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27일 통계청에서 배포한 2021년 사망원인 통계 결과에 의하면 한국 사회는 10대부터 30대까지는 자살로 인한 사망 비율이 가장 높고 40대와 50대는 암으로 인한 사망에 이어 자살로 인한 사망이 높았습니다. 60대의 경우는 암, 심장질환, 뇌혈관 질환에 이어 자살이 네 번째 사망원인이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본래 알고 있던 자연적인 죽음은 점차 사라지고 인위적인 죽음이 만연해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125년 전 「자살론」(1897년)을 쓴 프랑스의 사회학자 뒤르켐은 서로 흩어진 채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각자 자살을 결심하고 해마다 비슷한 수의 자살자가 발생하는 이유를 고민했었습니다.
그는 동일한 사회적 환경과 동일한 집단적 힘이 자살자들로 하여금 마치 특정한 법칙에 순응하듯 자살 행동을 발생시키고 그러한 사회적 기질(사회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해마다 비슷한 수의 자살사망자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자살 발생에서 자살사망자 개인의 기질과 취약성을 간과할 수 없지만, 개인 역시 자신을 둘러싼 사회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총체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자살의 사회적 측면을 강조한 뒤르켐의 표현은 해마다 1만 3천 명 이상이 자살로 사망하는 한국 사회의 심각한 자살 문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자살은 그 사회의 ‘사회적 희망’, ‘지속가능성’, ‘이동가능성’(자유롭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고, 실패하더라도 재기가 가능한 사회)을 나타내는 역설적인 지표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적정시간 노동할 수 있는 안정적인 일자리, 아이를 낳고 양육할 수 있는 주거환경,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하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임금(과도한 노동 소득격차 해소), 가족 내 중증질환자 및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돌봄, 의료취약계층의 병원비와 간병비, OECD에서 가장 심각한 노인 빈곤 문제 등이 삶의 문제인 동시에 자살 문제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자살이 많은 나라는 묵시적으로 그 사회에 희망(사회경제적 조건이 개선될 것이라는 희망, 아이들은 우리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젊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아 저출산 국가가 됩니다.
단순한 이야기 같지만 “사람은 살 수 있는 조건에서, 살 수 있습니다.” 현재 살아있는 사람들을 살 수 있게 만드는 사회적 조건과 환경을 만드는 것, 겉으로만 잘사는 나라가 아니라 내용상으로도 벼랑 끝에 몰린 약자들을 방치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쩌면 가진 사람들에게 한없이 따뜻하고, 없는 사람들에게 가없이 차가운 한국 사회의 기질을 조금이라도 바꿔나가는 것이 진정한 자살 방지 대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황순찬 베드로 교수
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