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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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업 바빠도 미사와 감사 기도로 하루 시작하는 가락시장본당 상인들

가락시장본당 상인들의 계묘년 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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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락시장 내 과일 경매장에서 경매가 진행되고 있다. 상인들이 경매가 진행되는 동안 물건을 살피고 있다.



토끼와 같이 부지런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이 있다. 수도권 시민의 먹거리를 위해 사람들이 잠든 시간에 일어나는 수고도 마다치 않는 서울 가락시장 상인들이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물가상승, 거기에 많은 이를 안타깝게 했던 각종 참사까지. 2022년 유난히 얼어붙었던 마음을 깨우길 희망하는 2023년 계묘년 새해. 희망을 판매하는 가락시장본당 신자 상인들을 만났다.

 

 

가락시장 풍경
 

2022년 12월 29일 새벽 2시. 수은주는 영하 9℃를 가리켰다. 여기에 바람까지 불면서 체감온도는 영하 10℃를 밑돌았다. 하지만 가락시장 내 청과류 경매장만큼은 열기로 가득했다. 가락시장은 365일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 국내 최대 농수산물도매시장으로 불리는 만큼 이틀간 정산된 청과류는 1만 2400여 톤에 달했다. 과연 수도권의 부엌이라 할만하다.
 

과일 경매장에 들어섰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은 경매장 사이로 수많은 지게차가 과일 상자를 나르고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든 중매인들은 이리저리 상자에 담긴 과일을 살폈다. 온화하게 취재진을 맞은 강원청과 이경호(베르나르도) 대표도 경매가 시작되자 날카로운 눈으로 물건들을 살폈다. 질 좋은 과일을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손에 넣기 위해서다. 경매가 시작되고 경매사가 특유의 추임새로 경매 열기를 끌어올렸다. 37년 경력이 말해주듯 이 대표의 입찰기 누르는 솜씨는 노련했다.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중매인들 사이에서는 탄식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입찰 잘하셨느냐”고 묻는 취재진에게 “잘하긴요”라며 답하는 이 대표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입찰한 물건을 어떻게 알았는지 어느새 지게차가 나타나 과일 상자를 척척 실어 나르고 있었다.


 

가락시장의 톱니바퀴
 

바쁘게 돌아가는 가락시장 풍경에는 37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친절유통 유희봉(미카엘) 대표는 “50만여㎡ 규모의 가락시장을 가로지르는 데만 최소 1시간이 걸려서 시장에서 물류 장비는 빼놓을 수 없다”며 “톱니바퀴 중 하나만 어긋나도 잘 안 돌아가듯 상인 개개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곳이 가락시장”이라고 설명했다. 가락시장 상인들이 시장 내 일 처리 시스템을 톱니바퀴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상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평화토속맛식품 강정문(바오로) 대표는 “전국 물동량 상당 부분이 가락시장으로 온다”며 “이곳을 통하지 않고는 식당 운영을 할 수 없고 마트 등에도 납품도 하지 못하니 수도권 인구의 생필품을 책임을 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자부심을 나타냈다. 코로나19 확산세에도 가락시장만은 문을 닫을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 365일 24시간 잠들지 않는 가락시장 답게 상인들이 물건을 실어나르고 있다.
 
 

서서 밥 먹는 사람들
 

가락시장 상인들은 늦은 밤부터 새벽에는 도매 업체, 아침부터 저녁까지는 소매 손님을 상대한다. 서서 끼니를 때울 정도다. 하루 12시간 이상 주 6일을 일하는 것이 힘들 법도 한데 앓는 소리 한 번 없다. 오히려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신자 상인들은 그 비결을 ‘하느님에 대한 감사함’이라고 답했다.
 

진주상회 홍정원(야고보)·문옥순(마리아) 대표는 1988년 청과동 건물을 임대해 가락시장본당이 설립된 날부터 자리를 지킨 자칭 ‘1기 신자’ 부부다. 문 대표는 “가락동본당의 공소처럼 시작한 가락시장본당이 오래 남아 신자 상인들에게 행복의 장이 되고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이들은 IMF 때 부도를 맞았다. 이후 10년 동안 자녀 셋을 가르치는 데 매우 애를 먹었다고 했다. 그때 본당에서 알게 된 한 신자가 문 대표에게 말했다. “힘들지? 물질적으로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살다 보면 하느님이 다 이뤄주실 거야.” 문 대표는 “덕분에 온전히 신앙생활에 집중하다 보니 다시 일어서고 이제는 자리도 잡아 감사하다”고 말했다. 홍 대표도 “자신이 모든 걸 다하려고 하면 한계가 있지만, 하느님께 몸을 내던질 때 절대로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았던 위기도 극복했다”고 했다.
 

나주홍어 김옥희(클라라) 대표는 “힘들어도 보람 있고 재미도 있다”며 “하느님께서 다 돌봐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본당 사회복지분과장이다. 하루는 무료급식소 하상바오로의 집 봉사를 하러 갔는데 한 방송사로부터 맛집 촬영 요청이 왔다. 김 대표는 행려자를 챙기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봉사를 마치고 요청에 응했는데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생각지 않게 가게 앞은 손님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그는 “많이 알려지자마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퍼졌지만, 그때 벌어둔 것으로 위기도 견딜 수 있었다”며 “하느님께서 어려운 일이 닥치기 전에 주신 선물 같았다”고 했다.
 

 
▲ (왼쪽부터) 김옥희·유희봉 대표와 김순금·강정문 대표 부부가 가락시장을 찾은 손님들을 기쁘게 맞고 있다.

본당과 봉사는 나의 행복
 

가락시장본당 미사는 매일 아침 10시에 봉헌된다. 생업에 매진할 시간이지만, 신자 상인들은 가게 문도 열어둔 채 미사를 위해 자리를 비운다. 손님이 있어도 양해를 구한다. 본당에서 얻는 행복이 커서다. 강정문 대표는 “매일 가족 같은 본당 식구들을 만나고 누군가 도움이 필요하면 누구 하나 망설임 없이 돕는 것이 참 좋다”며 “사이가 가깝다 보니 미사에 참여를 안 하면 전화가 와 미리 공지해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가락시장본당이 생기기 전 가게를 지키기 위해 주일 미사에 참여하지 못했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매일 미사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쁘기만 하다. 강 대표는 “제가 가진 모든 것은 하느님이 주신 것으로 생각한다”며 “감사드릴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신자 상인들은 하상바오로의 집에 관한 일이라면 모두가 열심이다. 하상바오로의 집은 신자 상인들이 가락시장 인근에서 동사한 행려자들을 보고 고 김수환 추기경의 도움을 받아 자발적으로 설립한 무료급식소다. “자신이 쥐고 있는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 덕분이라면, 하느님의 구원사업에도 발 벗고 나서야 한다”는 설명이다. 일과가 끝난 새벽이나 아침에 음식재료를 들고 하상바오로의 집 문 앞에 두고 온다. 봉사도 빠지지 않는다. 이경호 대표는 “저도 추울 때 밖에 나와 일하니까 안다”며 “추운데 밥도 못 먹고 다니는 행려자들의 사정은 우리보다 더욱 어렵기 때문에 꾸준히 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산농산 김종옥(요셉) 대표는 “급식소를 찾아오는 행려자가 모두 가족 같아 그저 제가 좋아서 하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들보다 더 힘들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가락시장 신자 상인들. 그들은 진정 예수님을 따라 삶을 사는 사람들이었다.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1)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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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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