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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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탈주민, 목숨 걸고 넘어왔지만… ‘차별’의 벽 높아

[우리 가운데 계시도다] (4)북한이탈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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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년간 차별·무시 당한 경험이 있는 북한이탈주민은 19.5로, 차별의 이유는 말투나 생활방식 등 문화적 소통방식이 다르다는 점이 75로 가장 높았다. 출처=남북하나재단 2022 북한이탈주민 사회통합조사 보고서




비행기가 활주로에 안전하게 착륙하기 위해서는 장애물이 없어야 하며 바람이나 안개 등 기상도 고려해야 한다. 착륙을 지원하는 계기착륙장치도 정상 작동해야 한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관제탑과 비행기 간 원활한 소통이다. 비행기의 안전한 착륙을 이끄는 것은 사람이라는 말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이 한 지역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집, 일자리 등 많은 것이 필요하지만 가장 필요한 것은 낯선 이에게 내미는 지역민의 따뜻한 손길이다. 가난한 이들 곁에서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우리 가운데 계시도다’. 북한이탈주민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특별취재팀



북한군인 딸로 밟은 남한 땅


장마로 인해 6월 압록강은 무서운 기세로 물이 불어났다. 강을 건너지 못하고 4일간 브로커의 집에 머물렀다. 하지만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었다. 물에 뜰만 한 드럼통을 몸에 매달고 강을 건넜다. 강의 하류여서 폭은 10m가 넘었고 불어난 물에 물살까지 거셌다. 한참을 강을 떠내려가다 가까스로 강을 건넜다. 2018년 9월 남한에 온 북한이탈주민 김선경(가명, 29)씨는 “넘어와서 보니 다시 돌아갈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탈북 당시를 떠올렸다.

김씨의 아버지는 군인이다. 그래서 그는 12년간 의무교육을 들었고 남한에 간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가 중국에 가서 돈을 벌어오자고 제안했다. 양강도 국경 연선에 있는 집에서 늘 중국을 봐왔던 터라 언젠간 중국에 가보리라는 생각도 했던 김씨였다. 그렇게 친구와 함께 중국 길림으로 갔는데 이번에는 브로커가 남한에 갈 수 있다는 말을 했다. 김씨는 겁부터 났다. “남한 안기부에 잡히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남한에 가면 북한에서 3대 멸족을 하거든요.” 하지만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기 힘들다는 생각에 김씨는 결국 남한행을 결정했다. 남한으로 오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라오스에서 총을 쏘는 경찰에 쫓기기도 했고 태국에서 1개월간 수용소 생활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밟은 남한땅. 김씨는 “비행기에서 남한 땅이 보였을 때 ‘이제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말이 낸 상처


남한 정부에서 지원금을 주고 수급비도 줬지만 자립하기에는 부족했다. 김씨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고깃집에서 일할 때였는데 수급비 문제로 사장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월급을 현금으로 받기로 했다. 그런데 사장은 김씨를 믿지 않았고 결국 “다시는 북한 사람을 상대하지 않겠다”고 했다. 사장은 김씨를 비하하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북한에서는 이런 거 못 먹지?”, “제대로 못 먹었지?”와 같은 말들이었다.

한번은 공장에서 일하기 위해 면접을 봤는데 같이 갔던 북한이탈주민 친구들이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면접에서 떨어졌다. 강원도 금강군이 고향이었던 김씨는 강원도 고성에서 왔다는 말로 합격을 했다. 면접관에게 친구들이 떨어진 이유를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회사에 들어오면 적응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이었다.

회사 인턴을 하면서도 비슷한 경험은 이어졌다. 대화하는데 수준 차이를 느꼈다. 대화에 끼지도 못했고 일할 때, 밥 먹을 때도 편하지 않았다. “밥 먹으면서 저에게 말도 안 걸고 자기들끼리만 이야기했으니까 따돌림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그 차이를 좁히려는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어떤 회사에 가더라도 사람들을 잘 챙겨야겠다는 결심도 했어요.” 김씨에게 남한 생활은 절대 녹록지 않았다. 하지만 김씨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보호기간 5년, 정착에는 역부족


전문가들은 다양한 시각에서 북한이탈주민의 문제를 바라봤다. 우선 경제적인 어려움이다. 북한대학원대학교 김성경 교수는 “북한이탈주민은 기반 없이 우리나라에 왔다”며 “오자마자 임대주택 등 정착에 필요한 약간의 도움은 받지만, 이후에는 가장 낮은 수준의 지원만 받는다”고 설명했다.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보호기간은 5년이다.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 이 기간을 줄이거나 늘릴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5년이 지나서 일반 사회복지시스템에 편입된다. 그러나 재산을 비롯해 직업과 학력 등이 부재한 상태로 남한에 온 이들이 대부분인 북한이탈주민에게 5년이라는 보호 기간이 정착을 도울 수 있는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 북한이탈주민의 자살 충동 경험 비율은 2021년 13.3, 2022년에는 11.9로 2022년 일반 국민의 자살 충동 경험 비율인 5.7보다 두 배 이상 높다.



손에 잡히지 않는 양질의 일자리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데 생계 활동은 필수다. 그러나 남북하나재단이 2022년 북한이탈주민 219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착실태조사를 보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연령대(20대에서 50대까지)가 85.9로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경제활동에 참가하는 사람은 전체의 63로 나타났다. 더 나은 남한 생활을 위해 필요한 지원 1위도 취업과 창업 지원(21.9)이었다. 직업유형 또한 단순 노무종사자(21.2)가 가장 많았고, 일하고 있는 사업체 유형은 제조업(20)이 1위로 나타났다. 김성경 교수는 “북한에서 왔다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기 때문에 북한이탈주민의 취업이 쉽지 않다”며 “어떤 시선에서는 충분히 환대해야 한다면서도 이들이 직장 동료가 됐을 때 상당한 거리감을 보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 같은 사회적인 배제의 차원에서 겪은 차별 때문에 일부 북한이탈주민은 북에서 온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아 한다”며 “억양 등에 신경을 많이 쓰고 차라리 조선족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니기도 하지만,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고 안타까워했다.



학력 주의 극복 쉽지 않아


학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가톨릭대 대학발전추진단장 최준규 신부는 “북한이탈주민 또한 학력주의인 우리나라에서 정착하기 위해 대학에 진학해 공부하고 싶어 하나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가톨릭대학교는 2017년 교회의 정신에 따라 가난하고 어려운 학생들을 돌봐야 한다는 사명을 갖고 북한이탈주민 재학생에 대한 지원 체계를 마련했다. 전액 등록금, 기숙사를 포함해 달마다 50만 원씩 생활비를 지원하는 방안이다. 최 신부는 그 배경에 대해 “더 나은 학습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북한이탈주민 재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들은 우리나라에 오기 위해 중국과 같은 제3국을 거쳐 떠돌다 공부할 기회를 놓친 경우가 상당했다”며 “현재 정책은 북한이탈주민 대학 등록금의 50를 지원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35세 미만인 이들만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우리나라에 와서 공부하려고 해도 생계를 위해 밤늦게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공부에 집중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했다. 학업 성취 문제도 있다. 북한이탈주민 대학생이 의무교육으로 어렸을 때부터 공교육을 받아온 남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과정을 따라가기란 쉽지 않았다. 이에 최 신부는 “금전적인 지원도 필요하지만, 이들이 우리나라에서 적응하고 함께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인도적인 접근이 요구된다”며 “북한이탈주민의 상황을 고려해 지원제도를 실효성 있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미래의 인적 자원을 양성하는 교육기관 또한 이들의 어려움을 헤아리는 데 함께 앞장서자”고 했다.


▲ 북한이탈주민 청소년 그룹홈 ‘한우리 공동체’ 식구들이 주수영 신부(가운데)와 함께 설 음식을 만들고 있다. 한우리 공동체 제공



북한이탈주민, 적극적으로 찾고 포용해야

전문가들이 내놓은 북한이탈주민의 어려움과 그 해법은 무수했다. 다만, 공통으로 강조하는 한 가지는 포용의 미덕이다. 남한에서 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북한을 떠나 우리 곁에 온 한민족이기 때문이다.

이화여대 북한학과 김석향 교수는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정책 자체는 과거에 비하면 상당히 촘촘하게 마련이 돼 있다”며 “다만 이를 제대로 누리고 온전한 삶의 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안내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려운 북한이탈주민을 찾고, 관심 있게 바라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최준규 신부는 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문을 제시했다. 침묵의 교회는 북한에 있는 교회를 의미한다. 최 신부는 “우리 깊은 곳에 내재한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의식의 전환이 중요하다”며 “이들을 위한 기도를 함으로써 한민족이라는 의식을 상기해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북한이탈주민을 받아들인다면 우리 사회, 한반도, 세계 평화를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성가소비녀회 의정부관구가 지난해 3월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평화의 씨앗’ 공동체 축복식을 진행한 후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평화의 씨앗 공동체 제공



북한이탈주민 위한 진정한 지원

북한이탈주민들은 ‘지원’보다는 ‘편견’을 갖지 말아달라고 입을 모았다. 박주명씨는 “북한과 중국에서 험한 일을 하며 적응하고 살았는데 남한에 와서 적응을 못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김선경씨도 “뭘 해줘야지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앞서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편견을 가지지 않게 해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남한에서의 진정한 정착의 의미에 대해서는 비로소 ‘우리’라고 할 수 있을 때라고 입을 모았다. 박씨는 “이 사회와 같이 공감하면서 어울려 살아갈 때 잘 살아가고 있구나 느낀다”며 “새로운 추억을 쌓고 미래를 만들어가며 잘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 역시 “제가 서 있는 자리가 편안하고 다른 사람과 같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때 잘 정착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저를 찾아가는 것 같다. 앞으로 지금보다 더 잘 살아가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동반하는 교회


교회는 북한이탈주민들의 남한 정착을 위해 여러 방면에서 손을 내밀고 있다. 특히 10곳이 넘는 수도회가 그룹홈, 쉼터 등을 운영하며 북한이탈주민과 직접적으로 동반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작은형제회 프란치스코회가 운영하는 ‘한우리공동체’가 있다. 한우리공동체는 북한이탈주민 청소년들이 건강하게 자립하고 통일 시대의 일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2010년 설립된 그룹홈이다. 만 18세 이상 남자 청소년이 머무를 수 있는 교회 내 유일한 곳이다. 현재 4명의 청소년과 작은형제회 신부와 수사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그룹홈 초기에는 부모 없이 혼자 살아가는 청소년을 중심으로 운영되다 현재는 필요에 따라 연고가 있는 청소년도 함께 생활하고 있다. 그동안 한우리공동체를 거쳐 간 이들만 70여 명. 명절이 되면 결혼해 자녀를 데리고 방문하는 이들까지 생겼다.

이들은 식구다. 무엇보다 함께 식사하는 시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되도록 아침을 함께 먹는 것이 원칙이다. 공동체에서 동반하고 있는 주수영 신부는 “누가 아픈지, 누가 바쁜지 아침을 함께 먹어야 서로의 일정과 상황을 알 수 있다”며 “1년 중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밥 먹어라’, 그다음이 ‘밥 먹었느냐’ 일 정도”라고 말했다.

주 신부는 “이 집에 살겠다고 지방에서 올라온 아이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세상 물정 모르는 철없는 아이였다”며 “하지만 시간이 흘러 대학원을 졸업하고 어엿한 직장에 취직해 첫 월급으로 빨간 속옷을 사왔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성장하는 데 중요한 것은 그저 믿고 기다려주는 것, 결국 믿음이 사람을 변하게 한다”고 전했다.

이처럼 한우리공동체는 가족 개념인 ‘대안 가정’이다. 탈북 과정에서 대부분 심적으로 큰 상처를 입기 때문에 가정이라는 공간이 누구보다 필요한 이들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어깨가 돼줄 수 있도록 때로는 부모와 자녀처럼, 형제처럼, 삼촌과 조카처럼 빈자리를 채워주고 있다. 공동체 원장 김권순 신부는 “이곳에서의 생활은 남한에서의 적응을 도울 뿐 아니라, 통일이 되면 남과 북을 이어주는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희망했다.



성가소비녀회 의정부관구가 마련한 분원 ‘평화의 씨앗’ 공동체는 조금 특별한 형태로 북한이탈주민과 동반하고 있다.

북한이탈주민이 많이 거주하는 남양주시 별내동에 위치한 평화의 씨앗은 ‘친정집’, ‘사랑방’ 개념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동안 서울 청림동에서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쉼터를 운영해 온 수도회는 사목 환경의 변화와 지역 재개발 등으로 방향을 다시 논의한 끝에 북한이탈주민 거주 지역 안에서 센터 형식으로 사목을 펼치기로 결정, 2022년 문을 열었다. 쉼터는 하나원에서 나온 북한이탈주민이 3개월간 머물도록 하는 단기적인 역할을 했지만, 센터 개념으로 확장하며 다양한 역할을 통해 장기적으로 동반할 수 있게 됐다.

공동체 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있다. 그동안 관계를 맺었던 북한이탈주민 20여 명은 수시로 공동체를 방문한다. 특히 임대 주택에 거주하고는 있지만, 육체적,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이들은 공동체를 방문해 소소한 이야기와 음식을 나누면서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가고 있다.

분원장 진 마리앙즈 수녀는 “북한이탈주민 중 상당수가 우울증 등 심리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고, 스스로 고립된 생활을 하는 이들이 많다”며 “이곳을 방문해 서로 소통하면서 그런 아픔이 차츰 치유되는 모습을 본다”고 말했다. 심각한 경우에는 전문 상담사와도 연결해주고, 교육 등 필요한 부분을 지원하기도 한다. 시간이 맞으면 문화행사도 같이 하고 북한 접견 지역을 방문해 그리움을 달래기도 한다. 조만간 제주도 여행도 같이 가기로 했다. 함께 거주하지는 않지만, 삶을 동반하는 차원이다.

진 수녀는 “우선적으로는 남한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게 공동체의 바람이고, 시간이 흘러 남북이 오고 갈 수 있는 날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고향을 방문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박민규 기자 mk@cpbc.co.kr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3-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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