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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십자가 성당 내부, 글라트벡, 1914년. 출처=Deutsches Liturgisches Institu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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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십자가 성당, 글라트벡, 1914년. 출처=Deutsches Liturgisches Institut |
지금부터 100년 전 20세기 초에 시대가 급변하고 있을 때, 처음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의” 성당을 어떻게 지어야 하는가를 질문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독일의 사제 요하네스 판 아켄 신부(Johannes van Acken, 1879~1937)였다. 근대 성당을 말할 때 반드시 알고 기억해야 하는 사제다.
새로운 전례에 맞는 성당 건축문제는 철근 콘크리트라는 새로운 구조 재료였다. 철근 콘크리트는 근대 사회의 거의 모든 건물을 짓는 주요 재료가 되어 이전에는 없는 새로운 건축 형태를 결정해 주었다. 전통적으로 성당 건물은 돌을 쌓은 볼트를 연달아 세워, 높고 넓은 방과 높은 창을 만들 수 있었고 내부를 다양하게 장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철근 콘크리트와 철골로는 여러 표징을 만들 수 없어서 전통적인 내부를 구현할 수 없고, 전체적인 건물 형태도 예전과 전혀 달라지고 만다.
기술 중심의 건물은 필요로 하는 바를 충족하면 되지만 성당은 사정이 다르다. 성당은 인간의 종교적인 열망과 완전한 참여로 완성되는 건물이고, 교회와 공동체 사이에 친밀한 관계를 드러내는 건물이다. 그러나 근대 사회에서는 주택 중심의 생활이 공장 생활, 이동하는 생활로 바뀌고 말았다. 이런 사회의 변화 속에서 성당 건축은 계속 간직해 왔던 고유한 모든 감각을 점차 잃어가고 있었다.
이런 시대에 성당 건물은 어떻게 하면 좋은가? 그렇다고 성당의 내부를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지는 기념비적인 공공건물, 철도 역사와 같은 세속적인 건물의 내부를 쫓아갈 수도 없었다. 이것이 당시 교회 건축가들은 큰 숙제였다. 이에 그리스도교의 내적인 개념으로 전례에 새로운 활력을 주는 성당, 그래서 새로운 정신으로 ‘내부’를 혁신하는 성당을 달리 지어져야겠다는 인식이 일어나게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몇 년 동안 전례와 영적 쇄신을 위한 교회 건축 책이 출판되기 시작했다. 이 점에서는 개신교는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1919년에는 루터교 신자로서 유럽에 무려 125개의 교회를 설계한 건축가 오토 바르트닝(Otto Bartning)은 큰 영향을 미친 「새로운 교회 건축에 관하여(Vom neuen Kirchenbau)」를 출간했고, 1922년에는 명작 「별 교회(Sternkirche)」 계획으로 신자를 밀접하게 에워싸는 내부 공간을 깊이 탐구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당시 가톨릭교회는 여전히 엄격한 전통에 머물러 있었다. 새로운 전례에 의한 성당 건물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교회 건축가들의 강렬한 요구와 새로운 의도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철근 콘크리트로 뛰어난 건물들이 속속 세워지고 있는데도, 철근 콘크리트는 성당 건물에 적합하지 않은 재료라고 거부하기까지 했다.
이때 가톨릭교회의 새로운 전례에 맞는 근대 성당 건축을 새롭게 지어야 한다고 주장한 신부가 나타났다. 요하네스 판 아켄 신부였다. 그는 당시 철근 콘크리트가 정적인 양식의 성당을 짓는 중요한 재료가 될 것임을 충분히 인식한 첫 번째 사제였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실천에서 나왔다. 그는 20년 동안 일했던 글라트벡(Gladbeck)에 새로 지어진 성십자가 성당(Heilig-Kreuz-Kirche)과 예수성심 성당(Herz-Jesu-Kirche) 건축에 깊이 관여했다. 특히 성 십자가 성당에서 아켄 신부는 건축가와 긴밀하게 협조하며 하기아 소피아와 같은 10각형 돔 아래에서 환한 빛을 받으며 제단과 회중석 사이를 더 가깝게 한 혁신적인 중심형 평면을 만들었다. 그리고 1914년에 이미 두 본당에서 실천한 바를 「현대 본당 건축에 대한 고찰」에서 기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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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하네스 판 아켄 신부(왼쪽), 「그리스도 중심의 교회 예술: 전례 종합예술을 위한 구상」 표지. 성 십자가 성당 내부, 글라트벡, 1914년. 출처=Deutsches Liturgisches Institut |
‘그리스도 중심’의 새로운 성당8년 후 그는 1922년 근대 성당 건축에 대한 사고를 최초로 공표한 「그리스도 중심의 교회 예술: 전례 종합예술을 위한 구상(Christozentrische Kirchenkunst: ein Entwurf zum liturgischen Gesamtkunstwerk)」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아켄 신부의 이 책은 근대 성당 건물의 편람과 같았으나, 출간된 지 1년 만에 재판했을 정도로 20세기 근대 성당 건축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이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성당 건축에 관한 학문적 탐구를 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당시 가톨릭교회 건축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중요한 책이었다. 제2판에는 중요한 교회 건축가들, 특히 도미니쿠스 뵘(Dominikus Bhm, 1880~1955)의 ‘미사성제 성당(Messopferkirche)’과 같은 작품을 실으며, 빛으로 정신적 중심을 강조하는 ‘그리스도 중심’의 단일 공간을 주장했다. 이 책이 나온 지 100년이 되는 작년 2022년에 복간되었다.
아켄 신부가 생각하는 새로운 성당의 근본적 원리는 ‘그리스도 중심’의 힘을 공간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그리스도 중심’의 힘이 새로운 형태를 찾고 새로운 양식을 만들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리스도 중심’의 새로운 성당 건축은 오직 제대에서 시작한다. 제단과 회중석은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어져야 한다. 평신도들은 사제와 함께 공동의 희생 제사를 드리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제대를 성당의 몸으로 옮기거나 회중석과 횡랑이 만나는 교차부에 들어가야 한다. 성당 평면이 바실리카로 선택되었더라도 중심형 평면과 반드시 결합해야 한다. 또 다른 큰 구조물이 제대 위를 덮어서는 안 되며, 제대와 인접해서 놓였던 성가대석의 길이는 줄이고 폭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듯 제대를 회중석을 향하게 하여 신자들과 가깝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펼쳐 보인 이는 요하네스 판 아켄 신부였다.
‘그리스도 중심’의 새로운 성당 건축은 양식에서 얻어지지 않는다. “만일 ‘순수한’ 고딕, 로마네스크, 바로크 양식의 성당 건물과 기물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싶다면, 또 어디서나 진실하게 설계하기를 배우려 한다면…한 마디로 ‘신비한 그리스도’인 제대가 출발점이요, 이 초점에 성당 건물과 그 안의 기물이 예술적으로 수렴하여야 한다.” 성당은 순수하게 건축적으로만 이루어지지 않고 많은 예술품과 기물과 함께 있다.
따라서 성당에 관여하는 예술은 전통과 전례에서 긴밀하게 결합하며 제대를 향해 수렴하는 종합예술이 되어야 한다. 이처럼 그는 새로운 성당 건축을 종합적으로 바라보았다. 이에 고딕 성당처럼 확산하며 결합할 것인가, 아니면 초기 그리스도교 성당처럼 수렴하며 결합할 것인가 하는 두 가지 방식으로 종합되어야 한다며, 종합예술의 방향도 제시했다. 그는 특히 본당 건물에 주목했다. 본당에 맞는 전례 양식과 함께 본당 사목구의 신자와 성당을 더 작게 하여 본당 건물을 많이 지어야 한다고 보았다.
지금부터 100년 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보다 40년이나 앞서서 전례를 갱신하고 이에 맞는 새로운 성당 건축을 제시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요하네스 판 아켄 신부를 알고 기억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의” 성당 건축의 본질을 말해 줄 수 있는 우리 시대의 사제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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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십자가 성당, 글라트벡, 1914년. 출처=Deutsches Liturgisches Institu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