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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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신앙체험수기] 대상 /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황지수(헬레나, 대전교구 태평동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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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문채현



이 글은

하느님을 알게 되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았던

제 아들 조은재 라파엘과

엄마 황지수 헬레나의 이야기입니다.



“엄마, 나도 빨리 첫영성체 하고 형들처럼 복사하고 싶어요. 성당에 알아보세요! 언제 시작하는건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제 아들 라파엘은 늘 저를 들들 볶았습니다. 성당에 가서 첫영성체 해야 한다고. 그래야 미사 때 복사를 설 수 있다고, 꼭 복사를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큰 아이와 6살 차이가 나는 작은아이는 제가 일을 해서 둘 다 친정집에서 컸습니다. 아이들은 성당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다녔고 자연스레 어려서부터 작은 신앙을 싹 틔우게 되었습니다. 큰아이는 미카엘라, 작은아이는 라파엘입니다. 라파엘이 5살 때, 12월 갑자기 코피가 났습니다. 그리고는 몸에 바늘로 콕콕 찍은 것처럼 자반이 올라오더니, 멍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서울 대학병원으로 가 봤더니 형제가 있느냐고 골수검사를 해야 한다고 그랬습니다.

두 달쯤 후에 주일 어느 날 코피가 나더니 계속 쿨럭대며 피를 토하는 어린 라파엘을 부여안고, 대전에서 서울까지 119를 타고 달렸습니다. “엄마, 고마웠어.” 코피를 뚝뚝 흘리더니 그 어린 입에서 핏덩어리를 토하고 몸이 축 늘어졌습니다. 너무 놀라서 아이를 끌어안았더니 라파엘이 힘없이 저를 보며 했던 말이었습니다. ‘살려 주세요. 얘가 갑자기 왜 이럴까요? 제발 살려 주세요. 살려만 주시면 뭐든 다 하겠습니다. 살려주세요.’

하느님께서 간절한 제 기도를 들어주셨는지 피를 토해서 입고 있던 옷이 시뻘겋게 물들여졌던 라파엘은 다음날 외래를 잡고 누나와 조혈모세포이식(골수이식)을 진행했습니다. 다행히 일치율이 95 이상으로 이식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딸아이에 너무 큰 짐을 지게 해서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지만 창백하다 못해 시퍼레져 가는 아이의 얼굴에 분홍빛 혈색이 올라와 기뻤습니다. 그리고 1년 정도 대전에서 서울로 일주일에 한 두어 번씩 통원치료를 했습니다.

이식 후 담당 교수님의 만류에도 저는 라파엘을 일반 학교에 입학시켰습니다. 그리고 3학년 봄, 첫영성체를 꼭 받아야 한다고 노래 부르는 아이를 데리고 저는 근처 성당에 갔습니다. 성당 마당에 아이 손을 잡고 들어서는데 자비하신 예수님과 마당 한켠에 계신 성모님이 우리를 반겨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먼 길을 떠났다가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온 탕자처럼 저도 아주 먼 길을 돌아온 느낌이었습니다.

한 달여 교리가 끝나고 꿈에 그리던 첫영성체를 하는 날입니다. 11명의 천사 같은 아이들이 많은 축하를 받았습니다. 낯선 성당, 낯선 사람들, 그 안에서 라파엘과 저는 둘만의 조촐한 축하를 하며 어서 복사 교육을 받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라파엘은 한껏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엄마, 나도 준성이 형처럼 복사 열심히 해서 복사단장도 할 거야!!”

하루는 복사 교육을 하시는 막내 수녀님께 전화를 받았습니다. “라파엘 어머니, 라파엘은 복사 교육을 내년에 하면 어떨까요?” 울컥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수녀님 말씀 알아요. 저도 라파엘이 부족한 거 아는데요. 아이가 너무 복사가 하고 싶다고 그래서 첫영성체도 받으러 온 거예요. 어떻게 안 될까요?”

사실 라파엘은 틱장애로 보이는 눈 깜빡임과 킁킁 소리를 내며, 가만히 있지 못하는 그런 상태였습니다, 아이에게 어떻게 안 된다는 말을 할 수 있을지. 앞이 캄캄했습니다. 다행히 교리를 지도하셨던 둘째 수녀님께서 아시고 복사 서는 데 문제가 없다고 라파엘의 복사 입단을 허가해주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3학년부터 6학년 때까지 라파엘은 ‘땜빵 복사’였습니다. 혹시라도 복사가 펑크나면 무조건 달려가서 미사에 복사를 서는 겁니다. 미사 시간보다 한 시간쯤 전부터 성당에 가서 수녀님 주위를 어슬렁대며 눈치 보다가 혹시나 기회만 생기면 부리나케 제의실로 들어갑니다. 학교에서 자기 꿈에 대해 발표를 하라고 숙제를 받은 라파엘이 신부님을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근데 은재야 신부님 하려면 이왕이면 로마 가서 유학도 하고 그래서 가톨릭 신학대학교에서 교수 신부님 하면 좋겠다.” “엄마, 신부님은 그러는 거 아니야. 난 시골의 아주 작은 성당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는 그런 신부님이 될 거야!” 5학년 남자아이가 하는 말 치곤 작은 목소리에 힘이 있었습니다.

어느 주일 진산성지에서 성지개발을 위한 기금 모금을 하러 신부님께서 미사를 하러 오셨습니다. 미사가 거의 끝날 무렵 라파엘은 제 옆으로 다가와 앉더니, 펜과 후원서를 보고만 있는 저를 꾹 찌르는 거예요. “엄마, 후원하라자나. 빨리 써. 천주교 신자들한테 중요한거래.” 아들의 성화에 큰 금액은 아니어도 기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 일러스트=문채현



라파엘은 성당을 제 집으로 알고 살다시피 했습니다. 방학이면 학사님들을 손꼽아 기다리며 토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성당에서 살았습니다. 어려운 이웃, 아픈 친구를 보면 보살펴주고 형편이 안 좋은 친구가 있으면 반드시 도와주려는 고운 마음씨를 가진 멋진 아이입니다. 라파엘에게는 큰 숙제가 있었습니다. 아빠가 세례를 받지 못한 겁니다. 예비자 교리반을 모집한다고만 하면 빨리 등록하라고, 자기 신학교 갈 때 문제가 될 거라고 아빠를 닦달했습니다.

복사복을 입고 두 손을 모으고 제단 위 신부님 옆에 서 있을 때, 라파엘은 정말 빛이 났습니다. 하루는 제 핸드폰을 달라며 뭔가 열심히 만지작거리더니 ‘라파엘’이라고 자기 이름을 바꿔 놓은 것이었습니다. “나도 ‘라파엘’이라고 불러줘. 내 친구는 엄마가 ‘요한’이라고 부른단 말야.”

모태신앙인 저는 식사 전 기도만 외웠지 식사 후 기도는 외우지도 못했고, 사실 식사 때 기도하는 일도 거의 없었습니다. 라파엘은 식탁에 앉으면 자랑스럽게 십자성호를 그으며 “엄마 기도해야지! 근데 엄마 식사 후 기도 알아?” “나 때는 식사 전 기도만 했다.” “엄마 식사 후 기도 꼭 해야 하는 거래. 따라 해봐. 전능하신….” 잘 외워지지 않았습니다. 라파엘은 식사 후 기도를 크게 인쇄해서 식탁 옆 벽에 붙여 놓았습니다. 관심이 덜 가서 그런지 기억력이 쇠퇴한 건지 정말 안 외워졌습니다. 성물방 앞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습니다. 묵주반지, 묵주 팔찌, 촛대, 또 ‘천주교 신자의 집’ 문패. 이 문패를 사오더니 빨리 현관문에 붙이라고 성화입니다.

라파엘이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라파엘과 남편이 세종으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라파엘은 더운 여름에도, 추운 겨울에도 한 시간여를 버스를 타고 빠짐없이 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주말이 라파엘과 제가 만나는 시간입니다. 그것도 성당에서.

라파엘은 키도 크고 체격도 좋아서 어린이 복사복이 맞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는 수 없이 성인 복사복을 빌려 입어야 했습니다. 본당 수녀님들께서 라파엘한테 복사복을 맞춰주라고 하느님께서 주신 돈 같다 하시면서 수제 요거트 판매대금을 선뜻 주셨습니다. 주임신부님께서는 손기술 좋으신 미카엘 신부님께 부탁해주셔서 아이 치수에 맞게 맞춤으로 지어주셨습니다. 복사복을 가봉 하기 위해 오신 신부님께서는 라파엘에게 입혀보시고는 “이 옷은 우리 신부들 수단하고 거의 똑같이 만들었다. 잘 맞는 거 같네. 신부님이 나중에 너 꼭 신부님 되라고 기도하면서 바느질했다. 알았지?” 그렇게 라파엘은 개인 복사복을 입는 유일한 아이가 되었습니다.

라파엘은 중 2가 되면서 새로 오신 보좌신부님을 쫓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예비신학생 모임을 줌으로 시작했대요. 예신요.” 라파엘의 간청에 라파엘은 우리 성당의 유일한 예신이 되었습니다. 고등학생인 친한 형을 꾀어서 고등부 예신도 만들고, 한 주는 중등부 예신반, 한 주는 고등부 예신반에 참여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예신에서 내준 숙제가 있다며 묵주기도 하는 사진도 찍어 올리고 나름 열심히 준비하는 것 같았습니다. 원래는 예신 모임이 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함께 모이지 못한다고 서운해 하면서 교구청에 가서 함께 모일 그 날만을 기다렸습니다. 예신 소식지 ‘작은 예수’에 자기 사진이 나왔다고 무슨 상장이나 된 듯 어찌나 자랑하던지…. 주일학교에서도 동생들을 보면 복사단에 들어오라고, 복사가 부족하다며 그렇게 동생들에게 말하고 다녔습니다.

어느 날 코피도 자주 나고 몸에 멍도 자꾸 생긴다고 걱정하며 체력이 받쳐주지 않는다고 해서 서울대학병원에 다시 가보자고 했습니다. 8년 만에 다시 찾아간 대학병원. 채혈검사를 한 결과 다시 조혈모세포이식을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골수가 양쪽 다 텅텅 비어 있다고. 2021년 9월 열다섯 라파엘은 바로 이식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 12월 19일은 우리 성당 두 분의 새 신부님이 서품을 받고 첫 미사를 하는 날이었고 제가 손님 신부님들의 도시락을 담당했습니다. “주님, 어찌 해야 합니까? 방법이 없어요. 주님!”

그런데 누가 계획하기라도 한 것처럼 서울대병원 교수진에게서 코로나19 확진이 나왔고 그로 인해 아이의 이식 일정은 갑자기 2주 미뤄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새 신부님 첫 미사를 준비해드릴 수 있었고, 다행히 일정이 미뤄져 라파엘은 그토록 원하던 주님 성탄 대축일 미사에 향을 치는 복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꼭 향을 치고 싶다고. 간절히 원하던 아이의 바람대로 라파엘은 정성스레 향을 치며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늠름하게 맨 앞에서 향을 치며 복사단을 이끌고 성전으로 들어가는 라파엘은 엄마인 제 눈에는 꼭 천상군단의 대장 같았습니다. “주님 저 아이에게 은총을 내려 주세요!”

입원하기 전날도 라파엘은 고해성사를 본다기에 물어봤습니다. “왜 그렇게 고해성사를 자주 보니.” 아이는 “고해성사는 내 몸이 깨끗해지는 거야! 성사는 자주 봐야 해” 그러는 겁니다. 감사를 느낍니다. 이 아이를 키우면서, 꼭 작은 예수님을 보여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2022년 1월 2일 입원을 했고 항암치료를 시작하면서 라파엘은 음식을 먹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무균실에서 누나로부터 조혈모세포이식을 잘 마쳤고, 생착이 잘되어 남들보다도 일찍 일반실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라파엘은 병원에서 정말 눈물 날 정도로 아프고 불쌍한 아이들을 많이 보았다고 했습니다. 많이 힘든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고 자기는 가장 복 받은 사람이라고 느꼈다고, 그리고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고 말했습니다.

입원한 지 3주쯤 됐을 때 하루는 힘없는 목소리로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누가 날 위해서 기도해줄까? 다들 날 잊는 거 같아. 친구들도 연락이 없고….” 병원생활에 지쳐가는 아이에게 미안했습니다.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라는 생활성가를 보내줬습니다.

일반실로 나온 다음 날, 간 수치가 약간 불안하다는 의료진의 판단에 간생검을 하기로 했습니다. 간생검을 하기 전 라파엘과 통화했습니다. 무섭다는 아이에게 저는 하느님께서 함께해 주시는데 뭐가 문제냐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처럼 다 잘 될 거라고…. “엄마, 늦게라도 꼭 와.” 코로나19로 병원은 전혀 면회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서 빨리 퇴원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키가 180㎝인 사내 녀석이 맘이 너무 여려서 이참에 강하게 훈련시켜야겠다고 맘먹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어서 빨리 병원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서울로 갔습니다. 검사를 받으러 들어간 라파엘은 검사 후 심한 내부 출혈로 세 번의 심정지가 왔고 새벽 1시에 남편과 제가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를 힘겹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 겁니까? 아이를 본 저는 아무 말도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기가 막혀서 어떤 생각도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저 누워있는 내 아들 라파엘이 놀랄까 봐, 무서워할까 봐 소리를 내 울지도 못했습니다. 그냥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그냥 무턱대고 손가락을 세며 성모송을 바쳤습니다. ‘하느님 살려주세요. 하느님 살려주세요.’ 중환자실 앞 대기실에서 기도는 시작됐고, 미친듯이 성모송만 외워댔습니다.

사실 저는 묵주기도를 외우지 못했습니다. 묵주기도는 성모님을 통해 전구를 청하는 기도인데, 너무 급하니까 직접 주님과 담판을 지어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인분들이 서로에게 라파엘의 기도를 청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분도수도회 수녀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라파엘이 천국에 가 있는 것 같아요. 큰 기둥들이 있는 큰 궁전 여기저기를 구경하고 다니는 걸 봤어요. 너무 좋아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어서 우리 기도해요, 더 크게 키워 더 봉헌하겠다고. 저희들도 기도하니까 어머니도 열심히 기도하세요.” “틀렸구나!! 정말 얘가 천국을 봤다면 내려올 리가 없어. 어쩌지?”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났고 중환자실에 들어간 지 14일 되는 금요일 아침 아이는 갑자기 상황이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라파엘은 병자성사를 받고 연기처럼 홀연히 하느님 곁으로 갔습니다. 코와 입에서 호흡기를 떼고 난 후 너무 환하게 웃던 그 평안한 마지막 라파엘의 미소를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좋으냐? 예수님 만나서 그렇게 좋아?”

아이를 데리고 대전으로 내려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슬퍼해 주었습니다. 한결같이 “라파엘은 천사같은 아이였어요. 너무 착했거든요”라고 말했습니다. ‘이 아이는 천사였나 보다. 하느님이 내게 보내주신 천사! ’

▲ 일러스트=문채현


장례 미사를 주임신부님께 부탁드렸습니다. 라파엘이 가장 좋아했던 곳, 그곳에서 라파엘을 보내주고 싶다고. 마지막 가는 길을 어떻게 해야 하나? 제일 좋은 옷으로 제일 잘해서 보내주고 싶은데.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신부님께서 수녀님께 연락해주셔서 라파엘에게 잘 다려진 하얀 복사복을 입혔습니다.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강론을 하시지도 못하고 울기만 하셨던 주임신부님을 보며 함께 있었던 신자들도 눈물바다를 이루었고, 꽃을 피우지도 못한 채 모두의 가슴 속에 진한 향기를 남긴 라파엘은 2월 11일 세계 병자의 날에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하얀 국화꽃으로 가득 뒤 덮여 있는 라파엘을 보면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저는 그냥 서 있었습니다. 복사복 입고 성당을 뛰어다니던 라파엘은 그렇게 짧은 생을 마쳤습니다.

‘작은 예수님.’ 비록 짧은 15년이었지만 라파엘을 통해 주님께서 저에게 당신을, 당신의 말씀을 보여주신 것 같았습니다.

일주일 뒤 그렇게도 가고 싶어 하던 예신 대전충남지구 예비 신학생 감사 미사가 교구청에서 봉헌되었고, 미사 때 소식을 들으신 주교님께서 라파엘을 지향에 두고 기도해주셨다고 합니다.

“주님 제게 왜 이러십니까? 제발 제 아들 돌려주세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를 벌하시지 이 착한 아이에게 왜 그러시는 겁니까? 퇴원하면 가족과 함께 외식하고 싶단 아이를, 가족과 함께 여행 가자는 아이를, 신학교 가서 신부가 되고 싶다는 아이를, 살겠다고 제 발로 걸어 들어간 아이를 어떻게 이렇게 만들어 놓으실 수가 있으신가요!”

몇날 며칠을 잠도 오지 않고 눈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넋이 나가서 침대에 누워만 있었습니다. 해가 뜨는 것도 싫고, 밤이 되는 것도 싫었습니다. 아들을 먼저 보낸 못난 엄마가 숨을 쉬는 것도, 또 내일이 온다는 것도 싫었습니다.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미친 듯이 마셔 보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아이를 따라갈 수 있을까만 생각했습니다. 저 베란다를 열고 뛰어내리면 라파엘을 만나러 갈 수 있지 않을까? 누워있다가도 아이의 그 말이 떠올랐습니다.

‘엄마, 누가 날 위해서 기도해줄까?’

이런 때 신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신은 없다고…. 이런 아이를, 이렇게 착하디착한 천사 같은 아이를 살려주지 않는 신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런 때 도움도 되지 않는 신에게 무엇 때문에 매달리고 의지하고 기도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됐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저는 주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내 아이는 내 옆이 아니라 주님 옆에 가 있을텐데. 내가 한 번이라도 더 기도해야 내 아들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잘 챙겨주시지 않을까?

서둘러 라파엘이 마지막까지 기도했던 작은 기도책상에 멍하니 앉아 묵주를 잡았습니다. “혹시라도 주님, 혹시라도 바쁘셔서 라파엘을 놓치신 거라면 주님 좋아서 주님 옆으로 간 라파엘 잘 데리고 계셔 주세요. 주님이 좋다고 “예”하고 따라갔을 거예요. 바보같이….”

장례 미사 후 성당에 가기가 싫었습니다. 한 발자국도 움직이기 싫었습니다. 하느님이 너무 미운데, 지금 내가 미사에 가야 하나? 라파엘이 없는 그곳에 나 혼자 어떻게 가지?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성당에 못 가겠는데…. 갑자기 미사에 가지 않으면 라파엘이 더 속상해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성당에 가도 라파엘이 서운해 할 것 같았습니다. 하는 수없이 고민 끝에 용기를 내서 어두운 새벽 주일 미사에 갔습니다. 제일 뒤에 앉아 계속 울었습니다. 울고 또 울고.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니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께서 저를 쳐다보고 계셨습니다.

“주님, 주님!” 마음속으로 외쳐댔습니다. 다들 성당에 나온 저를 구경하는 것 같았습니다. 미사가 끝나자 자매님들이 제게 와서 절 감싸 안아주시며 또 함께 울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어린아이가 안타까워서, 그리고 그 어미의 애간장 녹는 남은 삶이 불쌍해서 울었던 것 같습니다.

“신부님 도대체 왜 꼭 이 아이여야 했을까요? 주님이 정말 실수하신 겁니다. 얘는 아니라고요.” 걱정되어 전화해 주신 신부님께 미친 듯 외쳤습니다. “자매님, 주님은 실수하시는 분이 아니에요. 분명히 어떤 뜻이 있으셨을 거예요.” 뜻? 무슨 뜻? 왜 그 뜻이 여기 지금 나에게 내 아들에게 일어나야 하는 건데요? 어느 부모가 자식을 앞세우고 밥을 먹을 수 있고, 잠을 잘 수 있겠습니까. 아이에 대한 미안함, 죄스러움으로 세상에서 가장 못나고 부족한 무능력한 부모가 눈을 뜨고 숨을 쉬고 있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지요. 온통 죽을 방법만 찾고 있었습니다.

라파엘은 분명 의료사고입니다. 날이 지날수록 의문이 꼬리를 물고 물어 괴롭기만 했습니다. 의료분쟁조정위원회에 소송을 신청했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아야겠어서요. 살겠다고 제 발로 찾아 들어간 병원에서 애를 저렇게 만들어 놓고 지들은 발 뻗고 잘 수 있나?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여 있다는 병원 안에서…. 그래 일이 생겼다고 보자. 그럼 그것도 못 고치나? 그 대단하다는 의사 놈들은 다 뭘 하고 있었던 거야!!

꿈을 꾸었습니다. 의사처럼 보이는 낯선 사람이 제 앞에서 고개도 들지 못하고 용서를 구하고 저는 또 그를 용서하고 있는 겁니다. 누군지 아마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는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해주라는 건가?

사순 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성체조배를 하자고 신부님께서 제안하셨습니다. 30분의 고요한 침묵은 가슴에 담아두었던 검은 핏덩어리들과 돌덩어리들을 내 속에서 조금씩 끌어내 주는 것 같았습니다. 깜깜한 성전에 앉아 있으면서 라파엘과 얘기도 해보고 싶었고, 주님께 정말 꼭 듣고 싶었습니다. 누가 이렇게 만든 건지 알려주시라고.

3월 바람은 아직 매서웠지만 내 아들이 떠나간 걸 알지 못하는 이 날씨는 벌써 봄으로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신부님께서 잠시 보자고 하셔서 1층 현관으로 갔더니 차에 타라고 하셨습니다. 한 시간쯤 차를 타고 간 것 같은데, 도착한 곳은 성거산성지였습니다. 성지는 높기도 했고 넓기도 했습니다. 한참을 올라가 줄무덤이 있는 곳에 이르러 신부님께서는 한참을 기도하셨습니다. 방에서 울고만 지내던 저는 오랜만의 바깥바람에 마음이 시원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곳이 다 있네요. 처음 와 봐요.” 생각해보니 라파엘과의 약속이 떠올랐습니다. 나중에 산티아고에 함께 가자고 했던 약속, 진산성지에 자기 이름 쓰여 있나 보러 가자고 했던 약속. ‘나중은 없는 거다. 지금이지. 라파엘을 가슴에 안고 성지순례를 다녀보자,’

성지순례 책자를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곳부터 일주일에 한 곳씩 성지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수리치골성지, 공세리성당, 멍에목성지, 나바위성지, 붉은 동백 꽃길이 인상적이었던 치명자산성지. 성지에 가면 그곳의 유래와 성지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으며 경당에 앉아 기도했습니다. “내 아들 라파엘이 내게 이런 시간을 만들어 주는구나! 고맙다. 아들.” 라파엘과 함께 다니는 성지순례 길은 한 군데 한 군데를 더 할 때마다 제게 뭔지 모를 힘이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은 솔뫼성지다! 내 아들과 함께 왔었던 곳. 이곳은 좀 더 특별한 느낌이었습니다. 함께 걷던 소나무길, 작은 소성전에 들어가니 저쪽에서 조배하던 라파엘이 보이는 것만 같았습니다. 성전을 따라 잔잔히 흐르는 물길을 보니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성물방에 가서 제 미사보를 골라주던 일, 자기와 눈이 닮았다는 김대건 신부님 액자를 사던 일 하나하나가 어제 일처럼 눈에 선합니다. 새로 지어진 대성전을 우리 라파엘은 못 봤었는데….

큰 광장을 가로질러 대성전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고요한 온기가 저를 품어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제일 앞줄에 앉아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 뒤로 김대건 신부님의 일대기를 표현해 놓은 스테인드 글라스가 있었습니다. 수많은 작은 촘촘한 별들. 지금까지 제가 다녀온 많은 성지의 순교자들은 오직 주님이 좋아서 주님만 바라보다 주님을 따라서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별이 되어 우리를 지켜주고 있겠지요. 아! 그럼 우리 라파엘도 저기 있겠네? 그 아이야말로 주님이 좋아서 주님만 바라보며 살다 주님이 부르셔서 얼른 따라간 것 같은데 말이지요.

눈물이 또 흘러내렸습니다. 마음 저 깊은 곳에서 뜨거움이 콸콸 솟아올랐습니다. ‘정말 다행이다. 분명 라파엘은 저 별들 속에 있어. 성인성녀 순교자들과 함께, 주님 곁에 있을 거야.’ 흘러내린 그 뜨거움은 그동안 걱정을 씻어내 주는 안도의 눈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라파엘, 아까 봤지? 솔뫼성당 새로 지은 대성전. 너무 멋진 그림이더라. 그리고 거기에서 엄마는 널 보았다. 이제야 걱정이 좀 놓인다.”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라파엘과 저의 성지순례는 계속 이어집니다. 어느새 성지순례책자에 도장이 하나 둘 늘었고 오늘도 저는 라파엘을 가슴에 안고 가야 할 성지를 찾아봅니다. 라파엘에게 해주지 못했던 시간을 라파엘이 떠나고 난 뒤에라도 함께 할 수 있게 해주심에 감사드리며, 언젠가부터 저는 웃기도 하고, 사람들과 농담도 하며 시린 가슴을 달래봅니다. 가슴이 뛰기 시작하면서 숨을 쉬기가 어려워지고 그럼 약을 먹어야 그나마 뛰는 가슴이 좀 가라앉습니다. 성당 자매님들이 제게 조심스럽게 다가와 말씀을 하십니다. “그래도 좀 나아진 것 같네. 다행이다.” 거울을 보니 시커먼 얼굴빛에 퀭한 눈, 굳어버린 얼굴. 제가 봐도 무서운 얼굴이 앞에 있었습니다. 천천히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웃기도 하고 얘기도 하고, 얼굴빛도 제 색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저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들이 모여 수요일 저녁 생활성가단이 시작되었습니다. 라파엘이 좋아했던 생활성가들을 부르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노래가 마음을 치유한다고 하더니 가사 하나하나가 다 내 얘기 같고, 라파엘 얘기 같았습니다. ‘마니피캇’이라고 단명을 정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연습합니다. 5월 성모의 밤에 8명의 마니피캇은 성모님께 ‘꽃’ 노래를 봉헌했습니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게 무척 어려웠지만 이 친구들이 저의 손 잡아주고 일으켜 세워주었습니다. 행사 날, 성전 끝에 서서 신자들 사이에 서서 씨익 웃고 있는 라파엘을 본 것 같습니다.

“우리 엄마, 잘하네!”

라파엘의 누나 미카엘라는 작년 9월부터 주일학교 교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교리교사가 없다고 누나에게 해보라고 꼬드겨서 시작하게 되었는데, 미사가 끝나면 집에 와서 주일학교 활동과 아이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이 선합니다. 미카엘라는 지금까지도 쭉 교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라파엘을 보내고 3주쯤 됐을 때 꿈을 꾸었습니다. 파란 풀밭에 시냇물이 졸졸졸 흐르고 너무도 조용한 시골. 시냇물 위로 작은 다리가 있었는데 저 반대편에 한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다리를 건너갔습니다. 그랬더니 제게 갈색 책을 주는 겁니다. 아무 말도 없이 전 그 책을 받아들고 다시 다리를 건너왔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따뜻한 햇살 아래로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와 남자아이 둘이 풀밭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책을 받아들고 우리 성당으로 와서 신자들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깼습니다. 바오로딸 서점에 가서 꿈에서 보았던 그 색깔의 성경을 샀습니다. ‘성경을 읽으라고 그러는가 보다!’

어느 한 자매님이 제게 레지오 마리애에 들어와 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하셨습니다. 기도 군대라 불리는 말로만 듣던 레지오. 해보겠다는 맘으로 ‘순결하신 어머니’에 입단하게 되었고, 제가 처음 레지오 마리애에 가던 날, 아홉 분의 단원들은 저를 그냥 따뜻하게 안아 주셨습니다. 레지오 마리애 입단식을 하고 책을 받았습니다. 낯익은 책.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때 꿈속에서 보았던 갈색 책! 그거 같습니다.

지금 저는 항상 레지오 책을 지니고 다닙니다. 매일 까떼나를 바치고, 묵주기도를 하고, 그러면 나도 모를 힘이 생깁니다. 슬퍼서 울 때도, 라파엘 따라서 가고 싶단 나쁜 생각이 들 때도, 내 아들이 너무 보고 싶어 가슴이 찢어질 때도, 그때마다 묵주기도를 바칩니다. 이제는 묵주기도를 다 외웠습니다.

성지순례를 다니며 성지에 있는 피에타상을 보면서 아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봐야만 했던 성모님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병원 중환자실 앞에서 아무것도 못 하고 아들의 고통을 지켜보고 있었던 그때의 내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셔서 내려진 아들을 안고 우신 성모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 호흡기를 거두고 난 뒤 내 앞에서 생을 마감한 내 아들을 봤을 때가 떠오릅니다. 성모님은 그 찢어질 듯한 고통을 어떻게 참고 버텨내셨는지. 작은 성당의 복음을 전하는 신부가 되고 싶어 했던 내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으려면 라파엘의 뜻을 함께해 나가야 하겠구나 싶습니다.

저는 요즘 주변의 자매들에게 말해봅니다. “레지오 들어 와보는 거 어때?” “아직요. 지금은 좀 바빠서요.” 사람들은 지금이 바로 그때인걸 아직 모릅니다. 저도 그땐 몰랐습니다. 라파엘을 보내기 전까지는 세상의 부와 명예만을 위하여 사는 데 급급했습니다. 좀 더 좋은 차, 좀 더 큰 아파트, 내 아이에게 필요한 가장 좋은 것들. 그게 다 인줄로만 알았습니다. 성당에 매일미사가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라파엘을 보내고 난 후 성당에 와보니 많은 신자들이 매일매일 주님을 만나러 오고 있었습니다. “엄마 정말 뭐가 중요한지 몰라”라고 말했던 라파엘이 제게 알려주고 싶었던 게 이거였을까? 성당에 앉아 생각해 봅니다.

기도하면 할수록 쓰러져 있는 저를 일으켜 줍니다. 단단히 붙잡아 줍니다. 너무 마음이 아프면 묵주를 꺼냅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도 묵주 알을 굴리며 묵상해봅니다.

삶과 죽음은 하나이기에 우리 모두는 그곳을 향해 가고 있는데 어서 잘 준비해야지. 오늘 밤에라도 주님 오셔서 가자고 하시면 나도 ‘네’하고 얼른 따라 나설 수 있도록 준비해야지.

저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얼마 전 10ㆍ29 참사를 보면서 저와 같은 참척의 슬픔을 겪는 그 유가족들이 제 눈에 보였습니다. 내가 많은 이들에게 큰 위로를 받은 만큼 나도 너무나도 힘든 저들을 위해 기도해줘야겠다! 그게 내가 할 일인 것 같네….

얼마 전 주임신부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큰 기적만을 일으키시는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1년여 동안 자매님을 보니 자매님을 위해 함께 걱정해주고, 위로해주고, 기도해 주시는 많은 예수님이 여기 계셨네요.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보았어요.”



“엄마, 누가 날 위해 기도해줄까?”

“라파엘! 너를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여기 있단다. 그리고 지금도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할거란다. 사랑한다.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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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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