주도권은 마가자가 속해 있는 교구에 우선순위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황청에 시복 조사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마가자가 있는 교구에서 서울대교구에 이양해달라는, 허락해달라는 교회법적인 절차를 먼저 밟아야 하고요. 교황청에서 승인이 내려지면 시복 조사를 본격적으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 그리고 교우들에게는 브뤼기에르 주교님의 시복이 이뤄질 수 있도록 브뤼기에르 주교님을 공경하고 전구를 청하면서 관심을 갖고 기도를 부탁드린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