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놀외방전교회가 한국 땅을 밟은 지 올해로 꼭 100년이 됐다. 아시아 복음화를 목적으로 미국에서 설립된 메리놀회는 전쟁과 추방 등 고난의 시간을 거쳤고, 1923년 한국 교회에 진출해 초석을 마련했다. 메리놀회가 대한민국 역사와 동반해온 지도 한 세기가 됐다. 찬란한 한국 교회사 안에서 메리놀회는 우리와 기쁨과 성장의 활력을 주고받으며 오늘에 이르렀다. 메리놀회가 남녘 땅에 처음 복음의 씨앗을 뿌린 청주교구 주교좌 내덕동성당에서 그간의 세월을 기념하고, 감사를 나누는 미사가 10일 봉헌됐다.
메리놀외방전교회 한국 진출 100주년
청주교구장 김종강 주교 주례로 거행된 메리놀회 한국 진출 100주년 감사 미사에는 염수정 추기경과 서울대교구장이자 평양교구장 서리 정순택 대주교, 전 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 인천교구장 정신철 주교, 전 의정부교구장 이한택 주교와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 제주교구장 문창우 주교, 원주교구장 조규만 주교,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장 박현동 아빠스 등 메리놀회와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주교들을 비롯한 전국 교구 사제, 수도자, 평신도 400여 명이 참석했다.
메리놀회를 대표해 아시아지부장 조얄리토 신부와 미국지부장 알퐁소 신부가 참여해 한국 교회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무려 63년째 한국에서 선교사로 살고 있는 함제도 신부와 올해 92세로 메리놀회 최고령인 방인이 신부, 한국지부장 안구열 신부, 길고수·마필운 신부도 기쁨을 나눴다. 1956년 입국해 메리놀수녀의원과 성매매 여성을 위한 ‘막달레나의 집’을 설립한 문애현(요안나) 수녀를 비롯한 메리놀수녀회 수녀 4명도 함께했다. 감사의 의미가 담긴 꽃다발이 한 명 한 명에게 안겼고, 아시아지부장 로얄리토 신부에게는 감사패가 증정됐다.
로얄리토 신부는 “지난 100년 동안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사랑과 친절로 품어준 한국 교회와 국민에게 감사드린다”면서 “100년이 흘렀어도 선교의 위업은 계속돼야 하며,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주님을 계속 섬길 수 있길 간절히 희망한다”고 화답했다.
북한, 선교 여행의 출발이자 못다 한 꿈
메리놀회는 1922년 교황청 포교성성(현 복음화부)으로부터 평안도 지방 선교권을 위임받았다. 그리고 1923년 5월 10일 메리놀회 페트릭 번(한국명 방일은) 신부가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번 신부는 같은 해 11월 평안도에 메리놀회 한국지부를 설립했고, 1927년에는 평양지목구가 설정됐다. 번 신부는 초대 평양지목구장에 임명됐다. 메리놀회는 복음화에 대한 열정으로 평안도 지방에 무려 51명의 사제를 파견하고, 21개 본당을 신설했다. 하지만 1942년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51명 전원이 미국으로 강제 추방됐다.
해방 후 1947년 가을, 초대 평양지목구장을 지낸 번 신부가 초대 교황순시자(Visitor Apostolic)로 한국에 파견돼 한국과 교황청 간 외교 관계를 수립하기 시작했다. 번 신부는 1949년 초대 교황사절(Apostolic Delegate)로 임명되면서 주교품을 받았지만, 6ㆍ25 전쟁 중 체포돼 98.18㎞(250리)에 이르는 ‘죽음의 행진’에 끌려다니며 갖은 고초를 당하다 1950년 11월 순교했다. 메리놀회 첫 순교자이다. 메리놀회는 통한을 품고 평안도 선교를 잠정 중단했다.
장봉훈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메리놀회는 1942년 북녘땅 평양에 두고 온 양 떼를 하루도 잊은 적이 없으리라 생각한다”며 “청주교구는 교구 설립 수도회와 함께 메리놀회가 잠정 중단한 북한 선교에 새로운 장을 열도록 기도하고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함제도 신부 역시 “북한은 메리놀회의 고향과 같은 곳”이라며 “다시 찾을 수 있는 날을 늘 고대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제 내 나이가 90이라, 내가 만약 북녘에 못 가더라도 여러분이 꼭 북한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선교해달라”고 당부했다.
청주교구와 인천교구의 주추
결국 북녘에는 뿌리내리지 못했지만, 메리놀회의 한국 선교는 남한, 그중에서도 충북 지방과 인천 지역에서 이어졌다.
1953년 서울대목구 소속 충북감목대리구가 설정되고, 메리놀회에 충북지역 선교권이 위임됐다. 이어 1958년 서울대목구 소속 인천감목대리구가 설정되고 메리놀회에 인천지역 선교권이 위임됐다. 메리놀회는 청주교구와 인천교구에 초석을 놓았고, 교구 성장의 확고한 기틀을 마련했다.
충북감목대리구가 설정될 당시 충북의 모든 지역은 복음이 전무한 캄캄한 땅이었다. 메리놀회는 충북의 모든 군 소재지는 물론, 발전 가능성이 있는 면 단위까지 매입해 새 성당을 신축했다. 현재 청주교구는 주민 대비 신자율 11.6, 82개 본당, 교구 사제 200명으로 성장했다. 인천교구는 신자 52만여 명으로 전국 교구 중 세 번째로 큰 교구로 발전했다.
김종강 주교는 “한국은 가난과 고통의 땅이었고, 메리놀회 선교사들은 희생을 마다치 않고 역사의 고비를 넘기며 함께했다”면서 “특히 청주교구에서는 헌신과 희생을 통해 성당 건립, 방인 사제 양성 등 나열할 수 없을 만큼 튼튼한 기틀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한국 교회에 뿌려진 복음의 씨앗
정순택 대주교는 이날 축사에서 “한국 교회는 메리놀회에 많은 사랑의 빚을 지고 있다”고 깊은 감사의 뜻을 재차 표했다.
메리놀회는 현지 사제 성소는 물론 지역사회에 복음을 선포할 평신도 양성에도 큰 역할을 했다. 명도회를 설립해 평신도 교리교육에 힘썼고, 레지오 마리애를 도입해 기도하며 선교하는 평신도를 양성했다. 본당마다 가톨릭청년회 활성화와 성당 도서관을 운영하며 교회의 미래인 청소년을 키웠다. 한국 최초로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를 도입, 설립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사랑하고 섬기도록 가르쳤다.
특히 1956년 개원한 증평 천주교 메리놀병원(증평병원) 시약소는 청주 북부지역 17개소 순화진료를 시행하며 지역의료의 핵심 거점 역할을 했다. 지역민의 몸과 마음을 치료해주던 시약소는 최근 충청북도 등록문화재가 됐다.
또 제2대 평양지목구장 메리놀회 목요한 몬시뇰은 한국 최초의 현지 수녀회인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를 평양에서 설립했다. 그 씨앗이 한국에 이어져 현재 전국에서 가장 큰 수녀회 중 한 곳으로 자리 잡았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 수련자들은 이날 메리놀회 선교사들에게 축가로 감사를 전했다.
1948년에는 메리놀회 그레이그 신부가 주교회의의 전신인 한국천주교 중앙위원회를 설립하며 한국 교회가 견고한 조직을 갖추는 데 기여했다.
노동자, 도시 빈민 등 동반 사목에도 문을 열었다. 산재 및 노동 사도직에도 투신했고, 1985년에는 국내 최초 성매매 피해여성 쉼터 ‘막달레나의 집’을 마련하는 등 여성 인권 향상까지, 돌보지 않은 분야가 없다.
김종강 주교는 “한국 교회에서 100년이라는 기차여행을 하는 동안 수많은 사람을 태우고 기쁨과 슬픔, 만남과 이별을 반복해온 메리놀회에 경의를 표한다”면서 “이젠 우리가 그 자리를 맡고 짊어져야 하며, 더 큰 사랑으로 채워나가자”고 당부했다.
지금까지 한국에 들어와 선교한 메리놀회 선교사는 모두 200여 명에 이르며, 현재 메리놀회 한국지부에는 5명의 사제와 3명의 수녀가 선교의 꿈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