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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파문’ 당하면 세례도 취소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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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는 지난 4월 12일 교령을 통해 “교회법 제 1364조 1항에 의거하여 이단자 엄옥순(라파엘라)에게 자동 처벌의 파문을 선고하고, 교회법 제1331조 1항에 따라 모든 성사의 배령을 금지한다”고 알렸다. 교회 안에서 파문이라는 제재가 드물다보니 파문에 관한 궁금증이 생긴다. 온라인에도 ‘파문을 당하면 세례도 취소되는지’, ‘파문을 당하면 하느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지’ 등 여러 질문이 떠돈다. 파문은 무엇이고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파문’이라는 말을 들으면 학생시절 배운 세계사 속에 아른아른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이른바 ‘카노사의 굴욕’이라고 부르는 장면이다. 성 그레고리오 7세 교황이 신성로마제국 하인리히 4세 황제를 파문하자 황제는 교황이 머물고 있던 카노사성을 찾아 성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빌어 파문을 취소 받았다는 내용이다. 물론 이 이야기의 내막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관계가 얽혀있지만, 일단 ‘파문’이라는 것이 무시무시하다는 점은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실제로 파문은 교회법이 정한 교정벌 중 교회의 친교를 박탈하는 가장 무거운 형벌이다. 교회의 친교에서 박탈된다는 것은 파문(excommunicatio)이란 용어의 어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교회 공동체에서 떨어져나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전주교구 교령에서도 밝히듯 “모든 성사의 배령”이 금지된다. 파문을 당한 사람은 죽을 위험 중에 있는 경우와 같은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교회 공동체가 거행하는 모든 성사에 참여할 수 없다.

파문에서 박탈당하는 ‘교회의 친교’는 법적 사회인 교회와의 친교를 의미한다. ‘그리스도와 그 신비체인 교회’로부터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파문은 신앙과 은총 안에서 하느님과 내적으로 친교하는 것까지 배제하지 않는다. 하느님께 받은 소멸될 수 없는 표지, ‘인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므로, 파문을 당한다고 해서 세례·견진 등이 취소되지는 않는다. 다만 교회 공동체가 함께하는 성사에는 참여할 수 없으므로 세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영적 선익을 충만하게 누릴 수가 없다.

파문은 두 가지 형태로 이뤄지는데, 첫 번째로는 교회법적 절차에 따라 선언되는 파문과 자동 처벌에 의한 파문이 있다. 파문 제재는 판결을 통해 선언될 수도 있지만, 중대한 죄를 범하게 되면 자동 처벌로 파문을 당하게 된다. 예를 들면 성체를 내던지거나 독성의 목적으로 뺏어 가거나 보관하는 자는 사도좌에 유보된 자동 처벌의 파문 제재(교회법 제1382조)를, 낙태를 주선해 그 효과를 얻는 자는 자동 처벌의 파문 제재(교회법 제1397조)를 받는다.

신앙인으로서 성사를 할 수 없는 것은 정말 무거운 벌이지만, 파문은 어디까지나 교정벌에 해당한다. 교회법은 교회 안의 형벌 제재를 크게 교정벌, 속죄벌, 예방 제재와 참회 고행으로 나누고 있다. 교정벌이란 범죄를 고집하는 신자가 고집을 버리고 사면될 때까지 영적 선익이나 그에 결부된 선익을 박탈하는 형벌을 의미한다. 교정벌은 개과천선의 유무와 관계없이 반드시 처벌이 이뤄져야 하는 속죄벌과 달리 처벌을 받은 사람이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오면 사면을 통해 회복될 수 있다. 그 목적이 형벌을 주는 것에 있지 않고, 교정벌을 받는 대상이 범죄를 고집하는 마음을 버리도록 하는데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교정벌은 ‘치료벌’이라고도 불린다.

파문에서 회복될 수 있는 방법은 파문을 선언한 직권자에게 ‘사면’을 받는 것이다. 다만 교회법은 예외적으로 중죄의 상태에 너무 오래 머무르는 것이 참회자에게 큰 짐이 되는 것을 배려하고 있다. 낙태로 자동 처벌에 의한 파문 제재를 받은 이가 참회하고자 한다면, 고해성사를 통해 파문에서 회복될 수 있다. 단, 비공개적으로 적용된 파문일 때만 가능하다. 만약 공개적으로 저지른 죄거나 선언된 파문이라면 사면을 받아야 한다. 이 고해성사는 주교와 특별한 위임을 받은 사제만 가능한데, 한국교회 사제들에게는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 제88조에 따라 낙태죄에 대한 사면권이 주어져 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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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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