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긴 하지만 당장 하고 싶진 않다.’ ‘하더라도 제대로 하고 싶은데 준비가 안 됐다.’ ‘꼭 해야만 하는가?’ 우리 젊은이들이 주로 하는 ‘결혼’에 대한 생각들이다. 누가 젊은이들이 결혼을 공포로까지 여기게 만들었을까.
2016년 30만 건 아래로 떨어진 혼인 건수는 2021년 19만여 건으로 5년 만에 3분의 2토막 났다. 반면, 이혼 건수는 연 10만 건을 계속 유지하고 있어, 줄어드는 혼인과 상반된다.
지난달 법률소비자연맹이 전국 대학생 2431명을 대상으로 결혼관을 물어본 결과, 남녀 전체에서 ‘해야 한다’고 답한 비율이 40.64에 불과했다. ‘결혼을 위해서는 경제적 독립이 필수’라고 응답한 비율은 81.74나 나타났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2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남녀 3만 6000여 명 가운데 절반만 ‘결혼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결혼해서 행복하다’는 말보다 ‘결혼은 최대한 늦게 하는 게 좋다’고 하는 기성세대의 말이 더 익숙지 않은가.
결혼에 회의적인 젊은이들
“결혼은 사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 아닌가요?”
서지은(수산나, 27)씨는 “결혼은 평생 함께할 동반자를 찾는 것이지, 그 목적을 자녀 출생으로 연결짓는 어른 세대의 생각은 더 이상 시대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갈수록 늘어나는 자녀 양육비와 부족한 돌봄 제도의 현실을 고려하면 결혼과 자녀 출생을 함께 이야기한다는 것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혼하면 남편은 이성이 아냐”, “아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는 거지” 등 주변에서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결혼생활에 대한 불평들은 혼인의 가치를 떨어뜨려 줄 뿐이었다. 서씨는 “지금껏 방송과 각종 매체가 아무렇지 않게 다뤄오던 고부 갈등, 부부 싸움, 육아 스트레스 등 또한 ‘결혼생활이란 저런 것이구나’하는 큰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서씨는 “7년 동안 일해오면서 나 먹고살기도 급급한데 누군가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생계를 유지해나갈 자신이 없었다”면서도 “지난해부터 내 편이 되어줄 가족을 만나 신비로운 생명체를 낳고 싶은 마음으로 결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며 어렵사리 스스로 변화시킨 결혼관을 설명했다.
“집은 자가이고요….”
요즘은 각종 연애, 만남 TV 프로그램에서조차 서로 경제적 조건을 자랑하듯 이야기하고, 이에 환호하는 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부추기는 것이 일상화됐다.
비혼주의 생각을 지니고 있는 정승아(테레지아, 40)씨는 “결혼 상대를 바라볼 때 경제적 조건 등을 고려하는 것부터 보면, 결혼이 사랑만으로는 할 수 없다는 방증 아니겠느냐”고 했다. 정씨는 “특히 한국에선 여성이 결혼하면 ‘며느리’에게 전통이라는 명목으로 요구되는 의무들에 휩싸인다”면서 “이젠 결혼이 사랑의 정점이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비혼주의를 선언한 이들이 과연 정말 비혼을 원할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최선영 박사팀이 지난해 6~8월 전국의 미혼 남녀 40명을 만나 조사한 결과, 이 가운데 비혼주의자는 단 3명에 불과한 흥미로운 사실을 연구해냈다. 결혼 감소현상의 원인이 꼭 ‘비혼주의’ 인식 때문이 아니라, ‘결혼 지연’에 있다는 것이다. 젊은 세대의 단순한 자포자기나 체념보다 결혼을 위한 경제적 여건 등을 갖추는 데 필요한 시간을 벌고자 결혼이 지연되는 것이다.
정부 지원 방향 다변화 및 관심 강조
전문가들은 다양한 원인을 품은 저조한 혼인율 해소를 위해 정부 지원 방향의 다변화, 사회 인식 변화, 전방위적 관심을 강조했다.
한림대 사회학과 신경아 교수는 “급속한 경제 성장 속에서 부부의 맞벌이는 당연해진 반면, 함께 늘어나야 할 맞돌봄은 더딘 것이 현실”이라며 “정부는 원활한 가정 활동과 양육을 위한 노동시간 단축 등을 고려하는 동시에 부계사회 인식에서 모두가 전환을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이전보다 육아 지원금은 늘었지만, 아이를 맡길 곳은 여전히 부족한 현실을 볼 때, 가정과 양육의 문제를 꼭 개인의 문제로 느끼지 않도록 정부, 지역사회, 일터, 주변인의 전방위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회사는 가정을 꾸리지 않거나, 육아를 하지 않아야 일을 더 열심히 할 것이라 여기는 편견을 반드시 없애고, 가정의 형성과 새 생명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문화를 이뤄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정재훈 교수는 “정부는 과거 ‘잘 살아보세’ 운동 일환으로 산아 제한부터 현재의 저출생 정책까지 계속 인구수에만 국한해 접근을 해오고 있는데, 인구 문제가 아니라 세대별 사람들이 처한 현실들을 바라보고 정책을 펴나가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정부 정책의 변화를 지적했다.
현실적 상황을 나누는 장 마련해야
교회는 예비부부를 위한 혼인교리부터 예비 배우자와 혼인의 진정한 가치를 돌아보도록 돕는 약혼자 주말, 부부간 깊은 사랑의 삶을 지원하는 ME 주말, 위기를 맞은 부부의 고통에 반창고를 붙여주는 르트루바이 주말까지 혼인 및 가정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사목적으로 돕고 있다. 그러나 교회가 오늘날 젊은이들의 고민을 다가가 더 듣고, 현실적 상황을 나누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막상 결혼 준비에도 힘든 예비부부들은 누구도 알려주지 않은 혼인교리 이수를 위해 뒤늦게 쩔쩔매기도 한다. 관면혼배가 뭔지, 혼인성사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찾다가 진정 혼인의 의미는 놓치고 헉헉대는 예비부부가 많다. 마치 혼인교리 이수증 마련이 혼인을 위한 관문처럼 여기게 되는 것이다. 교회가 혼인을 장려하면서도 생각보다 비싼 성당별 혼인성사 비용에 두 번 놀라는 부부들도 적지 않다.
의정부교구 선교사목국 가정사목부 담당 김청렴 신부는 “교회가 지향하는 결혼의 가치를 오늘날 청년들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부족한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며 “고민을 듣기보다, 답을 정해놓고 따라야 한다는 일방향적 교회적 접근, 그저 성사가 중심이 되어 거기에만 치우치면 많은 젊은이가 결혼하더라도 냉담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혼인에 대한 교회 가르침을 삶에서 더욱 실현하도록 하기 위해선 많은 사제가 혼인 관련 사목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한다”고도 전했다.
약혼자 주말을 담당하는 서울대교구 사목국 교육지원팀 김영훈 신부는 “혼인교리가 전하는 거룩한 가치와 의미는 모든 예비부부가 듣고, 잘 받아들이도록 보다 친절하고 충실하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 신부는 이어 “행복은 일정 조건이 갖춰져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에서 발견하는 것”이라며 “청년들은 현재 나의 상황을 비관하면서 꼭 이를 결혼을 미뤄야만 하는 방식으로 생각하는 데서 벗어나야 하며, 교회는 불안을 조장하는 사회 안에서 청년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려줄 수 있도록 더욱 다가가야 한다”고 말했다.
결혼 통해 얻는 행복 전해져야
결혼과 가정 형성이 꼭 돈과 스트레스, 고통, 타협만 동반할까. 혼인의 과정을 거쳐 가정을 꾸린 결혼 선배들은 행복도, 고통도 누군가와 함께 나누면 또 다른 기쁨이 된다고 조언했다.
김호진(아브라함, 56)·조란숙(율리아나) 시니어 부부는 결혼 적령기의 자녀를 두고 있다. 이들은 “과거에는 나이가 차면 무조건 결혼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컸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을 최대한 잘 준비해서 하려는 마음이 더 큰 것 같다”며 “기성세대는 ‘결혼 안 하느냐’고 단순히 지적하기보다, 결혼을 통해 얻는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젊은 세대에 꾸준히 전하도록 실질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재원(프란치스코, 42)·정진아(루실라) 주니어 부부는 서울대교구 약혼자 주말에서 10년 넘게 봉사하며 예비부부들이 혼인의 의미를 되새기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이들은 결혼에 대해 “약속하지 않아도 당연히 일상을 함께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내 편이 돼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는 행복”이라고 표현했다.
심씨 부부는 “누군가와 평생을 약속한다는 것 자체가 결혼이 지닌 신비한 은총을 대변해주는 것 아니겠느냐”며 “우리조차 결혼 전에는 금전적인 것부터 부족한 게 매우 많았는데 서로가 있어 극복할 수 있었다. 경제적 이유가 결혼을 포기하거나 선택하는 첫 잣대가 되지 않고 함께 기쁨을 만들고자 노력하면 좋겠다”고 했다.
두 부부는 “결혼에 있어 준비된 시기는 없다”고 했다. “결혼할 당시에 마음이 온전히 성숙하거나, 직장과 재산 등 경제적인 기반이 탄탄히 마련돼 있거나, 가정에 충실할 시간까지 확보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극히 드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행복합니다. 서로가 있다는 자체 만으로요.”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