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N 우크라이나 책임자가 전하는 현지 부활 시기 모습
전쟁 중에도 부활절은 찾아왔다. 우크라이나로서는 전쟁 중 맞이한 두 번째 부활 시기다. 그러나 전황은 여전히 가늠하기 어렵다. 4월 현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군은 돈바스 지역 전선에서 치열한 소모전을 벌이고 있다. 하루에만 수백만 발의 폭탄이 빗발치고, 그 속에서 매일 수백 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 미처 떠나지 못한 민간인들 역시 하루하루 지옥 같은 곳에서 불안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무엇도 부활의 기쁨을 막을 순 없다. 우크라이나 교회 공동체는 혼란 속에서도 평소처럼 부활 시기를 보내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교황청재단 가톨릭 사목 원조기구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 동유럽 담당 겸 우크라이나 사목 원조 책임자인 마그다 카츠마렉 실장은 서면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인터뷰와 내용 번역은 ACN 한국지부의 도움을 받았다.
큰 십자가의 길 속 우크라이나의 사순
마그다 카츠마렉 실장은 “근현대 우크라이나 역사에서 두 번째로 큰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다”고 했다. 20세기 들어 동서로 분할됐다가 소련에 합병되는 과정에서 극심한 기근을 겪었던 첫 번째 고통에 이어 약 한 세기 만에 다시 불어닥친 우크라이나의 사순을 일컫는 것이다.
그가 본 전쟁은 더욱 끔찍해지는 상황이다. ‘21세기 스탈린그라드’로 불리는 돈바스 지역 바흐무트에서는 지금도 수만 명의 군인이 빗발치는 포탄 속에서 목숨을 건 전투를 벌이고 있다. 사순 시기와 성주간 때에도 사상자는 속출했다. 생명은 없고, 파괴와 죽음뿐인 상황이다. 카츠마렉 실장을 비롯한 ACN 담당자들은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차량으로만 이동하며 지원이 필요한 곳 등을 시찰했다. 지난해 4월과 11월, 그리고 올해 3월까지 세 차례 국경을 넘나들며 활발한 원조 활동을 펼치고 있다.
폴란드인인 카츠마렉 실장은 “국가 총동원령에 따라 18~60세 모든 우크라이나 남성 가운데 자녀가 3명 이상 있거나 중증 질환을 앓지 않은 경우라면 출국이 금지된 상황”이라며 “외국인 사제들은 동원령에서 제외되지만, 이들 대부분이 우크라이나에 계속 머물고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인 사제뿐만 아니라, 외국인 사제들 상당수가 교회와 신자들을 위해 전쟁터를 떠나지 않는 것이다.
인구의 30 이상이 난민 전락
“왜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가족과 아이들의 삶을 이리도 처참하게 파괴하는 걸까요?”
카츠마렉 실장은 “우크라이나 서부에 수천 명의 난민이 있었고, 그들 중 80가 여성과 아이, 노약자와 병자들이었다”며 “이들은 전쟁이 끝나길 바라면서 신학교와 수도원 성당에 머물며 생존을 위해 애쓰는 극한의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1500만 명이 동부 지역을 떠났고, 그중 7만 명은 폴란드 혹은 서유럽에, 그리고 700만 명은 서부와 중부에 머물고 있다”며 “이다음엔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말하기는 매우 힘들다”고 말했다. 전체 인구의 30가 넘는 사람들이 고향을 잃고 타지를 헤매고 있는 것이다.
카츠마렉 실장은 “전쟁과 함께 사람들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면서 “사람들은 그저 평화만을 바랄 뿐”이라고 우려했다.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도 우크라이나 교회 공동체는 어려운 이웃을 돌보며 성탄과 부활의 기쁨을 나눴다. 군인들에게 위문품을 전하고, 전쟁으로 상처받은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카푸친회 수도자들은 우크라이나 국토를 순례하며 다시 찾아올 평화를 염원하고 있다. 이에 ACN은 사목자들이 무사히 사목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계속 지원하고 있다. ACN이 동부 지역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것도 현지에 남아 있는 다수의 주교들과 사제, 수도자들이 다리 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카츠마렉 실장은 “그분들은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현지의 남은 사람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고 있는지 전해주고 있다”며 “사제들은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가 완전하길 기도한다. 우리 생명이 오직 하느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부활의 희망을 꿈꾸며
카츠마렉 실장은 “우크라이나 교회 구성원들과 신자들은 가족들, 더 나아가 공동체 전체가 더는 갈라지지 않고 함께 살기만을 바라며 매일 평화를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부활의 희망을 절대 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다시금 진정한 부활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우리는 결국 부활을 통한 승리를 거둘 것이란 희망을 느끼고 있으며, 그 어떤 것도 부활의 큰 기쁨을 방해할 수는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우크라이나에서 누가 가톨릭 신자인지 정교회 신자인지, 혹은 특정 종교의 신자 여부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면서 “승리를 위해, 나아가 파괴된 도시와 국가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자녀에게 자유로운 나라의 미래를 물려 주기 위해 하나가 된 우크라이나 사회만이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장현민 기자 memo@cpbc.co.kr
우크라이나 지원에 앞장선 ACN
교황청 재단 가톨릭 사목 원조기구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는 전쟁 초기부터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지원에 앞장서 왔다.
ACN은 지난 1년 동안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290여 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교회 공동체와 1만 5000여 명에 달하는 이들을 도왔다. ACN을 통해 기부된 액수는 950만 유로(한화 약 136억 6290만 원)에 달한다.
ACN이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프로젝트는 우크라이나 교회 공동체 원조다. 지난 1년간 7400여 명의 사제, 수도자 등에게 구호 자금을 전달해 전쟁 속에서도 공동체가 주님 안에 살도록 도왔다. 또 분쟁 지역에서도 미사가 봉헌될 수 있도록 사제들에게 미사 예물과 전례 용품을 전하고 있다.
교회 기관들은 피난민과 어린이, 청소년들을 돌보는 든든한 방주 역할을 한다. ACN은 각 교회 기관을 통해 지금까지 피난민 2200여 명을 직접 지원하고, 1700여 명의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사목적 돌봄을 제공하도록 도왔다. 또 신학생 700여 명과 2640명의 본당 평신도, 640명의 수도자와 사제, 교리교사 등도 ACN의 지원을 받아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ACN 한국지부 역시 지난해 ‘ACN 어린이 성경’ 4만 부와 ‘마르코 복음’ 3만 부를 우크라이나에 보냈다.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의 영적ㆍ정신적 치유를 돕기 위해서다. 성경과 복음서 출판 비용은 cpbc ‘TV 매일미사’ ARS 성금과 가톨릭평화신문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등을 통해 마련했다. 마그다 카츠마렉 실장은 ACN 한국지부와 후원자의 정성에 감사 인사를 전하며 “선한 마음에 의지하는 많은 우크라이나인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달라”고 거듭 기도와 관심을 요청했다.
후원문의 : 02-796-6440, ACN 한국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