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남수단의 지도자들을 초대합니다. 내전을 그만두고 평화를 향하여 움직이라고 연설한 교황은 남수단의 지도자들의 발에 차례로 입을 맞춥니다. 그렇게 자신을 낮추어 평화를 향해 나아가라는 요청을 교황은 스스로가 무릎을 꿇고 입을 맞춤으로서 보여준 것이다.
교황의 이런 모습을 천주교 신자라면 한 번 쯤은 보았습니다. 바로 성목요일의 주님 만찬 미사 중에서입니다. 일명 발씻김 예식을 통해 사제는 무릎을 꿇고 신자분의 발을 씻어줍니다. 이는 최후의 만찬 중에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습으로, 제자들을 향한 당신의 끝없는 모습과 이를 본 제자들이 따라 하라고 예수님께서 본을 보여준 것입니다.
다른 종교도 그렇지만 가톨릭에서 무릎을 꿇는 행위는 다양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무엇보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회개와 반성의 순간에 사용됩니다. 하느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인간은 자신의 죄악과 부도덕한 행위를 깨닫습니다. 즉 무릎을 꿇는 것은 하느님께 돌아가는 회개를 말합니다. 회개 한 이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기에, 무릎을 꿇는 것은 새로운 시작의 출발선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방문 중 ‘워싱턴 포스트’와 인터뷰 중 일본이 한국에 저지른 “100년 전의 일을 가지고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라고 하는 것을 저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유럽의 상황을 예로 들었습니다. 유럽에서는 전쟁을 몇 번씩 겪고 그 참혹한 전쟁을 겪어도 미래를 위해서 전쟁 당사국들이 협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윤 대통령은 일본이 무릎을 꿇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지만, 우리는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예로 들은 유럽이 무릎을 꿇어 사죄했기 때문입니다.
1970년 12월 7일, 당시 독일 수상 빌리 브란트는 제2차 세계 대전 희생자들에게 헌정된 폴란드 바르샤바의 기념관을 방문합니다. 거기서 예정에도 없이 브란트는 무릎을 꿇고 몇 초 동안 침묵을 지켰고,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들을 향한 겸손과 존경의 몸짓으로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 모습은 독일 지도자가 2차 세계대전 동안 유대인들의 고통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때까지, 많은 독일인들은 2차 세계대전 동안 저지른 만행에 대한 자국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을 꺼렸습니다. 그러나 브란트 수상의 행동을 통해 독일이 진정으로 사과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모습은 독일 지도자들이 과거에 대해 책임을 지고 다른 나라들과 화해의 정책을 추구할 수 있는 길을 닦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물론 가톨릭교회는 용서를 말합니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또한 동시에 죄인의 진정한 참회와 회개도 말합니다. 사죄한 이는 하느님께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진정으로 사죄하는 이를 자비의 마음으로 용서 할 때 그것이 평화로 가는 길입니다.
오늘 사제의 눈 제목은 ‘무릎 꿇고 사죄하기’입니다. 과거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진정한 참회와 사죄를 바탕으로 한 일본과 한국의 협력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오늘도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