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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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소나무에 생명 불어넣어 ‘성물 조각가’로 부활한 80대 농부

[부활특집] 관솔 작가로 제2의 인생 사는 김태만 어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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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팔십 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쓸 만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라고 노래했고, 어떤 이는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라고 노래했다. 하지만 노랫말이 아닌 현실에서 노년에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팔십 평생 농사만 짓다 뒤늦게 공예를 시작해 성물 전시회까지 개최한 이가 있다. 지난 3월 서울 명동 갤러리 1898에서 작품을 선보인 1937년생 김태만 어르신이 그 주인공이다. 관솔 조각에 매진하는 그를 주위에서는 그야말로 부활하듯 ‘다시 태어났다’고 말한다. 무슨 사연일까?





조각을 시작하다

“딸의 친구가 십자가를 만들어달라고 해서 그때 처음으로 십자가가 어떻게 생겼는지 유심히 보게 됐어요. 우리 집 뒤에 산소가 있어서 관솔은 구하기 쉽거든. 그때부터 시작한 건데, 이렇게 서울 중심에 와서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하고 있으니 기분이 좋습니다(웃음).”

그의 관솔 조각은 그렇게 시작됐다. 꼬미마을로 불리는 경북 고령군 개진면에서 80여 년을 살아온 그에게 송진이 응축된 소나무, 즉 관솔은 뒷산에 가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그저 ‘죽은 나무’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소나무 공출까지 있었으니 그 토막들이 오랜 세월 그냥 방치되어 함께 나이를 먹은 것이다. 하지만 관솔이 친숙한 재료인 반면, 가톨릭은 그에게 너무나 생소한 소재였다. 어느덧 3년이 지나 직접 만든 수많은 십자가와 묵주 등을 전시하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가톨릭 신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딸이 ‘이거 만들어 봐라, 저거 보고 만들어 봐라’ 얘기하니까 똑같이는 못 해도 흉내를 내는 거지. 그런데 계속 하다 보니 그것만 보게 됩디다. 관솔도 예전에는 관심도 없었는데 유심히 보게 되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야 만들 수 있는데, 딸이 좋아하고 주변에서도 만들어달라고 하니까 이젠 익숙하게 만들어요. 가만히 있으면 ‘지나간 일, 앞으로 닥칠 일, 그렇게 살았으면 좋았을 걸,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하게 되는데, 관솔을 다듬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거든.”

그렇게 2000원짜리 칼로 투박하게 깎아갔던 초기작은 만나는 동네 사람, 달라는 주위 사람들에게 모두 건넸다. 동물 형태도 있고, 운동 기구도 있고, 대가야 박물관에 있는 유물과 지역 특산물인 개진 감자 모양도 있고, 그리고 십자가, 묵주, 오병이어, 밀알 등을 표현한 것도 있다. 교리도 모르고 성경을 읽어보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는 만들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딸 김광숙(노엘라, 국제가톨릭형제회, AFI)씨다.

 

 

 

 

김태만 어르신이 조각한 성물들. 관솔이 십자가와 묵주로 다시 태어난 모습이다.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부녀 김태만 어르신과 딸 김광숙씨가 미소를 짓고 있다.

 

 


아버지는 조각하고 딸은 의미를 더해

“한 신부님이 보시고 ‘이 십자가는 밑이 긴데?’ 하시더라고요(웃음). 아버지가 전문적으로 만들 생각이 아니었으니까요. 누군가 관솔로 묵주 하면 좋겠다고 하시면 만들고, 수녀님이 성작을 얘기하시면 또 만들고. 주변의 관심과 요청으로 만들다 보니 지금에 이른 거예요. 최근에는 한 수녀님이 물고기 두 마리를 헝겊으로 만들어 오셨는데, 그걸 보고 작업하시기에 제가 ‘오병이어’라고 이름을 붙였죠(웃음). 밀알도 있고, 전국 지도에 15처도 만들었어요.”

딸 광숙씨는 1999년 국제가톨릭형제회에 입회했다. AFI공동체 회원들의 요청으로 아버지는 수많은 십자가와 묵주를 제작했고, 그가 느낌 가는 대로 만든 조각들은 딸에 의해 천지창조 때의 동물부터 모세가 하느님의 계명을 받던 시나이 산,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로부터 탈출시키는 홍해의 구름 기둥 등으로 의미를 지니게 됐다. 얘기를 듣다 보니 꿈보다 해몽이 좋은 거 아닌가. 하지만 그런들 어떠하랴. 가족 입장에선 세상을 등질 뻔했던 아버지가 이렇게 활기차게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2019년 당시 83살이던 김태만 어르신은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했다. 아무 쓸모 없는 사람이 너무 오래 살아서 자녀들에게 짐이 되고 국가의 세금만 축낼까 봐 결단한 것이다.

“귀 어둡지, 눈 어둡지, 그런데 너무 오래 사니까. 아무 쓸모 없는 사람이 돈만 쓰고 있고. 나이 든 사람은 대부분 ‘내가 어떻게 죽을까, 자식들 고생 안 시키고 하루 이틀 만에 죽어야 할 텐데’ 생각하거든. 그래서 그렇게 사느니 스스로 움직일 때 죽는 게 낫겠다 싶었지. 그런데 명은 재천인지 안 죽더라고.(웃음)”

폐렴에 온갖 약물 알레르기까지 겹쳐 꼬박 18일 동안 병원 신세를 진 그는 집으로 돌아온 뒤 달라졌다. 곁에서 한 달 넘게 간병한 딸이 손에 쥐여준 관솔과 조각칼은 그의 마음을 달랬고, 여전히 늙고 낡은 일상이었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했다.

“‘내가 잘못된 생각을 했구나, 아이들에게 오히려 상처를 많이 줬겠구나, 내 운명대로 살다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관솔도 죽은 나무인데, 내가 발굴하지 않으면 생명이 없는 건데, 이렇게 새로운 쓸모가 생겼잖아요. 나와 같은 인생이구나, 함께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죽었다 살아난 삶, 즐겁고 의미 있게

“죽었다 살아난 것이 관솔도 나와 동체구나…. 이걸로 뭐 성공하겠다는 생각도 없고, 좀 더 일찍 시작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없어요. 평생 땅을 일구며 살았으니 토질도 알고, 관솔이 어디에 있는지도 아는 거지. 혼자서는 아무 가치가 없는데, 그저 사람들이 좋다고 하니까 나도 즐거워요.”

죽은 소나무가 멋진 작품이 된 것처럼, 쓸모없다 여긴 자신이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는 삶의 의미를 찾은 모습이다. 지난날에 대한 후회도, 앞날에 대한 욕심도 없다. 그저 지금을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딸이 계속 성당에 같이 가자고 하죠. 글쎄, 잘못 생각하는 건지 모르지만, 내 중심으로 지금껏 살아왔거든. 성물을 만들면 그걸 가지고 사람들이 기도하니까 그게 내 몫이 아닐까. ‘관솔 작품을 가지고 있으니까 몸이 좋아지더라, 향이 좋더라’라는 말을 들으면 나도 좋아요. 내가 할 수 있는 작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고, 죽은 것 같지만 다시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게 인생이라는 걸 관솔과 나를 보면서 알아주면 더 고맙죠.(웃음)”

광숙씨는 아버지의 작품이 너무 많아지다 보니 갤러리를 만들기로 했다. 갤러리라고 하니까 너무 거창한가. 그저 시골집 앞에 컨테이너 두 대를 세우고 관솔 작품들을 진열할 예정이다. 그녀가 건넨 명함에는 ‘관솔작가 김태만, 매니저 김광숙’이라고 적혀 있다. 팔십 평생 아버지도, 오십 평생 딸도 이런 새 삶을 상상이나 했을까. ‘끝’이라고 생각했던 지점에서 새롭게 피어난 삶의 의미는 관솔의 은은한 향처럼 부녀의 얼굴을 미소로 감싸 안는다. 컨테이너 갤러리에서 진정으로 빛을 발하는 작품 역시 관솔 조각이 아니라 그것이 품은 새로운 희망일 것이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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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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