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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세례 축일 특집] 신앙 선조들은 어떻게 세례 받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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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최초로 세례를 받은 사람은 이승훈(베드로)이다. 1783년 북경에서 선교사들을 만난 이승훈은 세례를 청했고, 그라몽 신부에게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의 세례는 조선에서 천주교 신앙 공동체가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이승훈은 이벽과 협조해 교리내용을 익혀가면서 동시에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교 교리를 전했다. 그 결과, 1784년 초겨울 서울의 수표교(서울 중구 청계천 2가) 전셋집에서 조선 천주교회 최초의 세례식이 거행됐고 이벽, 권일신, 정약용 등이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았다. 당시의 세례식은 이승훈이 중국에서 체험한 예식을 모방했기에 중국의 「성교요리문답」이나 「성교절요」 등의 내용을 토대로 수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로 이승훈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음을 서한을 통해 알 수 있다.

조선시대 당시 세례식은 세례수 축복, 사탄을 끊어 버림, 세례 전 도유, 세례 후 기름 바름 등 현재의 예식과 큰 흐름은 차이가 없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세례의 상징성을 나타내는 행위가 예식에 포함돼 있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례개혁 이전인 1968년 간행된 ‘가톨릭 영세 예식서’에 따르면 어린이 입교 예식에서 부정한 신이 어린이에게서 나가게 하고자 사제가 어린이 얼굴에 세 번 입김을 불거나 “영원한 생명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축성된 소금을 어린이 입에 넣었다. 또한 “귀를 열어주시고 꽃다운 천상 향기를 알게 하소서”라고 말하며 사제는 엄지손가락으로 어린이의 귀와 코를 만졌다.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조한건(프란치스코) 신부는 “조선시대 선교사들의 세례예식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없으나 당시에는 로마예식서(1614년)를 기준으로 하였으므로, 라틴어로 예식이 진행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대로 된 성당이 없었던 박해 시기, 세례식이 거행됐던 풍경은 조선대목구 5대 교구장 다블뤼 주교의 서한을 통해 그려볼 수 있다.

“경상도의 한 교우촌에서 모든 전례를 한밤중에 거행했습니다. 작은 기도방으로 들어서자마자 고해성사, 미사, 세례식, 이 모든 예식이 정해져 있어서 쉴 틈이 없었지만 그래도 뿌듯한 위안이 제게 힘을 불어넣어 주었지요…. 교우들은 허술한 헛간에서 추위에 떨며 성사를 준비해야 하는데 그와 같은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모든 준비가 착실히 진행됐습니다.”(1862년 10월, 부모님에게 보낸 서한)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위한 신자들의 노력은 지금과 비할 데 없이 열정적이었다. 세례를 받기 위해 천주교 근본교리를 154개의 문답으로 정리한 「성교요리문답」을 외워야 했던 신자들. 최양업 신부는 서한을 통해 “전부 배우자면 몇 해가 걸릴 뿐 아니라 죽을 때까지 사본문답을 다 떼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고 전하는가 하면 “겨우 8~10세밖에 안 된 어린 꼬마들이 교리문답 전체와 굉장히 긴 아침기도와 저녁기도의 경문을 청산유수로 외우는데 그 광경은 신기하기 이를 데 없다”고 전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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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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