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톨릭 청년이다] (7) 한정원 수녀 (예수의 까리타스 수녀회 서울관구)
▲ 한정원 수녀는 교회 구성원들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할 때 더 많은 청년들이 교회를 찾을 것이라고 했다. |
“양가 친척이 다 불교나 개신교 신자인데, 제가 결혼하기 싫어서 수녀원으로 도망친 줄 아시더라고요. 좋아서 제 발로 온 거라고 계속 반박했는데도 아직 저를 짠하게 보세요. 그러면서 ‘행복하냐’고 자꾸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럼 저는 대답하죠. 완전 행복하다고요.”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서울관구 한정원(레오, 32) 수녀가 웃으며 말했다. 수도자가 돼도 다른 청년처럼 명절에 스트레스받기는 마찬가지란다. ‘나는 가톨릭 청년이다’ 일곱 번째 주인공을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서울관구 본원에서 만났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혼밥ㆍ혼술 익숙한 세대에게 수도생활이란
“저를 만나는 학생마다 ‘이렇게 젊은 수녀님 처음 뵌다’고 하더라고요.”
내년 2월 종신서원 예정자인 한 수녀는 현재 청년 사목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다. 예수회가 운영하는 서강대학교 교목처에서 16일까지 근무한다. 한 수녀는 원래 초등학생 때부터 역사학자를 꿈꿔 대학 전공도 역사학을 택했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가 있을 곳이 여기가 맞나?’라는 고민과 함께 수도회로 마음이 기울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2014년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에 입회했다. 20대 중반인 그는 입회 동기 중에 상당히 어린 축에 들었다.
“사회 경험을 하다가 어떤 부족함을,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를 느끼고 그제야 뒤늦게 성소를 발견한 분이 많은 것 같아요. 사회 경험을 시작하는 나이 자체가 늦어져 입회 연령이 높아질 수밖에 없죠. 각자 맞는 때라는 게 있겠지만, 자매들이 성소를 조금이라도 빨리 발견하면 좋겠어요. 늦을수록 본인에게 힘든 것 같아요. 세상에 행복하고 즐길 게 너무 많은데, 그걸 한창 누리다가 갑자기 내려놓으려면 너무 어렵겠죠.”
과거와 달리 ‘혼술’ ‘혼밥’이 보편화한, 홀로 사는 삶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진 현대 사회. 한 수녀는 “혼자 편히 지내는 일상이 익숙해진 2030세대에게는 공동체 생활만큼 힘든 일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저는 삼남매 중 첫째로 터울이 많이 지는 동생들을 돌보며 컸고, 입회 직전까지 가족과 함께 살았어요. 그래서 수도자들이 가족처럼 부대끼고 지내는 생활이 재밌고 좋았어요. 하지만 동기 대부분은 외둥이거나 혼자 산 경험이 있었죠. 그래서 처음 공동체 생활을 시작할 때 어려움이 더욱 컸던 것 같아요.”
여자는 왜 신부가 될 수 없느냐 묻는 청년
30대 초반 수도자 눈에는 청년과 기성세대 간극도 무척 커 보였다. 한 수녀는 “옛날엔 교회에 청년도 많고, 다들 참 열심히 활동했는데 요즘은 안 그런다고 의아해 하는 수도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청년들은 자기에게 이득이 되는, 즐거운 일이 우선이고 신앙은 뒷순위인 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물론 의무감을 갖고 신앙활동을 하는 청년들은 여전히 있다. 하지만 권위적인 태도로 실망하고 상처를 입는 일이 잦다. 성직자ㆍ수도자가 평신도보다 위인 것처럼 굴고, 활동인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일을 몰아주는 경우가 예다. 한 수녀는 “청년들이 성당에 가는 것조차 싫어하는데 어떻게 수도자의 길을 권할 수 있겠느냐”고 씁쓸해 했다.
“부모님들도 자녀를 수도회에 보내고 싶어 하지 않아요. 간다고 해도 말린다고 들었어요. 제가 예전에 본당에서 전교할 때도 어머님들에게 ‘따님 수녀원에 보낼 생각 없으세요?’라고 하면, 이런 답이 돌아오더라고요. ‘수녀님, 그럼 우리 애가 너무 고생하잖아요!’ 이런 생각이 은연중에 신자에게 깔렸는데 성소를 발견하기 쉽지 않겠죠.”
여성 청년들이 던지는 도전적인 질문도 큰 과제였다. “여학생들이 친해지면 꼭 하는 말이 ‘왜 여자는 신부가 될 수 없어요?’예요. 처음 들었을 땐 말문이 턱 막혔죠. ‘신부가 될 수 있으면 수녀원에 들어가겠다’고 말한 학생도 있어요.”
페미니즘 영향을 받은 청년들이 성 역할이 뚜렷한 가톨릭을 ‘차별적’이라고 규정짓는 현실. 한 수녀는 “성모 마리아 성 요셉에 대해 황당한 공격을 하는 청년도 있었다”며 “여러 가치관을 받아들여 중심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이어 “이런 청년들은 이미 혼자서 답을 내린 탓에 어떤 설명을 해줘도 받아들이질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저는 이제 ‘여성이 사제가 될 수 있어도 나는 안 할 거야’라고 말해요. 수도자로 살아가는 삶도 충분히 만족스럽거든요. 청년들에게 또 이런 이야기도 해요. 정말 여성 사제가 되고 싶은 건지, 그걸 핑계로 신앙과 성소를 멀리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라고요. 그리고 혼자 판단하지 말고, 궁금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보라고요.”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만남과 소통
대개 청년을 위한 사목 방안으로 대규모 행사가 튀어나오기 일쑤다. 하지만 청년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바로 ‘소모임’이라는 게 한 수녀의 신념이다.
“성경 통독반을 개설했는데, 4명밖에 등록 안 하더라고요. 그마저도 바빠서 다 모일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시간을 계속 쪼개서 따로 만났죠. 한 명만 할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학생들은 저와 1대1로 수업하는 걸 좋아하더라고요. 남 눈치 안 보고 궁금한 것도 물어볼 수 있고, 소통하기 편해서 그랬나 봐요. 그만큼 시간을 많이 내느라 몸은 힘들었지만, 역시 발품을 파는 게 최고라는 걸 알았죠.”
하지만 평신도인 청년들이 수도자에게 흉금을 터놓기란 쉽지만은 않을 일이다. 한 수녀는 “학생들의 깊은 속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데는 교목처에서 함께 일한 청년 평신도 사도직 활동가의 도움이 아주 컸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제 앞에서 말하기 어려운 고민과 질문을 그 청년 활동가에겐 털어놓는 경우가 많았죠. 저도 그 친구와 함께 있으면 학생들과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요. 그 가운데는 낙태처럼 극도로 민감한 소재도 있었어요. 저도 그 자리를 빌려 솔직하게 말했죠. 생명을 취사선택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아 마음 아프다고요.
한 수녀는 청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도 세포였고, 나도 세포였는데. 어떻게 세포라는 이유로 생명을 죽이고, 가능성을 뺏어갈 수 있겠어. 네 눈에 고지식해 보일 수 있지만, 가톨릭은 생명 존엄이라는 근본적인 가치를 지키는 것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야. 낙태를 반대하는 교회 입장에 사람들이 크게 반발하는 것은 내심 낙태가 잘못된 것이라고 알고, 죄스러워하기 때문이 아닐까?”
많은 학생이 또래 청년 활동가를 만나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 그 모습을 본 한 수녀는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청년 평신도가 더 필요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성직자ㆍ수도자와 더불어 평신도가 더 큰 역할을 해줘야 교회에 더 많은 청년이 찾아올 것이라고 믿어요. 올바른 신앙관을 가지고 수도자ㆍ성직자와 함께 일하는 청년 평신도를 양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면 좋겠어요.”
변하는 세상에서 변치 않는 사랑
청년이 귀한 한국 교회에서도 유독 젊은 피 수혈이 필요한 곳이 바로 수도회다. 코로나19로 최근 3년간 입회자가 단 한 명도 없는 수도회도 적지 않다. 한 수녀는 이를 두고 “속상하다”며 “청년들이 성소를 식별하는 프로그램으로 초대했을 때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주면 좋겠다”고 바랐다.
“제가 아무리 힘들어도 수도생활을 권하는 이유는 제가 받은 사랑을 전해주고 싶기 때문이에요. 바로 하느님이 주신 충만한 사랑이죠. 인터넷으로 뭐든 쉽게 답을 찾는 세상에서 수도자가 되는 긴 여정은 재미없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하지만 침묵 속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꾸준하게 찾아갈 수 있는 그런 끈기가 우리 삶엔 꼭 필요하답니다.”
언젠가 학생 하나가 수도생활이 뭐냐고 묻자 한 수녀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한테는 깨진 항아리가 하나씩 있어. 깨진 항아리에 물을 부으면 물이 차지 않잖아. 그런데 하느님이라는 강에 그 항아리를 던지면 물이 가득 차고도 넘치지. 바로 그런 삶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 수도생활이야. 너도 하느님이라는 강에 스스로 맡기고 그분의 사랑을 알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