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 구절: 루카 19,1-10 예수님과 자캐오
■ 청할 은총: 예수님을 보다 더 잘 알고, 더 많이 사랑하고, 마음을 다하여 따르고자 하는 열망을 가질 수 있는 은총을 청합니다.
■ 기도 요점:
1. 자캐오라는 이름의 뜻은 ‘청결한 사람’이라는 의미이지만, 이름의 뜻과는 달리 죄인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봅니다. 예리코는 국경 도시였기 때문에 여기서는 세관원들이 부유하게 잘 살 수 있었는데, 이렇게 잘 사는 세관장인 자캐오가 무엇이 아쉬워서 예수님을 보려고 애를 썼을까요? 그것은 자캐오가 예수님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면 무엇이 그로 하여금 예수님께 관심을 갖게 만들었을까를 숙고해봅니다.
2. 자캐오가 예수님을 만나려고 했다는 것은 적어도 그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조금은 알고 있었고, 무엇에 대하여 말하는 사람인지도 알고 있었으며, 그러한 것들이 자캐오에게 관심을 끌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어떠한 점이 자캐오에게 관심을 끌었을까를 숙고해봅니다.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던 갈망이 있었기에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려는 내적인 움직임 때문에 예수님에게 끌렸고 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3. 자캐오가 예수님을 만날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예수님이 예리코에 오신다는 소식을 접하자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뛰어가지만, 군중이 많아 볼 수조차 없었던 것은 키가 작아서였습니다. 기회가 왔고 작은 키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나무 위로 올라가게 됩니다. 자캐오처럼 나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가로막는 장애물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 숙고해봅니다.
4. 세관장이 나무 위로 올라간 것은 자신의 체면을 생각하지 않은 채 오로지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더 중요했다는 것입니다. ‘체면을 알되 그 체면이 예수님을 만나는 데는 아무 영향을 끼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무 위로 올라간 이 이상한 행동 때문에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입니다. 사회적 계급적 편견으로부터 해방되어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만나는 데 있어서 가로막고 있는 선입견이나 편견에 대해 숙고해봅니다.
5. 이제 나는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을 상상해보고 예수님께서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5절)하시며 내 이름을 부르시고 그분이 내 집에 머물기를 요구하실 때 나는 어떻게 느끼며 응답할지 숙고해봅니다.
6. 자캐오는 예수님의 말씀(5절)에 ‘예수님을 내면으로 받아들임’으로 인해 그의 마음이 이웃에게 열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8절)라는 실천적인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자캐오의 마음이 열렸고 진정으로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맞아들임에 있었음을 숙고해봅니다.
7. 내가 돌무화과나무에서 내려와서 예수님과 함께 우리 집으로 가면서, 나는 예수님께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을까를 자캐오의 마음과 비교해보면서 숙고해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과 더욱 의미 있는 지속적인 관계를 잘 맺기 위해 그분께 나의 희망과 계획을 말씀드리고 그분의 말씀을 들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