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주(가명, 마리아)씨의 아들 지호(가명, 레오)씨는 3살 때 자폐 진단을 받았다. 조씨는 당시를 회상했다. “지금은 이혼했지만, 남편의 폭력이 심했어요. 여느 아이 같지 않게 엄마가 맞는 모습을 보고 웃고 있더라고요. 그때 알았죠. 우리 아이가 조금은 다르다는 걸요.”
조씨의 집안 곳곳에는 자물쇠가 달려있다. 현관문 전자 잠금장치는 수명을 다한 듯 겨우 붙어 있고, 벽지는 반 이상이 없다. 모두 아들이 물건을 던지고 부수거나 했던 돌발행동의 결과다. “그래도 괜찮아. 넌 내 아들이니까.”
그러나 조씨는 요즘 도통 잠을 이루지 못한다. 투병하던 암은 낫지를 않고, 세월마저 속절없이 흐른다. ‘내 한 몸이 세상에서 없어져도 상관없지만, 남아있는 아들은 어쩌나.’ 홀로 흘리는 눈물은 마를 새가 없다. 정부는 2021년 탈시설 로드맵을 통해 20년간 장애인 거주시설을 없애겠다는 방침이라, 지호씨와 같은 입소 대기자만 늘어가고 있다.
시설보다 중요한 장애인의 인권과 행복
2011년 국회는 장애인거주시설(이하 시설) 한 곳당 정원을 30명을 초과할 수 없도록 장애인복지법을 개정했다.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의 '2022년 장애인 복지시설 일람표'를 보면, 발달장애인이 이용하는 24시간 시설 중 단기시설과 영유아시설을 제외한 559곳의 정원은 2만 4534명이다. 그러나 시설들이 개정된 법에 따라 수용 인원을 줄여나가면서 실제 이용 인원은 정원보다 2761명이나 줄어든 2만 1773명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에 따르면, 2021년 시설 입소 적격 판정을 받았지만, 입소하지 못한 발달장애인은 전국에서 692명이다.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이 조사한 '시설 수기 명부에 작성된 대기자 현황'에서는 시설 입소 대기자 수가 5년 만에 4배가량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수많은 대기자를 포용할 신규 시설 확충은 시급한데, 이마저도 탈시설 로드맵에 따라 허용되지 않아 부모들은 사면초가를 겪고 있다.
전국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 김현아(딤프나, 인천교구 청수본당) 대표는 “장애 가정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으로 갈 곳을 잃은 발달장애인이 정신병원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한탄했다.
이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는 즉각 입장문을 발표해 반대했다. “중증 발달장애인과 최중증 장애인에 대한 돌봄과 보호의 책임을 결과적으로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전가한다”는 게 그 이유다. 그러나 교회가 반대하는 것은 복지부가 발표한 탈시설 로드맵이지 ‘탈시설화’가 아니다.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총무 이기수 신부는 “어디서 살든, 어떤 모습으로 살든 가장 중요한 것은 장애인의 행복”이라며 “이들에게 주거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등은 9일 국회에서 ‘장애인 거주시설의 합리적 운영방안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열고, 탈시설화의 올바른 방향에 관해 논의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개별화’에 주목했다.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정형외과 박문석 교수는 ‘맞춤형 복지 서비스’를 제안했다. 지체장애인과 뇌 병변으로 인해 장애를 앓는 발달장애인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현재 장애 정도에 대한 고려는 ‘심한 장애’와 ‘심하지 않은 장애’로 이분화돼 있지만, 장애의 유형과 경증은 더욱 다양해 이에 따른 제도 대응이 이뤄져야 한다”며 “자립이나 경제활동이 가능한 이들에게 차별받지 않는 지역사회 환경 조성이나 경제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면, 자립이 불가능한 이들에겐 안전과 돌봄 시스템이 갖춰진 요양시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현실에 맞는 법안 제정 과정에서 의료 전문가의 의견이 반영되길 바란다”고 제언했다.
‘2021년 발달장애인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일상생활의 모든 부분에서 도움이 필요한 발달장애인은 전체 25만여 명 가운데 22.5나 된다. 발달장애인 5명 중 1명은 일상생활을 하기 위해선 타인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뜻이다.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발달장애인도 약 20에 불과했다. 발달장애인의 71.4는 부모를 비롯한 가족 등에 의해 의사결정을 하고 있었다.
장애인 생애 주기에 맞는 돌봄 필요
복지 선진국으로 불리는 오스트리아에서도 장애인 관련 전문가들이 방한해 국회에서 발표했다. 카리타스 비엔나에서 활동 중인 한스 드 베츠 사회복지사는 “오스트리아에서도 탈시설화는 50년간 이어지고 있다”며 “시설을 닫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 관련 시설 및 기관들과 공동으로 나아가는 정책인 만큼 상당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는 탈시설화가 취지에 맞게 올바르게 이뤄지는지 통제할 수 있어야 하며, 관리·감독하는 별도의 기구 또한 필요하다”고 말했다.
카리타스 비엔나의 피터 슈미트 총괄본부장도 “오스트리아에서 장애인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관점은 사회적 포용”이라며 “장애인이 자신만의 취미, 휴식 등을 누릴 수 있도록 충분한 공간을 제공해야 하며, 동시에 사회에서 고립되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 활동도 지원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스트리아에는 1~2인용부터 최대 16명까지 장애인들이 거주할 수 있는 시설들이 있다. 돌봄 서비스도 제공되는데, 중증 장애인 3명이 사는 곳에는 돌봄 인력이 12명이나 된다. 장애인은 주거지를 선택할 수 있으며, 모두 지역사회 안에 있다.
대구대교구 중증 장애인 시설인 민들레공동체 원장 이병훈 신부는 “장애인의 생애 주기에 맞는 요양서비스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0년 기준 발달장애인에 속하는 자폐성·지적장애인의 평균 수명은 각각 23.8세와 55.9세로 비장애인(83.5세)에 비해 현저히 낮다. 조기 노화에 따른 합병증 때문이다. 이에 대한 요양서비스는 본래 장애인거주시설의 옛 이름인 장애인요양시설에서 제공했었다.
그러나 2011년 갑작스럽게 장애인복지시설 사업안내 지침이 개정되면서 중증장애인요양시설이 거주시설로 변경됐고, 의료장비에 대한 지원이 끊기는 등 요양 기능이 사라졌다. 지금은 이러한 노인성 질환을 치료받으려면 노인요양원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 마저도 비장애인의 생애주기에 맞춰져 있어 60대에나 입소가 가능하다.
우리 사회에서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자녀가 노화해 일찍 늙고 병들어가는 모습을 손 놓고 지켜봐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 신부는 “다양한 장애 유형을 인정하고 중증장애인요양시설로 전환해 이들의 삶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선회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