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본당마다 청년 미사 참례자와 청년 봉사자들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는 것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었지만 코로나19 이후로 감소세는 더 가팔라졌다. 청년들은 왜 교회를 떠나는 것일까. 사회가 말하는 대로 종교에 무관심하고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MZ세대이기 때문일까.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기쁨을 오늘날 청년들도 온전히 누리려면 이들이 가진 믿음이 먼저 부활해야 한다. 침체된 청년들의 신앙이 어떻게 되살아날 수 있을지 청년들과 사목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빈 신앙은 교회를 떠나게 한다
“성당에 오지 않는 친구들이 많아졌어요. 성당 밖에 재밌는 게 많기도 하지만, 친구들은 ‘하느님이 정말 존재하는가’에 대한 답을 못 찾은 듯 보였어요. 진짜 존재하는지 알 수 없는 분을 위해 주일을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인 거죠.” 새내기 대학생 박성준(대건 안드레아·20·수원 월피동본당)씨는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미사 참례를 하지 않는 김누리(베로니카·33·서울 홍은2동본당)씨도 “시간이 없어서 성당에 가지 않는 것보다 미사에서 예수님을 어떻게 느끼고 만나야 하는지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고 신앙 성장을 느끼지 못해 자연히 멀어진 게 더 크다”고 했다.
본지가 만난 냉담 청년 대부분은 의무적으로 성당을 다니다 코로나19까지 겹치며 더는 성당에 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됐다고 했다. 말씀과 교리보다는 활동에 치중하는 교회의 모습에 실망하고, 청년 단체가 신앙이 없는 동호회처럼 변해가고 소위 ‘고인물’이라고 하는 청년들 무리에 배척당해 성당에 가지 않는 청년들도 있었다.
청년들은 교회에서 환대받고 싶다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가 올 1월 실시한 ‘코로나19 시기 신앙과 삶에 관한 설문조사’에서 청년들은 한국교회에서 가장 변해야 할 것으로 ‘권위주의 문화’, ‘사제의 독단적 의사결정 구조’, ‘환대 부족’을 꼽았다. 본지와 인터뷰에서도 활동 중인 청년 과반수가 ‘봉사’라는 이름으로 청년에게 일을 모두 떠맡기는 것이 힘들다고 답했다. 청년들은 “신자로서 봉사는 당연한 일”이라면서도 “기쁜 마음으로 봉사하는 게 아니라 마치 노동력이 착취되는 듯한 마음이 생기는 건 교회가 진지하게 생각할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청년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정해진 규칙에 순응하길 바라는 사제와 수도자의 권위주의도 지적됐다.
무엇보다 청년들은 ‘환대의 공동체’, 청년을 존중하는 교회를 원했다. 청년들은 사제들이 얼굴만 보면 일(봉사) 이야기를 하기보다, 일상의 고민도 들어주고 따스한 관심만 보여줘도 교회에 더 몸담을 마음이 생길 것 같다고 했다. 또래 사목자인 윤상현 신부(비오·서울 성산2동본당 보좌)는 “언론에 MZ세대는 무례하고 개인 시간만 중시하는 것처럼 알려졌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관심사에 맞춘 행사에는 적극 참여하고, 사소하고 따뜻한 관심에도 고마워할 줄 안다”고 했다.
MZ는 종교에 무관심하다? 젊은이들도 영적인 갈증을 느낀다
“교회가 청년을 활동 유지를 위한 ‘인원’이 아니라 돌봄이 필요한 ‘어린양’으로 봐주면 좋겠어요.”
대부분 청년들은 교리와 말씀에 갈증이 있었다. 특히 ‘좋은 강론’에 목말라했다. 좋은 강론만 들어도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게 되고, 한 주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것이 청년들의 공통적 의견이다. 최민수(베로니카·35·서울 세곡동본당)씨는 “일주일 동안 세상 풍파에 시달리다가 주일에 거룩한 한마디를 듣고 싶어 성당에 가는데, 감동도 재미도 없는 강론을 들으면 참 아쉽다”고 했다.
교회의 가르침과 청년들의 실제 삶이 연결되도록 도와주길 바란다는 소망의 목소리도 컸다. ‘교회는 순결을 강조하는데, 만약 못 지켰다면 그 다음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천주교 신자도 타투해도 되는지’, ‘반려동물이 천국에 갈 수 있는지….’ 현실적인 궁금증을 교회에서 해결하지 못한 청년들은 개신교나 미국 가톨릭 영상을 접했다. 청년들은 “짧고 재밌는 영상 등을 활용해 우리가 고민하고 궁금해하는 부분을 공략해서 가르쳐 주면 좋겠다”면서도 “‘천주교는 무게감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가볍게 보이는 시도를 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교회가 변화해가는 청년들의 가치관과 생활상에 발맞춰 ‘젊은 교회’로 변화하면 좋겠다는 의미다.
20년 동안 가톨릭대학교에서 청년들을 만나온 최준규(미카엘) 신부는 “MZ세대도 진실한 관계를 원하고 영적인 갈망이 큰데 양쪽 무엇도 얻지 못하면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 신부는 “성경 말씀으로 청년의 실제 삶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야 한다”면서 “적은 인원을 걱정하기보다 청년이 어려움을 나눌 모임이나 관심사를 겨냥한 소규모 공동체를 여러 개 만들어 시작하면 청년 공동체는 확산된다”고 덧붙였다.
청년 맞춤형 교회에서 찾는 희망
청년이 없다는 교회지만, 청년의 활기가 넘치는 곳도 있다. 의정부교구 청년사목센터 ‘에피파니아’다. 모든 공간이 MZ세대 트렌드에 맞춰 꾸며진 이곳에서는 청년들이 자유롭게 공부도 하고 다양한 원데이클래스와 나눔에 참여하며 미사도 봉헌한다. 금요일마다 열리는 ‘퇴근길 성찰 모임’은 청년들이 무료로 음료와 맥주를 마시며 자신을 들여다보고 하느님을 만나는 시간이다. 3월 31일 모임에도 정원 8명이 가득 찼다. 처음 만나는 청년들은 서로 닉네임으로 부르며 일상을 나누고 마음을 들여다보는 감정 카드를 뽑으며 속마음을 털어놨다. ‘봉봉’씨는 수술을 앞두고 두려운 마음을, ‘하늘’씨는 퇴사를 결정한 심경을 털어놨다. ‘맡히나’씨는 “한주를 바쁘게 살다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어 이곳을 찾았다”며 “속 얘기를 털어놓고 신앙 이야기도 편히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자신들을 환대하는 분위기 속에서 청년들은 지친 마음을 재충전하고 풍요로운 신앙생활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의정부교구 청소년사목국장 홍석정(가시미로) 신부는 “교회는 하느님이라는 목적지까지 옮겨주는 드라이버로서 손님(청년)을 유치하기 위해 얼마나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니즈를 반영하고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신부는 “청년들에게 ‘교회는 내가 성장할 수 있고, 새로운 만남을 이루고, 마인드가 열린다’는 확신의 장소로 변형돼야 한다”며 “따뜻하고 다정하게 품어주는 교회,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는 청년들의 교회를 만들기 위해 모두가 노력할 때 청년들의 신앙이 비로소 활력을 찾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염지유 기자 gu@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