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셉을 공경하며 성인의 덕을 기억하고 본받는 ‘성 요셉 성월’. 신앙선조들은 언제부터 성 요셉 성월을 지냈을까. 선조들이 이 성월에 요셉 성인의 삶을 어떻게 묵상하고 덕행을 기렸는지 한역서학서 「성약슬성월」을 토대로 알아본다.
요셉 성인과 함께해 온 신앙선조들
중국 북경교구에 속해 있었던 조선 천주교회 신자들은 북경교구의 주보인 성 요셉을 주보로 모시며 자연스럽게 성인을 향한 신심을 갖게 됐다. 1831년 북경교구에서 조선대목구가 분리, 설정되고, 1841년에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을 한국교회 공동 수호자로 모시며 요셉에 대한 신심은 더 두터워졌다.
박해시대 때부터 신자들이 사용한 기도서 「천주성교공과」에는 ‘성 요셉께 드리는 경’, ‘성 요셉 도문’, ‘성 요셉 찬미경’, ‘성 요셉 송’ 등 요셉 성인 관련 기도문이 많다. 모두 요셉 성인의 덕행을 상세히 읊고 찬미하는 내용으로, 선조들이 늘 성인께 기도하고 덕행을 본받으려 했다는 방증이다. 선조들의 신심수양서 「천당직로」에는 “잠에서 깨거든 ‘예수, 마리아, 요셉’을 불러야” 한다고 적혀 있을 만큼 요셉은 선조들의 신앙 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보편교회가 성 요셉 성월을 지내기 시작한 것은 1840년대다. 중국에서 선교하던 브뤼에르 신부가 1862년 저술한 「중국대주보성약슬성월」(中國大主保聖若瑟聖月)이 1887년에 우리말 「성요셉성월」로 간행됐다. 책에는 성 요셉 성월에 지켜야 하는 규례와 성인의 행적에 대한 묵상, 묵상 후 마땅히 해야 할 덕행과 기도가 31일 분량으로 수록돼 있다. 비슷한 내용으로 우리나라에 전래된 또 다른 신심서는 북경교구장 드라플라스 주교가 1872년에 저술한 「성약슬성월」(聖若瑟聖月)이다. 책의 전래 시기는 알 수 없다. 다만 주교의 저서가 한글 필사본 「요셉셩월」1·2권으로 남아있고 이를 신자들이 널리 읽었다고 알려진다.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조한건(프란치스코) 신부는 “한국교회는 1880년대부터 성 요셉 성월을 정식으로 지냈다고 볼 수 있다”며 “이 책들이 우리말로 번역된 것은 성월이 한국교회에 전해지고 성인에 대한 신심이 더욱 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우리 선조들이 새로운 전례력의 변화를 따르며 매일 책을 읽고 철저히 기도생활을 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성 요셉 성월 묵상 도운 「성약슬성월」
드라플라스 주교의 「성약슬성월」을 2021년 우리말로 번역한 유은희 수녀(체칠리아·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는 “19세기 말 신자들이 성 요셉 성월을 신실하게 지내는데 이 책의 도움을 많이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책은 요셉 성인의 덕행을 한 달 동안 31가지 주제로 자세히 묵상하도록 인도하고 그날 주제에 따라 본받아야 할 덕행을 제시한다. ‘명을 듣고 원망하지 않음’, ‘기도로 고난을 극복함’, ‘자기 선을 드러내지 않음’, ‘본분에 부지런하게 최선을 다함’ 등 요셉의 삶에서 본받을 태도를 일상과 연결 짓고 구체적으로 실천하도록 도왔다.
묵상은 요셉 성인이 가진 내면의 덕과 외적 조건에 주로 초점을 두고 있다. 성모님을 향한 요셉 성인의 거룩한 사랑, 어린 예수의 아버지로서 자세, 성가정의 가장으로서 면모 등 요셉 성인의 성덕을 발견할 수 있는 모습이 묵상글 속에 자세히 나와 있다.
요셉 성인은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 앞에서도 침묵하며 하느님 뜻을 헤아리고 묵묵히 따랐다. 신자들은 침묵의 표양인 요셉을 따라 일상에서 침묵의 도를 닦고 하느님 뜻에 순명하기를 청했고, 성인께 마음을 봉헌하며 ‘내적 닦음’을 수행할 수 있도록 기도했다.
“요셉 성인은 세상에서 일상의 일을 하셨고 직업도 비천하였으며, 오랫동안 힘들게 노동하셨다. 성인은 세상에서 비천하고 곤궁한 것이 너와 같았으며, 거친 음식과 옷이 너와 같았고, 세파에 시달리며 분주함도 너와 같았다.”(「성약슬성월」 중)
신앙선조들은 요셉의 외적 조건인 가난과 노동에 대해 많이 묵상했을 것으로 보인다. 땀 흘려 일한 요셉 성인의 모습이 묵상 주제로 자주 주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요셉이 구세주를 양육하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었지만 하느님 계획에 협력하려 본분을 다한 것’과 ‘평생 목수로 살면서도 가난을 부끄러워하거나 노동을 비천하다고 여기지 않았음’을 강조하며 신자들이 자신의 업을 비천하다고 여기지 말 것을 일깨운다. 가난했던 신자들에게 성인의 삶은 위로가 되고 근검과 겸손의 표양이 됐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유 수녀는 “「성약슬성월」은 성경의 행간에 숨은 성인의 덕행을 우리 삶의 자리로 이끌어 낸다”며 “선조들은 요셉 성인을 일상의 성인처럼 가까이 느끼며 그 덕행을 충실히 기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염지유 기자 gu@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