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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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에 생명 불어넣는 도예, 제 손은 거들뿐

[타인의 삶] (13) 도예가 김정옥(데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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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옥 작가가 자신의 작업실 계단에 기대어 미소를 짓고 있다.



도자기는 흙과 불의 마술로 탄생한다. 흙으로 빚어 만든 형태가 열을 잘 견뎌야 비로소 도자기가 완성된다. 이렇게 만든 도자기에는 생명이 깃들어 있다.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만드는 사람의 생각과 감정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다양한 삶의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는 ‘타인의 삶’. 도자기에 생명을 불어넣는 도예가 김정옥(데레사, 수원교구 미리내본당) 작가를 만났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도예가와의 첫 만남

“미리내성지 가는 길에 왼쪽에 보면 미리내예술인마을이 있거든요. 오셔서 전화 주시면 나가 있을게요.” 김정옥 작가를 만나러 주말 아침 미리내성지로 갔다. 주말 아침에다 겨울이라 그런지 미리내성지로 가는 길은 한산했다. 미리내성지를 5분여 남겨놓고 왼쪽에 ‘미리내예술인마을’이라고 쓰인 작은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좁은 시골 길을 따라 얼마간 들어가 산자락에 자리 잡은 마을에 닿았다. 미리내예술인마을에는 모두 11가구가 산다. 작가가 사는 곳이 5가구, 나머지는 예술이 좋아 이곳에 모여든 사람들이다. 마을에 도착해 김 작가의 집을 찾았다. 집 주소를 알고 있었음에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찾던 중 항아리들이 시선을 끌었다. 굴뚝에는 연기가 피어났다. ‘저곳이지 않을까.’ 잠시 생각하다 마을 안내도를 보는데 김 작가가 마중을 나왔다. 짧은 머리에 흰색과 검은색 줄무늬 티셔츠, 흰색 바지에 빨간 운동화까지. 패션 감각이 남달랐다. 김 작가를 따라 그의 작업실로 들어갔다.



도자기가 태어나는 곳

도예가의 작업실다웠다. 입구에는 김 작가의 선간판이 기자를 맞이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장식장이 나타났다. 장식장에는 김 작가가 만든 그릇과 주전자, 컵, 찻잔, 그릇과 찻잔 받침 등 생활용품 도자기들이 가득했다. 작업실을 짓는 데는 나무를 주로 사용했다. 그 덕에 노란 색깔의 내부와 어우러져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작업실 한쪽에는 도자기를 굽는 가마가, 나무 계단으로 이어지는 2층에는 김 작가의 사무공간이 있었다.

작업실 한 가운에 있는 화목 난로 옆에 김 작가와 마주 앉았다. 김 작가가 차를 내어왔다. “머리가 맑아지는 차입니다.” ‘찻잔과 찻잔 받침도 직접 만들었느냐’는 질문에 김 작가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침에는 6시나 7시쯤 일어납니다. 미리내성지 근처에 유무상통이라고 실버타운이 있는데 아침저녁으로 삼종 소리가 들리거든요. 아침에는 기도를 해요. 주변에 아프거나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요. 또 주님의 뜻대로 제가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가 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작업실에는 오전 9시쯤 내려옵니다. 오후 5시 정도까지 작업하고요.” ‘하루를 어떻게 보내느냐’는 질문에 김 작가가 답했다.


▲ 김정옥 작가가 물레를 돌려 흙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다.




처음부터 정해진 도예가의 길

김 작가는 어려서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았다. “언젠가 제 초등학교 생활기록부를 봤거든요. 장래희망에 예술가, 미술교사 이렇게 적혀 있더라고요. 지금 도예가로 살고 있으니까 꿈이 실현됐다고나 할까요. 항상 그 언저리에 있었던 것 같아요.” 김 작가는 대학에 들어가 공예과에서 도자기를 전공했다. 흙이 가진 물성과 흙으로 만든 것을 불로 구웠을 때 변화하는 모습에 큰 매력을 느꼈다. 김 작가는 “흙이라는 것은 불로 구웠을 때 의도치 않은 것도 나올 수 있고 생각과는 반대로 나올 수도 있다”며 “정말 창조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맛볼 기회가 다른 재료보다 좀 더 큰 것 같아 도자기를 선택했다. 생각을 진실하게 옮겨줄 수 있는 재료가 흙이 아닌가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저는 예술가로서 특별한 재능은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그런 재능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니까 저에게는 성실함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꾸준히 하면 그런 특별함이 나한테 주어지지 않을까’ 생각해서 성실하게 작업하는 편입니다.” 김 작가는 40년 넘게 도예가의 길을 걷고 있다. 40년 넘게 한 길을 걸을 수 있는 힘이 과연 성실함에서만 나올까.



신앙이 키워준 꿈

김 작가는 유아세례를 받았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모든 생활의 중심이 신앙이었다. 그에게 신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신앙은 의심 없이 받아들였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 추억을 보면 대부분이 성당과 관련이 있어요. 재의 수요일에 금식 후 먹는 밥 냄새라든지, 부활절 달걀을 준비하며 깨진 달걀을 며칠 동안 먹었던 기억도 나고요. 어머니가 참외를 좋아하시는데 성모 승천 대축일이면 항상 참외를 많이 사시거나 떡을 하셔서 나누셨어요. 그런 기억이 많이 나죠.”

하지만 그보다 신앙은 작가로서 그의 꿈을 키워주는 데 큰 영향을 줬다. “제대 위의 초, 금속으로 된 성합, 신부님들이 전례 때마다 입는 제의 같은 것들이죠. 특히, 제의를 보면 빨간색, 초록색 등 색깔에 금실, 은실로 돼 있잖아요. 이런 것들을 통해 어려서부터 완벽한 색상과 디자인을 본 거죠. 제가 수준이 있는 미감을 가지게 된 것은 신앙이 큰 도움이 된 거죠. 감사한 일입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작업

김 작가는 “작업이라는 것 자체가 늘 주님과 함께하는 것”이라고 고백했다. “작업할 때 가마에 불을 때는데 제가 불을 때긴 하지만 거기에서 나오는 결과는 제가 관여할 수 없는 부분이 더 많거든요. 그래서 작업하는 것 자체가 주님과 이야기하는 시간인 것 같아요. 제 역량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는 주님의 힘도 빌리고요. 저 혼자 해결하려면 어려운데 그냥 주님께 의지하고 맡기면 어떻게든 해결해주시더라고요.” 김 작가는 “신앙이 없었으면 지금까지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 생각한다”며 “저는 주님하고 특정 문제에 있어서만 대화를 한 것이었는데 주님은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생각하고 계신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는 주님의 이끄심으로 어떠한 불편 없이 여기까지 왔지만, 항상 주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주님 안에서 제 주위의 모든 것이 평화롭게 이뤄질 수 있도록 기도하겠다”고 했다.

김 작가에게 ‘도자기는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도자기는 선물이죠. 도자기를 통해서 주님을 만났고 도자기를 통해 많은 사람도 만났거든요. 그래서 저에게 도자기는 선물인 거죠.” 김 작가는 도예가의 길을 걸으려는 예비 작가들, 도예가의 길을 걷고 있는 후배 작가들에게도 마음을 전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면 좋겠어요.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은 사람을 믿는 것이고, 또 주님을 믿는 것이기도 하거든요. 그러면 주변도 보이고 자기 자신도 보일 겁니다. 자기 자신을 북돋우며 가는 거죠.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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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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