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 하느님의 부르심을 따라가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 다다르기도 한다. 그저 부르심에 응답했을 뿐인데 고향땅을 떠나 먼 대한민국에까지 와서, 한국에서 설립된 수도회의 영성을 따라 수도생활을 하고 있는 성소자들을 만났다.
미리내 성지를 향한 길목, 콩을 익히는 구수한 내음이 퍼져온다. 마당 한가득 장독이 놓인 이곳은 미리내 성 요셉 애덕 수녀회(총원장 윤정란 안젤라 수녀) 수도원이다. 수녀들은 오늘도 우리 전통의 방식으로 메주를 쑤고 장을 담근다. 그런데 여기서 함께 기도하고 일하는 수녀들 중에는 한국 출신이 아닌 수녀들도 있다. 바로 인도네시아에서 온 마리아 떼레시아 비오(테레시아)·시실리아 데에네(체칠리아)·마리아 유니따 두아 보따(마리에타)·떼레시아 세르비아나(테레지타) 수녀다.
“한국 수녀님이 성체분배하시는 모습을 보고 너무도 큰 감동을 받았어요. 지금도 그때 그 부르심에 응답하길 잘했다고 느껴요.”
테레시아 수녀는 어린 시절 수녀를 꿈꿨다. 그러나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면서 수녀의 꿈을 잊고 교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어느 날, 성당에서 한국 수녀님이 성체분배하는 모습이 마음에 한가득 담겼다. 테레시아 수녀는 그길로 부모님께 달려가 수녀가 되겠다고 말했다. 갑작스런 결단에 가족들은 반대했지만, 테레시아 수녀는 마침내 부모님의 허락을 얻고 한국 수녀가 속한 수도회에 입회했다.
마리에타 수녀와 체칠리아 수녀도 어릴 적 품었던 수녀의 꿈을 다시 찾았을 무렵, 한국 수녀를 만났다. 테레지타 수녀는 수도자의 길을 생각한 적 없었지만, 한국 수녀와 자주 만나면서 성소를 생각하게 됐다. 한국 문화도, 한국어도 잘 몰랐던 이들이지만 성소의 순간 한국 수녀회를 만났고 한국에서 서원을 했다.
“한국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게 기쁘고, 기도를 담아 정성을 다해 한국 전통음식을 만들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수녀들이 이곳에서 전통장을 만드는 활동은 ‘애덕’이라는 수녀회 영성을 구현하는 사도직이다. 건강하고 맛 좋은 장을 만들어 먹는 이들의 육신을 위한 애덕을 실천하고, 또 수익금으로 아동보육시설, 요양원 등 시설을 지원하고 있다. 기도하며 건강한 음식을 만들다보니 수녀들 스스로도 영육 간 건강을 찾고 있다. 테레시아 수녀는 “입회 전에는 과자로 끼니를 해결하는 등 식습관이 건강하지 못했다”면서 “휴가 때 과자가 아니라 채소를 먹는 저를 보면서 부모님이 놀라셨다”며 웃었다.
이렇게 웃어 보이는 수녀들이지만, 사실 한국 생활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언어, 문화, 먹거리가 다 어려웠다. 처음 겪어보는 겨울은 그렇게 추울 수 없었다. 그러나 힘든 순간은 잠시였다. 체칠리아 수녀는 “한국 신자분들이 저희를 반겨주시는 모습이 좋고 고맙다”며 “인도네시아에는 없는 사계절을 겪으면서 하느님께서 만드는 계절을 느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마리에타 수녀는 “봉사가 좋다”며 미소를 보였다. 수녀들은 이미 이곳에 오기 전에도 아동보육시설, 요양원, 양로원 등에서 사도직을 수행해왔다. 수녀들은 수녀로서 기도와 봉사가 필요한 곳에 손길을 내미는 것이 기쁘다고 입을 모았다. 수도 영성 안에서 수녀들은 더 이상 국적으로 구분되지 않았다. 테레지타 수녀는 “늘 기도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면서 “남에게 강요하기보다 이해해주는 사랑 많은 수녀님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때로는 힘든 시간도 있지만, 늘 제가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수녀로서 살아가고 있어요. 인도네시아에서 저와 함께 계시던 그 하느님께서 지금 이 순간 한국에서도 함께 하시니까요.”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