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제가 꼭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당신은 돌아갈 집이 있습니까?”, “마음으로 쉴 수 있는 집이 있습니까?”
이 질문에 “네”라고 답변한다면 그래도 생각을 전환할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돌아갈 집이 없습니다” 라거나 “더 이상 저를 받아줄 집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한다면 심각성은 예상보다 클 수 있습니다.
집이라는 공간은 물리적 공간이면서 심리적 공간이기도 합니다.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다는 점에서 집만큼 인격성(personalitat)과 육체성(corporality)이 큰 공간도 드물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집을 자신만큼 아니 자신보다 더 소중하게 여깁니다. 세상에서 힘든 일을 겪고 만신창이가 되었다가도 집은 그 공간에 기거하는 사람을 보듬고 생기를 불어넣어 다시 힘을 내게 만듭니다.
이렇게 집은 생명력(vitality)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집을 가지고 농간을 부리고 집을 학대하고 심지어 집을 살해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집을 투기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많은 사람이 기본적인 주거조차 박탈 당하거나 거리로 내몰리는 경우가 생기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집을 바라보며 왜 자신에게는 하늘 아래 조그만 거처조차 허락되지 않는지 한숨 짓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또한 학대와 폭력으로 집을 훼손하는 이들로 인해 많은 아동·청소년들이 집 밖을 배회하고 있습니다. 집에서 상처받은 아이들은 집을 나와 세상에서 더 큰 상처를 입게 됩니다.
자살 시도를 했던 가정폭력 피해자도 비슷한 상황에 있었습니다. 남편의 구타를 피해 갓난아이를 둘러업고 나온 피해자는 막상 자신이 갈 곳이 없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했던 경험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친정에서는 새엄마가 자신을 반길 리 없고, 어려서 헤어진 생모는 새로운 가정을 꾸려 갈 수가 없고 어디에도 자신이 갈 수 있는 집은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더부살이처럼 눈치만 보던 집에서 탈출하고 싶어 스무 살이 되자마자 결혼했으나 자신이 찾던 집은 결국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최근 전세 사기로 20~30대 피해자들의 연이은 자살 소식을 접하고 있습니다. 집을 매개로 한 사기 공범들과 중개인들이 집을 살해했고 정부와 지자체들의 방임 속에서 우리 사회는 또 무고한 생명들을 잃었습니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전세보증금을 날리고 또 하이에나 같은 경매꾼들의 닦달에 쫓겨나듯 집을 나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성실하게만 살면, 착하게만 살면, 좋은 날이 올 거라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잘못한 것이 없는데, 하루 아침에 길바닥에 나 앉고 채무자가 되고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이게 정말 현실일까….”, “집도 돈도 다 탈탈 털리고, 내 영혼도, 내 삶도 다 도둑맞았다.”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오랜 세월 아끼고 모은 돈에 또 대출까지 얻어 어렵게 마련한 작은 집 한 채, 자신의 피땀이 밴만큼 아주 견고한 성이라고 생각했고, 피해자들은 최소한 이 집 안에서만큼은 누구 못지않게 편안하게 살 거라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토록 견고해 보였던 집이 협잡꾼들에 의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고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생명을 보듬었던 집은 온데간데없고 소멸한 집에 들어간 채무만 그대로 남았습니다. 매매가보다 비싸게 산 전셋집을 다시 빚을 내어 구매하든지, 아니면 길거리로 나 앉아야 하는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시 한번 천명(闡明)합니다. ‘돌아갈 집’은 생명입니다.
황순찬 베드로 교수
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