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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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 - 세상을 읽는 신학] (60)이 시대의 종교와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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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속화

세속 시대를 살고 있다. 오늘날 세속화는 단순히 종교의 쇠퇴를 의미하기보다는 종교와 신앙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로 이해되고 있다. 종교와 신앙이 작동되는 조건과 환경이 변하고 있다. 종교의 미래는 변화된 환경에 어떤 방식으로 적응하는지,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응대하는지에 달려 있다. 사실 그리스도교의 적응 능력은 역사 속에서 언제나 탁월했다. “그리스도교는 약한 것을 강한 것으로 바꾸는 대단한 힘이 있음”(필립 젠킨스 「신의 미래」)을 우리는 믿는다.

일반적으로 오늘날 종교가 처해 있는 환경은 그리스도교 중심주의의 약화, 종교 행위의 탈제도적 성향, 종교에 대한 비판적 경향의 증가 등으로 설명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종교적 실천에 대한 이해가 서구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벗어나 다양해지고 있다. 성스러운 것과 영성적인 것에 관한 관심과 갈망은 여전하지만, 종교 행위들이 제도적 종교 밖에서 이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지식과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종교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강해지고 있다. 이러한 환경은 종교 실천 형식의 변화와 신앙 수행 방식의 재구성을 요청한다.


■ 종교의 기능적 역할

세속화 과정의 숱한 도전 속에서도 종교가, 비록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형태를 변형하기도 하지만, 살아남고 부흥되기까지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종교사회학자들은 그 원인을 사회 안에서 수행되는 종교의 역할과 기능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두고 설명한다. 종교가 사회 속에 끊임없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종교와 종교성은 인간 실존의 안전성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실존적 불안을 느끼는 상황이 되면 종교는 늘 새롭게 등장한다. 경제적 위기, 정치적 불안정, 사회 복지 체제의 붕괴 등 인간 실존의 안전성을 위협하는 사회적 불안 요소들이 등장할 때, 종교에 대한 요청이 더 높아진다.

종교는 사람들에게 자기 삶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일종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한다. 사람은 자기 존재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즉 자기 삶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자기 행위들을 추동할 수 있는 어떤 것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오늘날은 소위 세속적 이데올로기들이 다 사라진 시대다. 추구해야 할 가치로서 한 시절을 풍미했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사람들을 혁명적 열정으로 몰고 갔던 사회주의 이념, 그 세속적 신념과 이념이 사라진 곳에 종교적 신념이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자신을 인정해주는 어떤 공동체에 소속되기를 원한다. 개인주의적 경향이 강화되고 세속의 공동체적 기반이 약화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자기의 정체성과 인정욕망을 충족시켜줄 수 있고 그 어떤 소속감을 제공해줄 수 있는 무엇을 필요로 한다. 특히 세계화의 과정 안에서 민족적·인종적·계층적 연대와 정체성이 약화됨에 따라 종교적 소속감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고 인정을 경험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국가적·민족적 소속감보다 종교적 소속감이 사람의 정체성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일종의 문화적 사유체계로서 종교는 개인과 사회적 삶의 전방위적 영역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치와 윤리의 영역뿐만 아니라 예술과 미학의 영역에서도 종교는 영향력을 발휘한다. 또한 종교의 심리적 기능과 사회적 기능은 이 시대에도 여전히 작용하고 있다. 종교의 심리적 기능을 인지적 측면에서 보면, 종교는 인간에게 하나의 세계관을 제공한다. 감성적 측면에서 보면, 종교는 가치와 판단의 기준을 제공한다. 실용적 측면에서 보면, 종교는 삶의 형식을 정당화하는 기능으로 작동되기도 한다. 종교의 사회적 기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종교는 개인의 사회화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또 집단과 계층의 갈등을 조절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모든 이데올로기가 사라진 시대에 종교는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가장 큰 동력이라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 위기의 시대

교회와 신앙인의 삶에 가장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시대의 문화사조는 크게 세 가지로 규정해 볼 수 있다. 물질적 쾌락과 향유를 지향하는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 무신론적·탈종교적 세속주의 문화, 과학기술의 발전과 그에 따른 과학적 사유체계다. 물론 이 셋은 서로 맞물려 있다. 종교와 신앙의 모습은 결국 이 세 특성들이 빚어내는 콘텍스트 속에서 표현되고 결정되어 간다. 현대 문화는 사람들을 물질적 욕망 지향의 인간으로, 이기적이고 지독한 현세주의자로, 기능성과 유용성만을 강조하는 기계적 인간으로 만들 위험을 안고 있다.

감정과 욕망을 부추기는 자본주의 문화가 더욱 기승을 부린다. 종교가 자본주의화 되고 있다. 종교가 성장주의, 상업주의, 소비주의라는 자본주의 이념에 물들어 가고 있다. 종교와 신앙의 브랜드화가 가속되고, 사람들은 신앙과 영성을 살아내기보다 소비하고 있다. 또한 종교가 세속주의에 물들어 가고 있다. 종교적 가치와 비전이 아니라 세속의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종교와 신앙이 친밀성과 소통과 환대의 모습이 아니라 혐오와 배제와 집단적 이기성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천체물리학과 생명과학의 눈부신 발전을 통해 점점 영향력을 확대해가는 과학적 세계관 속에서 세계와 인간에 대한 종교의 전통적 설명들이 설득력을 잃고 있다.


■ 건강한 교회, 성숙한 신앙을 위하여

코로나 시절 사람들은 격리의 시간을 경험했다. 코로나 사태는 종교와 신앙의 미래에 관한 전망을 압축적으로 미리 보여준 사건이다. “나는 코로나바이러스 시기에 문을 닫은 텅 빈 교회들을 예언적 경고 신호로 받아들였다. 교회가 변화를 이뤄내지 않는다면, 교회도 곧 그런 상태가 될 수 있다.”(토마시 할리크 「그리스도교의 오후」) 시노달리타스를 향한 구조적 변화와 성숙한 신앙과 영성의 형성이 오늘의 교회에 절실히 요청된다.

교리와 신학과 전례의 변화와 쇄신이 절실히 필요하다. 교리와 신학은 오늘의 세상에서 하느님을 이해하고 체험하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설득력 있게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신앙 체험과 신앙 실천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전례를 쇄신해야 한다. 사람들의 신앙적 마음과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본당의 프레임을 구축해야 한다.

생각도 많고 마음도 간절한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오늘의 교회 모습이다. 탓만 하고 있기 때문일까. 자기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성찰하며 그것을 실천하고 수행하는 것만이 변화와 쇄신의 첫걸음이리라.



정희완 요한 사도 신부(가톨릭문화와신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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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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