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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에 성스러운 풍요를 담아주는 공간

[김광현 교수의 성당 건축 이야기] 7. 과르디니 신부와 건축가 슈바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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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돌프 슈바르츠, 로텐펠스 성 소성당, 1928년. 출처=Wikimedia Commons

▲ 루돌프 슈바르츠, 로텐펠스 성 기사 홀, 1928년. 출처=szakralis

▲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 출처=Katholische Akademie in Bayern

▲ 건축가 루돌프 슈바르츠. 출처=archinform





성당의 공간이 전례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쉽고도 깊게 말해 주는 중요한 책이 있다. 그것은 로마노 과르디니(Romano Guardini, 1885~1968) 신부의 「미사, 제대로 드리기」와 「거룩한 표징」이다. 로마노 과르디니는 신학자이자 전례학자며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가톨릭 지성인 중 한 사람이다.



거룩한 식탁

그런 그가 ‘왜 성당이라는 지정된 곳에서 하느님을 뵈어야 하는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은 사람의 집 안에도 체험할 수 있고 대자연과 꽃을 통해서도 체험할 수 있다. 그러나 참하느님은 이런 체험이 전제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하느님께서는 자연 또는 개인의 공간이 아닌 지정된 곳에서만 그분의 신비를 거행하신다. 여기에서 ‘지정된 곳’이란 바로 성당이라는 건물이다.”

왜 그런가? 주님을 기념하는 행위는 건물로 정해진 자리, 곧 제단에서 거행된다. 제단은 이쪽에서 저쪽으로 경계를 넘어 새로운 곳으로 넘어가는 문지방이다. 체험하는 자연과 꽃의 아름다움 속에도 개인의 집에도 이런 문지방은 없다. “이리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탈출 3, 5)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는 사람이 거룩한 곳으로부터 내쫓기는 체험을 하는 곳이 제단이라는 장소라고 했다. 이런 내쫓기는 체험을 해야 사람은 비로소 자기가 그저 사람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제단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그래서 우리가 그분과 함께 앉게 되는 거룩한 식탁이다. 이렇게 하느님의 신비가 거행되는 문지방이자 거룩한 식탁인 제단이 지정된 곳, 그곳이 바로 성당이다.

그런데 우리의 몸은 성당이라는 공간 안에서 무의식적으로 반응한다.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는 「거룩한 표징」에서 이렇게 말했다. “성당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려는 때, 곧 문지방을 넘을 때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머리와 눈을 들고 올려다본다.’ 성당의 거대한 내부 공간을 살필 때 ‘마음은 넓어지고 벅차오른다.’ 벽은 그냥 벽이 아니다. 내부를 감싸는 벽의 거대한 폭과 천장의 높이는 ‘무한과 영원을 비유한다.’ 성당은 하느님의 거처를 모방한 것이기 때문이다. 성당이라는 건물보다야 밖에 있는 산이 물질적으로 훨씬 높고 하늘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뻗어 있다.’ 밖의 공간은 ‘구속도 안 받고 형상도 없다.’ 그렇지만 성당은 곳곳이 하느님의 관점에서 형성되고 모양을 따르도록 설계되어 따로 마련되었다. 성당도 건물이니 벽과 지붕으로 구속받고 그것은 형상을 갖춘다. 그러나 ‘기둥이 있는 통로는 길고, 벽은 넓고 견고하며, 아치와 볼트로 만들어진 지붕은 높다. 바로 이런 기둥과 벽과 지붕이 길고 높고 넓은 하느님의 집이며, 그분이 숨어 현존하시는 자리임을 확신시켜 준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가 알고 느껴야 할 소중한 표현이다.



반원형으로 제대를 둘러싸다

독일 가톨릭 청년 운동이었던 ‘크빅보른 운동(Bund Quickborn)’은 뷔르츠부르크 북쪽에 세워진 로텐펠스 성(Burg Rothenfels)을 소유하며 그곳에 본부를 두고 있었다. 이 성의 책임자가 된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는 이곳을 작가, 예술가, 신학자들이 현대 사회생활에 관한 생각을 교환하는 종교, 문화, 교육의 중심지이자 전례 운동의 실험장으로 만들어 20세기 전례 쇄신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때 과르디니 신부는 젊은 건축가 루돌프 슈바르츠(Rudolf Schwarz, 1905~1994)와 이미 1920년대 초부터 교류하고 있었다. 슈바르츠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재건, 특히 라인란트와 그 너머 지역의 많은 성당을 설계한 중심인물이다. 과르디니 신부는 1928년 슈바르츠를 불러 로텐펠스 성의 여러 시설을 개수하게 했다. 그리고 이곳에 모이는 신자들이 제대를 둘러싸며 미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했다.

전례학자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와 건축가 루돌프 슈바르츠 두 사람은 협력하며 소성당을 다시 설계했다. 루돌프 슈바르츠는 하얗게 마감한 벽에 고딕 리바이벌의 제대가 여전히 붙어 있었지만, 학생들은 그 주위를 반원형으로 에워싸며 모였다. ‘기사의 홀’이라는 다른 방에서는 간단히 움직일 수 있는 의자를 발굽 형으로 배치하고, 나머지 변에는 움직일 수 있는 제대를 두며, 사제는 제대 뒤에 서서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간단히 의자 배치 정도로 보이겠지만, 이것은 전례 쇄신 운동이 공간과 함께 널리 퍼지는 계기가 되었다.



성당 중심에 계신 주님

루돌프 슈바르츠는 훗날 「성당 건축으로부터」(Vom Bau der Kirche, 영역은 The Church Incarnate 육화된 성당)라는 책을 썼는데, 그것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로 이어진 전례 개혁을 정의하는 많은 생각이 들어 있다. 그는 건축가로서 가장 단순한 성당의 공간과 전례를 이렇게 말했다. 먼저 성당은 주님 만찬을 거행하는 곳이다. 그러려면 우선 적당하게 큰 방이 있어야 한다. 그 방의 중심에는 식탁이 놓인다. 식탁 위에는 빵 그릇과 포도주잔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 주변에는 초가 있다. 그다음에 회중이 둘러싼다. 회중이 둘러싸려면 그들을 위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공간을 다시 벽이 에워싼다. 그래서 가장 단순한 성당은 식탁, 공간, 벽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이보다도 더 중요한 공간의 원형은 성합과 성작이다. 가장 고귀한 주님의 몸과 피가 그 안에 있다. 그것을 성합과 성작의 벽이 에워싼다. 성작은 고요한 단순하다. 그리고 필요한 속이 빈 형태로 완성된다. 이것이 성당의 첫 번째 형태다. 과르디니가 슈바르츠에게 제일 처음 부탁한 것은 성작이었는데, 이는 아마도 성합과 성작이 성당의 공간적 원형이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슈바르츠는 그 성작을 자신의 첫 번째 성당이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하여 가장 단순한 성당은 성체와 성혈 → 성합과 성작 → 그것을 감싸는 제대 → 제대를 둘러싸는 회중 → 회중을 감싸는 공간 → 그 공간을 감싸는 벽과 지붕. 이렇게 성당은 구성된다.

루돌프 슈바르츠는 그의 책 「성당 건축으로부터」의 ‘첫 번째 평면-거룩한 내향성’에 싹이 겉껍질과 씨앗 안에 숨어 있듯이, 제대는 둥근 볼트와 돔 안에 있는 다이어그램을 함께 실었다. 평면의 굵은 선은 벽면이고, 단면의 굵은 선은 돔이다. 단면도에는 제대 위에 성합과 성작이 조그맣게 그려져 있다. 둘이나 셋이 주님 이름으로 모인 한가운데 계시겠다고 약속하셨듯이, 주님은 중심에 계신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은 고리로 연결되어 큰 원을 그린다.

그러나 이 구조물 전체는 제대에서 나온다. 빛도 제대에서 나온다. 제대 위의 초가 중심에서 방사하여 저 벽과 천장 끝까지 도달하는 살아 있는 빛을 비출 때 거룩한 신비가 공간에 스며들고, 백성은 그 신비 안에 깊이 덮여 있다. 그래서 루돌프 슈바르츠는 “공간은 성스러운 풍요”라고 말했다. 성당에서 전례는 공간에 깊은 의미를 주고, 공간은 전례에 ‘성스러운 풍요’를 담아준다. 이렇게 과르디니 신부는 전례로 공간을 말했고, 슈바르츠는 공간으로 전례를 말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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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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