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한 개인을 죽음으로 내몰거나 죽음을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사회.
이런 경우의 죽음을 한 개인의 '극단적 선택'으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겁니다.
자살예방을 위해선 자살 관련 용어와 인식 개선부터 올바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윤재선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전세사기 피해에 괴로워하던 젊은이들의 잇따른 사망.
노동절인 지난 1일 한 노동자의 분신 소식.
관련 단체들은 이들의 죽음을 두고 본인의 책임이 아니라고 외치며 추모했습니다.
국가와 사회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주장과 항변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사회가 만든 죽음을 멈춰달라는 호소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국가와 사회가 떠넘긴 돌봄의 무게가 짓눌러온 발달장애인과 가족들의 잇따른 사망.
이들의 죽음을 '극단적 선택'이라고 표현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윤종술 /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장>
"당장 가족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구조 모순 속에서 한국 사회는 장애인 가족들에게 사회적 타살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대학 입시란 틀 속에서 경쟁에 내몰린 학생, 영세 중소상인과 정리해고를 당한 노동자들 역시 비슷한 처지에 내몰립니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이 자살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부른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언론에선 자살이란 표현 대신 에둘러 '극단적 선택'이라고 부릅니다.
자살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전염 효과와 모방 심리를 막기 위해섭니다.
하지만 자살을 피하기 위한 용어가 이미 자살과 같은 용어로 인식되고 있는데다 자살예방을 위한 아무런 근거도, 효과도 없다는 게 학계의 중론입니다.
<나종호 / 예일대 의대 교수> (CBS 김현정의 뉴스쇼)
"어떤 나라에서도, 또 어떤 연구에서도 자살 대신에 다른 완곡한 용어를 사용하는 게 자살을 줄이거나 예방한다는 근거가 없어요. 미국이나 독일이나 어떤 나라든 지금 다 중립적인 용어, 자살을 자살로 부르고 있습니다."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의 '자살 위기극복 특별위원회'는 최근 "자살이 선택지가 되는 사회적인 문화가 큰 문제"라며 극단적 선택 표현을 삼갈 것을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자살을 선택이라고 규정하는 건 고인은 물론 자살 유가족들까지 낙인찍는 일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실제로 자살 유가족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질문이 바로 "고인이 왜 자살을 선택했는지 물을 때"라는 것.
이미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서 힘든 유족들에게 또 다른 죄책감을 주고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로 인해 자살 고위험군에 속하는 유가족들이 더 고립되거나 극심한 정신적 통증에 시달리게 된다고 지적합니다.
<나종호 / 예일대 의대 교수> (CBS 김현정의 뉴스쇼)
"그분들이 도움을 청하는 것을 막아요. 이런 정신건강서비스를 공개적으로 받을 수 있어야 자살을 예방할 수가 있는데 자꾸 숨기게 되는 거죠."
자살 사망자 하루 평균 36.6명.
10만 명당 자살률 24.6 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국가 평균의 2배를 넘는 한국.
사회적 타살이라는 외침과 전문가들의 조언을 귀담아 듣는 것으로부터 자살예방의 근본 해법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CPBC 윤재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