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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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 네가 어디에 있든 평화와 안식 속에 있길 기도한다”

[사순, 기억과 희망] (1) 10·29 참사 유가족 신정섭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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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는 인터뷰 중 여러 차례 눈물을 참았다. 고 신애진씨의 부친 신정섭씨는 “딸아이가 비록 육신은 함께 있지 못하지만, 어디에 있든지 평안과 안식 속에 있길 간절히 기도한다”며 “사고의 진실이 반드시 규명되길 간절히 희망한다”고 밝혔다.




누구에게나 고통은 있다. 존재 자체가 고통이라는 말도 있다. 그럼에도 신앙인들은 지극한 인간애로 인류를 위해 고통과 수난을 겪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바라보며 구원의 힘을 얻는다. 각자가 지닌 아픔의 기억을 나누고, 그들이 말하는 희망에 기도로 동반하고자 사순 시기 동안 ‘기억과 희망’의 여정을 연재한다.



“애진아, 너에게도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어디 있는지 몰라서 말을 할 수가 없네. 네가 이 시간 속에 있는지도 몰라서 새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아빠, 올해는 씩씩해져 볼게. 애진아, 새해 인사는 하지 못해도 사랑한다는 말은 전할게.”(10ㆍ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신애진씨 부친 신정섭씨의 1월 1일 자 일기 중에서)

신정섭(53)ㆍ김남희(데레사, 49)씨 부부의 생각과 시간은 작년 10월 29일에 멈춰있다. 사고 후 딸은 사랑하는 가족과 대화를 나눌 수도, 아빠와 엄마의 물음에 답할 수도 없다. 하지만 신씨 부부는 딸과 함께 갔던 여행지를 다시 찾아가 기도하고, 추억을 되새기면서 딸과 눈물로 대화를 나누며 지내고 있다. 아빠 신씨는 참사 발생 꼭 110일째 되던 14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딸이 곁에 있는 듯 이야기하며 눈물을 꾹꾹 참았다. “애진아, 네가 지금은 여기 없어도 너는 내 딸이고, 내가 너의 아빠라는 우리 관계는 영원해.”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는 슬픔의 때인 사순 시기. 신씨 부부는 아들 예수의 탄생과 죽음을 곁에서 지켜본 성모 마리아의 심정으로 지내고 있다고 했다.


▲ 신애진씨가 생전 촬영한 모습. 신정섭씨 제공



너는 내 장한 내 딸이야

애진씨는 꽃다운 25살이었다. 대학에서 생명공학과 경영학을 복수 전공하고, 지난해 졸업 후 9월에 바로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 취직한 꿈많고 의젓한 청년이자 장한 딸이었다. 무슨 일이든 아빠 엄마와 이야기 나누길 좋아했고, 가족 여행도 자주 다녔다. 신씨는 “애진이는 어릴 때부터 주도적으로 자기 계획을 세우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해내는 딸이었다”면서 “모든 선택은 아이 스스로 하도록 가르쳤고, 이런저런 세상일들에 관심이 많던 아이였다”고 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불과 한 달여가 되던 10월 29일. 핼러윈 데이로 많은 젊은이가 들뜬 분위기를 즐기던 그 날 애진씨는 회사 동료들과 이태원에서 모임을 한다고 갔었다. 얼마 후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여보, 애진이가 실종됐어.” 신씨는 당시 업무차 제주도 출장 중이었다. 부랴부랴 새벽 첫 비행기를 타고 올라왔고, 부부는 꼬박 12시간 동안 10여 곳의 병원을 헤매다 다음날 오후 3시가 되어서야 딸의 죽음을 알게 됐다. 사고 후 유가족 대부분이 고통 속에 겪은 ‘잃어버린 12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저 아이가 살아있기만 바라면서 병원이며 체육관, 경찰서를 정신없이 다녔어요. 저희가 가장 궁금한 부분 중에 하나가 이 12시간의 상황들입니다. 아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 왜 그 병원에 이송됐는지에 대해서는 가족으로서 알아야죠. 하지만 아직 명확한 설명은 듣지 못했습니다.”

허망하게 가버린 영정 사진 속 딸을 조문하고자 빈소에는 애진씨의 친구와 선후배만 1000여 명이 다녀갔다.


▲ 신애진씨가 생전 아빠와 제주도 여행을 다녀와서 올린 SNS 사진. 애진씨는 “어릴 땐 둘이 여행 진짜 많이 다녔는데 단 둘이 여행은 고등학교 때 이후로 처음인 거 같당. 넘 좋았어!”라고 썼다. 신정섭씨 제공



여행지와 성지, 성당에서 만나는 딸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흘려도 흘려도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군 복무 중 소식을 접한 남동생도 크나큰 슬픔에 잠겼다. 신씨는 2월 5일 자 일기에 “이제 겨우 100일이 지났는데 아빠는 이미 평생 흘린 눈물보다 수백 배는 더 쏟았다”고 썼다. 부부는 국회 국정 조사 기간엔 참관인으로, 분향소에선 상주로 겨울을 보냈다. 희생자 49재에 이어 참사 100일 행진에도 참석했다. 분향소를 지키는 동안에는 수많은 시민이 대신 눈물을 흘려줬고, 미사 등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시간으로 100여 일이 흘렀다. 그러나 유가족들이 바라는 진상 규명보다 온갖 정쟁과 왜곡된 여론이 이들의 마음을 두 번 할퀴었다.

신씨가 아프면 아내가 달래고, 아내가 쓰러지면 남편이 손을 잡아줬다. 그리고 부부는 매일 3~4시간씩 걸었다. 부부는 12월 어느 날 딸 애진씨와 4년 전 여행했던 태국 치앙마이를 찾아갔다. 아내는 딸과 찍었던 장소를 바로 찾아냈고, 남편은 딸 대신 아내를 찍어줬다. 신씨는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후 부부는 성지 순례도 시작했다. 아내 김씨는 일에 치여 사느라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 했다. 남편 신씨도 신앙이 없이 지내온 터였다. 그래도 어린 시절 외할머니 손을 잡고 성당을 다녔던 딸은 사고 후 ⑴화세(火洗)를 받고 떠났다. 생전 “엄마, 내가 세례받으면 가브리엘로 할 거야”라고 했던 약속을 지켜줬다. 독실한 신자인 외할머니는 신씨 부부에게 성지순례 책자를 건네줬다.

신씨는 “제가 신자가 아니라서 감히 주님께 구원을 청하진 못하고, 대신 성모 마리아님께 우리 애진이가 살면서 느꼈던 고통을 다 던지고 그저 평안과 안식에 이르게 해달라고 전구를 청하는 기도를 드리고 있다”면서 “신부님들께서 미사 중에 희생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셔서 감사했고, 우연히 들렀던 전주 전동성당에서 희생자들의 영원한 안식을 지향으로 미사 해주셔서 큰 위로를 받기도 했다”고 했다.



하늘로 띄우는 일기

신씨는 매일 아침 일어나 펜을 들고 일기를 쓴다. 딸과의 기억을 되살린다는 것이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동반하지만, 신씨는 “우리 아이와의 기억, 지금의 생각들을 가능하면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기록해둬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세월이 흘러 애진이를 다시 만나러 갈 때 일기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든다”고 했다.

남편 신씨는 인터뷰 내내 극도의 상실감과 우울감에 지내는 아내를 대신해 이야기했다. 남편의 마음이 곧 아내의 생각이고, 아빠가 느끼는 슬픔이 엄마의 고통과 같기 때문이다.

“100일이 지나서 그제야 ‘아, 우리 아이가 이태원 골목에서 158명의 다른 아이들과 함께 떠났구나’하는 현실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아이를 보낼 수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애진이와 함께 살 것이고, 우리 아이가 품었던 꿈, 누리지 못했던 삶들, 그리고 마음을 공유하며 살아갈 겁니다. 유난히 추웠던 올겨울 내내 많은 분이 분향소를 찾아와 꽃과 음료수도 놓아주시고, 아이들을 바라봐주셔서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 같은 참사의 고통이 저희에서 끝나길 바랍니다. 몇 년이 걸리든 진실이 규명되길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제가 한 말을 딸아이가 당장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톨릭평화신문이 천국에도 배달된다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부부는 딸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애진아, 아빠ㆍ엄마는 네가 어디에 있든지 평안과 안식 속에 있길 기도한다. 우리가 너와 함께 남은 생을 열심히 살게. 꼭 다시 만나자. 네가 못 알아본다면 우리가 꼭 너를 알아볼게. 열심히 기도하고 노력할게. 사랑해.”

(1)화세(火洗): 세례성사를 받지 않은 사람이 세례를 받겠다는 뜨거운 열성을 가지고 있을 경우, 그 염원이 명시적으로 표현되었든 표현되지 않았든 간에 그 염원으로 받는 세례.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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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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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7장 56절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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