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삶] 14. 동덕여대 무용과 윤혜선(체칠리아) 교수
윤혜선 교수가 동덕여대 무용과 강의실에서 천을 활용한 표현예술상담 수업을 하고 있다.
동덕여대 무용과 윤혜선 교수가 공연예술센터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표현예술상담 수업을 하고 있다.
윤혜선 체칠리아 교수
평년 기온보다 크게 웃돈 3월의 마지막 주, 여물은 꽃봉오리가 터진다. 사람들은 드러나는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해방감을 맛본다. 생명력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다. 예술 또한 마찬가지다. 정서를 표현하는 동시에 희열이 감돈다. 우리는 이를 ‘카타르시스’라고 부른다. 다양한 삶의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는 ‘타인의 삶’. 예술을 통해 마음을 치유하는 사단법인 아트라이프 다솜 대표 윤혜선(체칠리아) 동덕여대 교수를 만났다.
표현예술상담이란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의 한 무용과 강의실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창문 너머 윤 교수가 학생들과 함께 오색찬란한 천을 공중으로 날리고 있었다. 예기치 못하게 떨어지는 천을 잡기 위한 학생들의 우스꽝스러운 몸짓이 웃음을 자아냈다. ‘표현예술상담’ 수업 풍경이다.
표현예술상담은 음악, 미술, 무용, 연극 등 다양한 예술을 활용해 심리상담, 재활, 정신건강 문제 예방, 문화예술교육, 행복감 증진 등을 목적으로 하는 통합예술치유상담을 뜻한다. 마음에 쌓인 부정적인 감정을 이런 예술 행위로써 해소하며 안정감을 얻는 과정이다. 아트라이프 다솜은 표현예술상담의 원리를 활용해 통합예술치유 프로그램 ‘해피아트테라피(H.A.T.)’를 개발해 특허를 냈다. 교육과정을 통해 표현예술상담사를 양성하기도 한다.
흰 가운을 입은 무용가
윤 교수는 이화여대 무용과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했다. 대학 1학년 때부터는 성당에서 장구를 치고, 무용을 가르치며 봉사도 활발히 했다. “주일학교 학생들의 얼굴에 만개하는 웃음을 보고 깨달았죠. 이들이 무언가로부터 치유되고 있다는 것을요.” 새내기 대학생이 예술에 담긴 생명력을 발견하는 계기였다.
진로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우연히 예술치유의 개념을 해외 사례에서 찾게 됐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것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자신의 재능을 활용해 누군가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고 싶다는 커다란 바람을 안고 막연하지만, 생명과학 분야에 뛰어들었다. 생명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무용가가 실험실 연구원이 된 특별한 순간이다.
건국대학교 대학원 유전공학연구소에 진학한 그는 흰 가운을 입은 채 연구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무용과 전공생이 실험용 쥐 우리를 관리하는 희한한 모습은 금세 소문이 났다. 윤 교수는 “연구실에 있으면 구경하러 오는 학생들도 있었다”며 “지금은 웃으며 말하지만, 당시에는 매일 악몽을 꿨을 정도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긴 쉽지 않았다”고 소회했다. 국내에서 불모지와 같았던 ‘표현예술상담’이라는 분야를 개척하기 위한 그만의 노력이었다.
이후 서울여대 특수치료전문대학원에서 예술치료학으로 또 한 번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2002년 아트라이프 다솜을 만들었다. 예술치유로써 건강하고 행복한 문화를 보급하자는 지향을 갖고 세운 여성가족부 산하 비영리 법인이다. 가톨릭 신자인 전문가들과 함께 ‘하느님 사랑의 실천’을 이념으로 만든 단체인 만큼 교회와의 인연 또한 설립 때부터 이어졌다. 서울대교구 경찰사목위원회을 시작으로 서울대교구 직장사목팀 소방사목, 바보의나눔, 가톨릭대 부천성모병원까지 저변을 넓혔다. 특히 밤낮없이 사건 현장을 누비며 고되고 위험한 일을 수행해야 하는 수많은 경찰관과 소방관들에게도 윤 교수가 고안해낸 표현예술상담 프로그램이 심리적 돌봄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신앙이 있기에
어려울 때도 있었다. 윤 교수는 서울 경찰사목위원회와 협업해 처음 서울지방경찰청에서 표현예술상담을 진행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심리치유와 같은 단어를 들을 때 사람들의 거부감이 더욱 심했다”며 “‘우리가 유치원생들도 아니고, 왜 이런 것을 해야 하느냐’며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분들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이 2002월드컵 4강 진출을 하며 유행했던 ‘꼭짓점’ 댄스를 활용해 경찰청 사람들의 마음을 열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12명으로 출발했던 경찰사목위원회의 표현예술상담에만 지금까지 약 20년 동안 38만 명 이상이 거쳐 갔다.
윤 교수는 “표현예술상담사로 활동하며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스스로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청하는 마음이 없다면 자신의 능력 이상의 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한 번은 태어나자마자 화장실에 버려졌는데, 산소 공급이 부족해 뇌성마비를 앓게 된 아이를 상담한 적이 있었다. 윤 교수는 돌발행동을 하는 아이의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져 매일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는 “표현예술상담사도 마음을 돌보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며 “상담을 진행하기 전 마치 의식을 치르듯 기도를 한다”고 전했다.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단체 상담을 이끌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준비 과정인 셈이다. 개인적인 기분이나 상태가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느님께 ‘지혜롭게 상담을 이끌어갈 수 있게 끝까지 함께해주시기를’ 청한다고 했다. 이런 마음이 통했는지 한때 윤 교수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그 아이는 호전돼 좋은 가정에 입양됐다.
내 마음도 안녕하세요?
윤 교수는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독자들에게도 위로의 말을 전했다. “고인 물은 오염되기 쉽지만, 흐르는 물은 정화됩니다. 우리 마음도 가만히 있으면 부정적인 감정에 머물기 쉽습니다. 우리가 매일 다른 이들에게 ‘안녕하세요?’라며 안부를 묻듯 ‘오늘 나의 마음은 어떤지’ 물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스로에게 묻는 안부 뒤에 오는 고요의 경험은 긍정과 부정의 차원을 넘어 ‘수고했다’, ‘잘하고 있어’ 등의 내면의 소리를 들려준다고 한다. 표현예술상담은 스스로에 대한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여유를 선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내담자 가운데는 가정폭력으로 인해 비행을 일삼았던 가출 청소년도 있었다. 부정적인 경험만이 가득했던 그의 내면에 기쁨과 즐거움이 고개를 들 수 있도록 윤 교수는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윤 교수에게 다가와 말했다. “이제 공부를 해야겠어요. 저를 위해서 자신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윤 교수는 “우리는 모두 스스로 이겨낼 힘을 갖고 있다”고 했다. “당장 고달프고 힘들어도 나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면 ‘하느님이 우리와 늘 함께하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고생한 나 자신에게 안부 인사 한번 해보면 어떨까요? 현재의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으면서도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의 위로를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