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들은 흔히 혼인장애라고 하면 이혼을 먼저 떠올린다. 교리지식이 많은 이들도 복잡한 혼인법 앞에서는 알쏭달쏭한 태도를 보인다. 성당이 아닌 예식장에서의 혼인과 비신자와의 혼인이 흔해지고, 사회적으로 이혼과 재혼도 점차 많아지는 추세다. 혼인은 우리의 삶과 분리할 수 없으므로 최소한의 관련법을 알면 유익할 것이다. 법의 날(4월 25일)을 맞아 교회의 혼인법에 대해 알아본다.
혼인의 본질적 특성과 혼인장애
가톨릭교회의 혼인에는 두 가지 특성이 있다. 불가해소성과 단일성이다.(교회법 제1056조) 불가해소성은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태 19,6)는 성경 말씀에 기초한다. 단일성은 일부일처제를 말한다.
혼인장애는 이 두 가지 혼인의 특성에 위배되거나 자연법상, 교회법상, 국가법상 필요한 혼인의 요건을 채우지 못한 경우 유효한 혼인을 맺지 못하도록 설정해 놓은 법률이다.
가장 흔한 혼인장애는 미신자장애로, 가톨릭 신자와 비신자와의 혼인을 말한다. 교회법은 비신자와의 혼인을 금지하지만, 관할권자의 허가를 받으면 혼인할 수 있다. 흔히 말하는 ‘관면혼’이다. 관면혼을 하려면 신자 당사자는 가톨릭 신앙을 포기하지 않으며 자녀들을 가톨릭교회에서 세례시키고 교육하도록 힘쓰겠다는 약속을, 상대편 당사자는 신자 배우자의 약속과 의무를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 아울러 두 사람 모두 혼인의 본질적 특성과 부부간의 사랑과 일치를 통한 자아의 실현과 자녀 출산이라는 혼인의 목적을 받아들여야 한다.(제1125조)
혼종혼인과 유효화 제도들
가톨릭이 아닌 타 교파 그리스도교에서 세례를 받은 이와의 혼인도 적지 않다. 혼종(混宗)혼인이다. 세례자와 세례자의 혼인이기 때문에 혼인장애로 분류하지 않는다. 이는 세례의 유효성과 관련이 있다. 한국천주교회는 성공회와 정교회 세례만을 인정한다. 개신교 세례의 경우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누구)에게 세례를 줍니다”라는 기도문으로 세례를 유효하게 거행했는지 증명해야 한다. 또한 위의 제1125조 서약과 함께 배우자의 종교에 대한 존중의 태도가 명확히 확인돼야 혼인이 허가된다.
가톨릭신자끼리 결혼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신자 간이라도 혼인면담, 혼인예식을 하지 않고 사회혼만 했다면 교회법상 혼인 형식의 결여 상태로 본다. 이 경우 당사자들이 본당 사제 앞에서 혼인예식을 거행해야 그 혼인은 합법적이고 유효한 것이 되며 신자로서의 모든 권리도 회복된다. 이를 ‘단순 유효화혼’이라고 한다. 둘 중 한 사람만 신자인 경우라도 이 규정은 적용된다.
비신자인 배우자를 성당에 데리고 와서 관면혼을 하려 해도 배우자가 동행을 거부할 수 있다. 만약 그가 신자인 배우자와 자녀들의 신앙생활을 허락한다면 ‘근본 유효화혼’을 할 수 있다. 신자인 배우자 홀로 절차를 거쳐 신앙생활을 재개하도록 돕는 제도다. 근본 유효화혼은 본당 사제가 아닌 교구 법원을 통해서 할 수 있다.
이혼을 하면 성사생활을 할 수 없다?
A씨는 이혼 후 자신이 혼인장애 상태라고 여기며 신앙생활을 중단했다. 이혼한 신자 B씨는 성사에 참여할 때마다 노인 신자들에게 따가운 눈총을 받는다. 이혼을 했으니 성사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틀린 개념이다.
교회에는 ‘이혼’이라는 개념이 없다. 국가법상 이혼을 했어도, 교회법상으로는 ‘혼인 유대 중의 별거’ 상태로 혼인 유대가 남아 있다. 재혼을 하지 않았다면 이혼을 한 사실 자체만으로는 혼인장애에 해당하지 않아 신앙생활에 어떠한 제약도 없다.
이혼 후 재혼을 하려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전 배우자가 사망했다면 혼인 유대가 사별로 해소됐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그러나 전 배우자가 살아 있는 상황에서 재혼은 교회법상으로 혼인 유대 장애에 해당해 성사생활이 금지된다. “이혼의 증가는 우려스러운 일”(「사랑의 기쁨」 246항)이지만, 교회는 현실적인 어려움에 빠진 신자들의 신앙을 지키고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해 놓았다.
우선 ‘바오로 특전’이 있다. 이 특전은 혼인 후 세례받은 신자의 신앙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신자 아닌 쪽에서 헤어지겠다면 헤어지십시오. 그러한 경우에는 형제나 자매가 속박을 받지 않습니다”(1코린 7,15)라는 바오로 서간 말씀에서 유래한다. 여기에는 조건이 따른다. 혼인 당시 두 사람 모두 비신자였어야 하고, 혼인 후 한 편만 세례를 받았어야 한다. 모두 세례를 받으면 자연히 성사혼으로 승격돼 혼인 유대의 해소가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이혼 사유가 세례받은 편에 있어서는 안 된다.
‘혼인 무효 선고’도 있다. 직전 혼인을 유효하지 않은 혼인이라고 본당 사제가 공식 선언해 주는 것이다. 무효 선고는 형식의 결여와 형식의 결함이라는 두 종류가 있다. 형식의 결여는 신자가 가톨릭 혼인예식을 거행하지 않은 경우다. 혼인장애 상태이므로 당사자가 이러한 혼인상태에서 살다가 이혼을 하면 사제는 그 혼인이 무효라고 선고할 수 있다. 형식의 결함은 혼인예식은 했지만 혼인의 형식에 부족하거나 흠이 있는 경우를 뜻한다. 구체적 판단은 교회법원에서 한다.
혼인 유대의 끈을 푸는 혼인 무효 소송
바오로 특전이나 혼인 무효 선고로도 이전 혼인을 무효화할 수 없다면 법원에 ‘혼인 무효 소송’을 제기해 전 혼인 유대의 끈을 풀어야 한다. 이 과정 없이 재혼하면 전 혼인 유대에 매여 있어 새로운 배우자와 죄 중에 사는 것이 된다. 각 교구 법원은 신자들이 혼인장애 문제를 풀도록 돕고 있다.
수원교구 법원 사법대리 김의태(베네딕토) 신부는 “실제로 교구법원에서 이뤄지는 소송의 종류 중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혼인 무효 소송”이라며 “소송이 제기된 혼인이 해소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여겨지면, 혼인 자체가 없었다는 판단을 교회의 이름으로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 “평소 특강에 나가 신자들이 ‘이혼하면 영성체 모실 수 없다’고 말씀하는 것을 보면, 한국교회 안에서 여전히 이혼에 대한 배타적인 모습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면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교회가 야전병원임을 강조하며, 어려운 혼인 현실에 처해있는 이들과 동행할 것을 당부하셨기 때문에 혼인법에 대한 교육과 신자들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혼인장애의 종류는 다양하고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달라 사제를 찾아가서 정확한 도움을 얻는 것이 좋다. 혼인장애를 겪고 있더라도 본당 사제와 교구 법원의 도움을 받아 신앙생활의 기쁨을 되찾고 성사의 은총으로 다시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있다.
염지유 기자 gu@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