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 서원 55주년 맞아 아픈 이들 위한 시선집 출간 계획
이해인(클라우디아,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수녀가 11일 제26회 한국가톨릭문학상 본상을 수상했다. 수상작은 지난해 출간한 「꽃잎 한 장처럼」이다. 시상식을 앞두고 만난 이 수녀는 반세기가 넘는 수도생활에서 우러나오는 고백을 이렇게 표현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 /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그들의 이름을 / 꽃잎으로 포개어
나는 들고 가리라 / 천국에까지
이 수녀는 작품들을 장미 꽃잎에 비유하며 수상 소감을 전했다. “언젠가 제가 세상을 떠나더라도, 남기고 간 시 하나하나가 장미꽃잎이 돼 독자들을 축복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죠.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도 ‘천국에 가게 되면 이 지상에 장미를 뿌리겠다’고 하셨잖아요. 이 책을 러브레터라고 생각하고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독자들 사랑에 늘 감사
이 수녀는 1970년 「가톨릭 소년」(현 「소년」)에 동시를 발표해 등단했다. 수녀회에 입회한 지 6년, 수도 서원 2년 만의 일이었다. 이어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1976)를 발간한 후부터 ‘수도자 시인’으로 숨 가쁘게 달려왔다.
신작을 낼 때면 그야말로 불티나게 팔렸다. 한번은 서울 종로 대형 서점에 갔는데, 베스트셀러 1~4위가 모두 자신의 책이었다. 어찌나 놀랐는지 ‘다른 시인에게 미안하니 그만 좀 팔리게 해주시라’고 기도까지 할 정도였다. 이 수녀의 시는 종교와 신분, 나이를 떠나 많은 이에게 사랑받아왔다. 보초를 서던 군인부터 재소자, 독실한 불교 신자까지. 다양한 분야 독자들이 절절한 마음을 담아 보내온 팬레터가 그 증거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집을 지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편지가 부산 수도원 본원 창고에 보관돼있다. 오죽하면 그걸 본 동료 문인들이 유례없는 보물이라며 버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단다.
“받는 편지마다 답장을 열심히 써줬죠. 그럼 감동한 독자들이 또 편지를 보내요. 그렇게 인연이 이어진 거죠. 가장 기쁠 때는 10대 독자들이 어느덧 커서 자녀들과 함께 저의 시를 읽는다고 할 때예요. 큰 선물이죠. 어떤 아이들은 부모 못잖은 애독자가 되어 모임에 같이 나와요. 끈끈한 정으로 연결된 ‘가족’처럼 느껴지죠.”
가톨릭에 입교했다는 소식을 전한 독자도 적지 않다. 시를 통해 선교한 셈이다. 이 수녀는 “먼저 성당에 나가라고 말한 적은 없지만, 시가 삶 속에 들어와 위로와 사랑을 주니, 자연스레 제가 믿는 종교에도 관심을 두게 된 것”이라고 했다.
긴 세월 마냥 즐겁고 기쁜 순간만 있진 않았다. 의도치 않게 유명세를 얻다 보니 터무니없는 오해와 비판을 받는 일도 많았다. 가짜 출판물이 나오거나 신분을 위장한 기자들이 접근하는 황당한 사건도 있었다. 그때마다 이 수녀는 원망 대신 더 열심히 기도하고 자주 고해성사에 임하며 ‘하느님께서 더 겸손한 영혼으로 길들이는 과정’으로 여겼다.
“오늘 흘린 눈물이 언젠가 진주가 되어 웃을 날이 오겠지, 그 생각으로 힘든 시간을 버텨냈죠. 돌아가신 어머니와 언니 고 이인숙(가르멜 수도회) 수녀님의 기도가 많은 힘이 됐어요. 제게 문서 선교실이라는 소임을 만들어준 공동체에도 고맙죠. 저를 사랑해주시는 독자들은 모두 제 작품 이면에 숨은 눈물을 용케 알아보신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고통을 작품으로 승화
이 수녀는 늘 ‘마지막 책이 될지도 모른다’는 각오로 창작에 임하고 있다. 2008년 시작된 암 투병에서 비롯된 습관이다. 처음엔 충격으로 다가왔던 병은 곧 문학적 자양분이 됐다. “고통에 매몰되지 말고, 승화하고 정화하는 계기로 역이용하자고 마음먹으니 병을 소재로 더 깊고 풍성한 시를 쓸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암 투병에 관한 시를 읽고 한 독자가 ‘항암 치료가 무서워서 안 받겠다던 어머니가 수녀님 시를 읽고 항암을 받기로 마음을 바꿨다’는 편지를 보내왔어요. 그때 깨달았죠. 병마도 축복의 기회로 삼을 수 있구나. 앞으로 내가 독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구나.”
이 수녀는 올해 수도 서원 55주년을 맞아 하반기에 아픈 이들을 위한 시선집을 출간할 계획이다. 입회 60주년을 맞는 내년에는 또 다른 책을 준비 중이다. “이렇게 제 생애를 정리해가는 거죠.” 이 수녀의 얼굴에 이모처럼 편안하고, 달빛처럼 포근한 미소가 번졌다.
가톨릭신문사가 제정한 한국가톨릭문학상은 가톨릭 정신과 인류 보편적 진리를 문학으로 승화한 작품을 발굴해 시상해 오고 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