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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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밖 청소년, 학생도 노동자도 아닌 ‘문제아’로 낙인

청소년 주일에 만난 사람 / 학교 밖 청소년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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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가톨릭아동청소년재단에서 운영하는 카페 ‘립(立)’에서 청소년들이 음료를 만들고 있다.



사회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는 청소년 노동자 3명 중 1명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해본 적이 없다”고 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회적 편견, 고용주의 부족한 고용의식, 청소년을 향한 가벼운 노동관 등 청소년들이 노동자로 임할 때 제대로 된 고용 절차를 밟지 못하는 현실이 사회에 만연한 것은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청소년들을 사랑한 요한 보스코 성인은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랑받기에 충분하다”며 “그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알도록 사랑하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청소년을 향한 사랑은 그렇지 못한 모습이 이어지고 있다. 그들을 위한 사랑보다는 가벼운 비난과 의심, 무관심이 더 큰 탓은 아닐까. 28일 ‘제38회 청소년 주일’을 맞아 ‘학교 밖 청소년 노동자’들이 직면한 현실을 만나봤다.



우리 사회가 낀 색안경

이명진(가명, 18)군은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만 했다. 한 편의점에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일이 시작된 이후부터 점장의 태도가 묘하게 바뀌었다. 이군은 매주 토ㆍ일요일 8시간씩 근무했지만, 휴식시간은 없었다. 설상가상 최저 시급도 못 받았다. 월급도 정해진 날짜에 받지 못했다. 더 황당한 것은 해고 사유였다. 갑작스러운 해고 사유가 고등학교 자퇴 때문이었다. 이군은 “자퇴생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해고를 당했다”며 “어머니께서 속상해하실까 봐 말도 못했다”고 심경을 밝혔다. 그는 “학교 밖 청소년들에 대한 어른들의 선입견에 기분이 몹시 나빴다”고 했다. 교육열 높은 대한민국에서 단순히 학생의 본분인 ‘공부’에 매달리지 않고, 일을 하기 때문인 것일까. ‘일하는 청소년’들에겐 나름의 다양한 이유도 존재하지만, 이처럼 한국 사회는 여전히 ‘학교 밖 청소년’과 ‘일하는 청소년’들에 대한 색안경이 존재한다.
 
김나영양이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양은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것이 마음 아프다”고 말했다.

학교 밖 청소년이라서

김나영(17)양은 어린 시절을 인도에서 지내다 2017년 귀국했다. 입학 시기를 놓쳐 학교에 들어가지 못했다. 대안학교도 다녔지만, 입시 준비를 위해 나왔다. 김양은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생활을 경험해보고자 카페에서 일을 시작했다. 문제는 카페를 찾는 사람들의 태도였다. 계산하는 김양에게 돈을 던지듯 주거나, 말을 함부로 하는 모습들이었다. 불필요한 신체 접촉도 있었다. “손님 중에 나이가 있으신 여성분이었는데, 저한테 잘했다고 격려를 해주시는데, 원치 않는 신체 접촉이 있었거든요. 동료 언니가 대신 불편함을 얘기해줬지만, 놀랐어요.” 김양은 무엇보다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무슨 문제를 일으켰는지 많은 사람이 물어봤다”며 하소연할 수 없었던 아픈 경험을 전했다.



학교 밖 청소년 낙인부터 지워야

전문가들은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편견부터 사라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시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장 백승준(살레시오회) 신부는 “인턴십을 통해 센터에서 아이들을 보내도 학력을 취득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곤란함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우리 사회는 여전히 편견으로 인해 청소년들이 일하는데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낙인이 발목을 잡는다는 것이다.

‘일하는학교’ 이정현 사무국장은 “아이들이 폭언이나 부당한 대우 등 어른들로부터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호소를 많이 한다”며 “일터에서 제대로 된 교육 과정이나 업무에 대한 설명도 없이 그냥 아이들이 잘 모른다는 이유로 무시하거나 막 대하는 경향이 여전하다”고 설명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고용 관계인 청소년 노동자를 배려해야 하지만, 대화와 설명은커녕 그들의 의지마저 꺾는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 노동자’들이 마땅한 권리를 누리거나 주장할 순 없는 것일까.



일하는 청소년 위한 실질적인 대책 필요

백승준 신부는 “학교 밖 청소년의 취업이나 자립을 위한 지원이 너무 약하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자립이나 취업 지원은 체험 중심에 국한돼 있다는 설명이다. 주로 생계를 목적으로 일하는 학교 밖 청소년에게 단순 체험은 사실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백 신부는 “청소년 공공근로가 제도화됐으면 좋겠다”며 “체험 중심의 인턴십이 아니라 일종의 ‘청소년 사업장’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곳을 적극 마련해 아이들에게 실질적으로 생계 도움까지 이어지는 일자리가 마련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러면서 “지금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작성 등 사회 진출을 위한 교육과 멘토의 역할”이라며 “기관이 아닌 정부 차원의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멘토링 기능이 보완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정현 사무국장도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의 참여가 적극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아이들이 직업 교육이나 취업과 자립 등에 집중할 수 있도록 관련 기관이나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며 “정부 기관뿐만 아니라, 민간기관이 참여할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노동 이슈와 문제를 가르쳐 줄 멘토가 아이들에게 필요하다”며 “청소년들이 인생의 계획을 세우는 데 있어 우리 사회가 동행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청소년이 노동을 통해 역할을 부여받고 성장하길 바란다”며 “아르바이트와 같은 단순 노동보다는 청소년들이 더욱 크게 성장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알맞고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지점부터 사회적 고민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교회도 발맞춰 걸어야

인천교구 (재)가톨릭아동청소년재단은 교구청 내에서 학교 밖 청소년들 위한 카페를 운영 중이다. 교구가 2010년 문을 연 카페 ‘립(立)’이다. 청소년들이 스스로 일어서도록 돕는다는 의미다. 10명 정원에, 현재 7명의 후기청소년(19세~24세)들이 일을 배우며 자립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 항공사와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와의 업무 협약으로 청소년들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 제공 계획도 세우고 있다.

가톨릭아동청소년재단 사무처 김재우(인천교구) 신부는 “이곳에서 일한 아이들은 커피와 제빵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사가 돼 어려운 환경에 놓인 청소년들을 돕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청소년들이 좋은 기술을 배우면 이와 비례해 자립할 가능성도 더욱 커진다”며 “카페나 편의점에 국한되지 않고, 폭넓은 직업 교육과 프로그램들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 밖 청소년 노동자들 위해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백승준 신부는 “사제, 수도자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며 각지의 본당부터 학교 밖 청소년 노동자를 지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길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백 신부는 “가톨릭 신자가 운영하는 업체나, 교회가 보장하는 업체들과 업무 협약을 맺고, 투명하게 과정을 만든다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교회가 인정하는 이른바 ‘그린 청소년 사업장’을 지정해 관리한다면 아이들도 권리를 인정받으며 마음 놓고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른바 ‘학교 밖 청소년’으로 불리는 이들이 학교 안 청소년들과 다른 대우를 받을 이유는 없다. 전문가들은 사회가 학교 안팎의 모든 청소년을 아우르며 바라봐야 하는 인식의 전환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와 교회의 사회적, 사목적 배려 속에 청소년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려면 이들을 바라보는 기성세대가 먼저 색안경을 벗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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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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