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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 公所] (8)춘천교구 스무숲본당 실레마을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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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교구 스무숲본당 실레마을공소는 고 장익 주교의 관심으로 다시 고쳐져 아름다운 외경과 소성당을 갖춘 공소가 되었다.

▲ 실레마을공소 내부. 바닥은 안정감을 주는 원목으로 꾸며져 있고, 제대와 감실, 독경대, 십자가는 김겸순 수녀의 작품이다.

▲ 제단 중앙에 설치된 이콘 십자가. 김겸순 수녀의 작품이다.




아름다운 성미술로 꾸며진 소박한 공소



춘천교구 스무숲본당 실레마을공소는 46번 국도를 타고 강촌에서 춘천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금병의숙길 10 현지에 자리한 실레마을공소의 옛 이름은 신남공소이다.



동네 지형에서 따온 마을 이름

조선 시대 춘천의 남쪽을 ‘남부내면(南府內面)’이라 불렀다. 일제 강점기인 1914년 ‘신남면’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939년 지금의 동내면과 통합돼 두 면(面)의 앞글자를 따서 ‘신동면’이 됐다. 신동면 증리(甑里)는 「소낙비」 「동백꽃」으로 유명한 소설가 김유정(1908~1937)의 고향이다. 증리는 한자음 그대로 마을 모양이 마치 산에 묻힌 옴팍한 시루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실레’는 시루를 부르는 이 지역 사투리이다. 2004년 12월 신남역이 ‘김유정역’으로 바뀌면서 신남 증리 동네 이름도 ‘실레마을’로 부르고 있다.

실레마을은 경춘선 김유정역뿐 아니라 동서로 46번 국도가, 남북으로 70번 지방도가 관통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마을은 삼악산과 금병산, 드름산, 사자산 등으로 둘러싸여 있고, 인근 의암리에는 북한강이 흐르고 있다. 마을 동쪽에는 사계절 모든 풍광이 비단 병풍처럼 아름다운 ‘금병산’(錦屛山)이 있다. 해발 651.6m인 금병산은 임진왜란 때 강원도 조방장(助防將) 원호 장군이 진을 친 산이라 해서 ‘진병산(陳兵山)’으로도 불린다. 오늘날 실레마을은 김유정 문학촌으로 단장돼 있다.

마을 이름이 바뀌었으니 공소도 당연히 새 이름을 갖게 됐다. ‘실레마을공소’이다. 1960년 7월 7일에 공소가 설립됐다. 처음에는 춘천교구 죽림동 주교좌 성당 관할이었다가 1969년부터 효자동본당에 속했으며, 2002년 9월부터 스무숲본당으로 편입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한때 공소 신자 수가 300여 명에 이를 때가 있었다고 한다. 6ㆍ25 전쟁 후 성당을 통해 구호물자가 한창 보급될 때였다. 지금은 지역 신자가 3명뿐이라 한다.



공소지기 주교

실레마을공소는 제6대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ㆍ제7대 춘천교구장 김운회 주교와 떼래야 뗄 수 없는 곳이다. 두 분 주교 모두 교구장 퇴임 후 실레마을 공소 주교관에서 거주했고, 또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레마을공소는 2009년 다시 고쳐져 지금에 이른다. 공소 안팎은 아름다운 성미술품으로 꾸며졌다. 공소 입구 앞마당에는 김미영(마리비타, 툿찡포교베네딕도수녀회 서울수녀원) 수녀의 ‘성모자상’이, 공소 안에는 김겸순(테레시타, 노틀담수녀회) 수녀의 ‘제대’ㆍ‘독경대’ㆍ‘감실’ㆍ‘십자가 ’ㆍ‘십자가의 길’, 김형주(이멜다) 화백의 ‘성모자화’가 설치돼 있다. 공소 내·외벽은 사계절 모든 자연의 빛과 각양각색의 인품을 모두 흠뻑 머금을 수 있도록 흰색 페인트로 마감돼 있다. 공소 안 제단과 회중석, 바닥은 안정감을 주는 원목으로 꾸며져 있다. 성미술을 통해 성경의 의미를 더욱 널리 전해지기를 원했던 장익 주교의 평소 뜻이 담긴 공간이다.

장익 주교는 2010년 퇴임 후 2020년 8월 5일 선종할 때까지 실레마을공소 주교관에서 살았다. 장 주교는 이곳에서 기도와 묵상, 독서를 하고, 텃밭을 가꾸며 소소한 일상을 살면서 자신의 삶 전체를 크나큰 주님의 은총으로 여겼다. 장 주교는 생전 “잘 먹고 잘 놀면서 아주 잘 지내고 있어요. 조용한 걸 좋아해서 공소생활이 딱 맞아요”라고 행복해했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유언도 “나 무엇으로 주님께 갚으리오? 내게 베푸신 그 모든 은혜를. 구원의 잔을 들고서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네”(시편 116,12-13)라는 찬가였다.

장익 주교의 후임인 김운회 주교도 2020년 12월 교구장 퇴임 후 실레마을공소 주교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김운회 주교는 ‘충실한 공소지기’이다. 매일 아침 7시면 공소 미사를 주례한다. 겨울이면 주교관 기도 방에서 매일 같은 시각 미사를 봉헌한다. 지역 내 신자가 3명뿐이지만 신기하게도 미사 참여자는 10여 명 안팎이다. 주변 신자들이 새벽같이 달려오고 있다. 김 주교는 또 공소를 찾는 신자나 여행자들이 연락하면 공소 문도 열어주고 안내도 한다. 텃밭도 가꾸고 과실수도 심어 키우고 있다.

김 주교는 “산을 좋아해서 평소 산 밑에 사는 사람들을 항상 부러워했는데 지금 내가 그렇게 살고 있다”며 “둘레길을 산책하면서 묵상하고 공소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행복하다”고 만족해했다. 김 주교는 “사목 일선에서 물러난 사목자들이 기력이 다하기 전까지 공소에서 한 10여 년간 신자들과 함께 살았으면 참 좋겠다”라며 공소살이를 추천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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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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